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래 살았던 시카고 교외, 집 가까이에 에버그린 팍이라는 동네가 있다.
그 곳을 지나칠 때면 생각나는 사람이 유너바머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장소에서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는 더구나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사람이라 꽤 관심이 간다. 종신형 살고 있는 그가 지금 감옥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감정을 가지고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등 나의 좌뇌와 우뇌는 바쁘게 활성화 된다.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 미국 대학가와 항공회사, 정부기관에 폭탄물이 우송돼 3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부상한 사건이 있었다. 연방수사국은 범인을 ‘유너바머’ 라고 부르며 체포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잡지 못했다. 그러던 중 현대기술 문명이 인간성의 황폐화와 자연환경의 파괴를 가져온다는 장문의 편지를 범인(본명 ?테드 카진스키)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보냈다. 이를 본 그의 동생이 형의 편지임을 직감하고 FBI에 귀띔하면서 사건은 해결되었다.
유너바머는 IQ 170의 천재 수학자였다. 16세에 하버드에 입학했고 미시건대에서 단 1년만에 박사학위를 받은후 UC 버클리 조교수로 발탁되었다. 하지만 강의를 통해 수학지식을 잘 전달하지 못했고, 동료 교수들과도 거의 접촉이 없었다. 결국 2년 만에 사직하고 몬태나주 한적한 곳에 들어가 움막집을 짓고 은둔생활을 했다.
1978년 잠시 문명사회인 시카고로 돌아와 공장직공 일을 했으나 해고당한 뒤 다시 몬태나로 잠적하고 만다.
이후 그는 기술문명 사회를 비난하고 부모를 원망하면서 편집과 망상에 사로잡힌 정신분열증 환자가 된다. 결국 폭탄을 만들어 문명사회를 위협하다가 체포되었다.
유너바머는 한 살 이전 고열과 피부발진으로 격리병동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있었다. 당시 가족 방문은 이틀에 단 한번 2시간만 허락되었다. 방문시간이 다되어 어머니가 간호사에게 아기를 넘길때마다 아기는 거칠게 울어댔다. 이렇게 강제로 떼어졌을 때 받았던 마음의 상처가 그의 삶을 지배했을지도 모른다. 유아는 자신과 어머니를 구별 못하고 일심동체로 여긴다. 또한 청소년 시절 체구가 작은 그는 스포츠는 멀리하고 공부만 해서 또래로 부터 괴짜로 자주 왕따를 당했다.
그때의 분노와 외로움이 그의 성격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인간의 뇌는 100조나 되는 뇌세포들과 그의 몇 백배나 되는 뇌세포들 간 연결망으로 꽉차있다. 따라서 신체 내부와 외부환경의 변화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어렸을 때 체험한 고열과 트라우마는 미성숙한 뇌 조직 발달과정에 불규칙한 패턴을 제공함으로써 뇌의 어느 부분은 더 활성화하고 다른 부위는 덜 발달됐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상상력, 창조력, 직감력의 창고인 우뇌 부위가 그렇다. 우뇌의신경세포는 우리의 느낌도 관장한다. 이런 저런 것들이 유너바머를 천재성과 감정조절이 힘든 괴짜 기질의 소유자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천재는 분석력, 판단력, 논리력, 집중력, 산술력 등의 거처인 좌뇌가 발달한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우수한 우뇌의 소유자들이 많다. 천재들은 직감적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거기에 상상력을 덧붙인다. 그러면 좌뇌는 그 아이디어를 세상에 탄생시키는데 기여하는 수단 역할을 할 뿐이다.
천재는 우뇌의 발달로 감정이 예민하고 기복이 심하다. 대부분의 천재들이 그렇다. