▶ “요리사가 화려해 보여도 주방은 전쟁터…기본과 창의력 중요”
▶ “한식도 현지화 잘만 하면 미국 입맛 사로잡을 수 있어”
“미국에서는 인기 있는 요리 잡지에 매번 한식이 소개될 정도로 한국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현지화만 잘한다면 한식당도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미국 조리사 협회(ACF) 최연소 총 주방장 심사위원인 김한 송(34) 셰프는 6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식을 세계화하려면 현지화가 중요하다"면서도 "현지인 입맛에 맞추겠다고 퓨전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음식 본연의 맛을 살리며 먹기 좋게 만들면 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음식업계가 가장 신뢰하는 미국 조리사 협회는 요리사의 실력을 마스터-총 주방장-부 주방장-요리사-수습의 5단계로 나눠 등급제로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김 씨는 이 협회의 총 주방장 등급을 취득했고 총 주방장 심사위원 자격도 지닌 유일한 한국계다.
그는 전 세계 유행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뉴욕에서 잘 나가는 음식점과 요리 트렌드를 소개하는 책을 펴내기 위해 방한했다.
뉴욕을 중심으로 한식당 창업 컨설팅과 한식 메뉴 개발에 앞장서는 '비스트로 요리'(Bistro Yori)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미국은 백인, 흑인, 라틴계, 아시안 등 전 세계 인종이 다 모인 곳이라 요리 수요도 다양하다"며 "고객 타깃을 정해 공략하면 한식으로도 얼마든지 인기를 끌 수 있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밝혔다.
그는 우리가 먹는 음식 그대로를 현지인에게 내놓은 방식의 '한식 세계화'로는 대중적 인기를 얻기 어렵다고 조언했다.
“비빔밥의 경우 밥 위에 올린 나물부터가 미국인에게 생소한 채소들입니다. 해초를 안 먹는데 비빔밥에 들어 있는 미역을 보면 질색을 하죠. 무생채, 콩나물 등 다 맛본 적 없는 것들인데 전부 비벼 먹으라니 음식 체험은 돼도 즐겨 찾는 음식이 되기 어려운 거죠.”
그러면서 현지화 방식으로 자신이 개발해 히트한 비빔밥 메뉴를 소개했다. “아이스크림 전문 매장처럼 자신이 직접 골라 먹게 했죠. 밥도 쌀밥·잡곡밥·콩밥 중에 고르게 하고, 고기도 돼지·소·닭고기를 구분하고, 나물과 채소 가짓수를 늘려 토핑을 하듯 정하도록 한 뒤 마지막에 소스도 초장·쌈장·된장·고추장·간장 중에 선택하게 했습니다. 또 중남미 출신을 겨냥해 토르티야(멕시코식 전병)에 타코처럼 싸 먹을 수도 있게 했죠.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그는 국내에서 잘 나가는 요리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이자 다수의 요리책 저자로 주목받는 스타 셰프였다.
금산 인삼요리, 횡성 한우요리, 광양 매실 요리, 영덕 대게요리, 남양주 향토문화 요리, 하동 녹차요리 등 20여 개 전통 요리 경연 대회에서 대상을 휩쓸었고 요리 전문 채널 올리브TV의 '테이스티 로드 2'를 진행하기도 했다. 잘 나가던 그가 2011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 이유가 궁금했다.
“연예인 대접을 받으면서 한창 우쭐해 있었죠. 여러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하다 보니 방송에서 제가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요리를 평가할 일도 생기더군요. 그때 무척 창피했고 실력보다 과대포장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리의 세계는 무궁무진한데 정체된 저 자신을 채찍질할 필요를 느껴서 곧바로 짐을 쌌죠.”
미국 유학에 오른 그는 로드아일랜드 주 존슨앤드 웨일스 대 대학원에서 요리·호텔·식당 경영 전반을 공부하는 호스피텔러티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미국서도 요리 실력을 인정받은 김 씨는 공부하면서 학교 소유의 호텔에서 주방장으로도 근무했다. 그때 알게 된 것이 미국 조리사 협회의 요리 등급제도였다. 알아보니 최상위 등급인 마스터는 주로 호텔 총 주방장 등으로 20년 이상 재직한 요리사를 대상으로 1년에 2∼3명을 선발하는 까다로운 명예직이었고, 시험을 통해 취득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은 총 주방장이었다.
호텔이나 식당 등에 취업할 때 등급 인증서가 있으면 바로 그 위치로 채용될 수 있는 기준이 된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 주저하지 않고 도전했다. 총 주방장 등급 시험은 정해진 시간에 12가지 재료를 이용해 코스 요리를 3가지 선보이는 것. 소스부터 만들어야 하므로 한 가지만 실수해도 다시 만들 시간이 없을 만큼 엄격한 시험을 그는 두 번 만에 따냈다. 자신이 붙은 김 씨는 곧바로 총 주방장 심사위원 자격에 도전했다.
“심사위원에 동양인이 거의 없는 데다 한국계는 처음이라서 주목을 받았죠. 부담도 됐지만 요리만큼은 자신 있었습니다. 총 주방장 시험에 3번 참가해 심사위원 3명과 함께 심사를 하고 매번 채점 점수를 적어냈습니다. 100점 만점에서 심사위원 평균 점수와 5점 이상 차이가 나면 탈락인데 운 좋게 한 번에 합격했습니다.”
수십 년 요리를 해온 경쟁자를 물리치고 심사위원에 오른 비결을 묻자 그는 “요리에 쉽고 빠른 지름길은 없다”며 “기본에 충실하게 요리를 만들면서 동시에 예술적 창의력을 발휘하려는 노력의 반복이 중요하다”고 털어놓았다.
“요즘 요리 방송이 인기를 끌면서 학부모한테서 문의가 많이 옵니다. '아들이 공부를 못 해서 요리사를 시키려는 데 미국 유학하려면 비용은 얼마나 들어가나', '몇 년이면 되나'는 등의 질문이 많습니다. 요리사에게 주방은 전쟁터예요. 매번 승부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요리해야 합니다. 소위 잘 나간다는 요리사도 다 주방에서 청소하고 채소 다듬는 실습부터 시작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나게 노력해 그 자리에 올랐다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그는 한식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안고 있음에도 해외에서 한식당이 주로 한인만을 상대하는 데 그치는 게 안타까워 지난해부터 한식 컨설팅업에 나섰다. '비스트로 요리'는 메뉴 개발부터 시작해 인허가 취득, 매장 인테리어, 직원·요리사 채용과 교육 등 창업의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5곳의 한식당 창업을 도왔고 월 매출 10만 달러(약 1억 1천600만 원)를 넘는 '대박 식당'도 나왔다.
“한국은 가맹점 업체에 컨설팅을 해줄 때 요리 교육에 평균 5일도 걸리지 않는 등 너무 기간이 짧습니다. 20∼30년 이상 할 수 있도록 충분한 검토와 준비를 해야 합니다. 미국에 100년 넘은 요리 컨설팅 회사가 많은 것은 그만큼 요식업에 대한 자세가 진지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처럼 '할 거 없으면 치킨집이나 차리지'라는 생각은 미국에서는 절대 통할 수 없거든요.”
그는 해외에서 한식당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조언으로 '기본에 충실할 것', '신뢰할 수 있는 요리사를 뽑아 주방을 맡길 것', '요리를 백화점식으로 나열하지 말고 한 가지 콘셉트를 확실하게 세울 것', '충분한 시간을 갖고 준비할 것'을 꼽았다. 이어 "10억 원 들인다고 좋은 식당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콘셉트만 확실하며 1천만 원으로도 인기 식당을 차릴 수 있다”고 단언했다.
“사람들은 입간판만 보고도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갈 것인지 말 것인지 정하기 때문에 어떤 고객에게 어떤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게 확실해야 합니다.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한식도 일식이나 베트남 요리처럼 현지인이 즐겨 찾는 음식이 될 수 있습니다.”
<연합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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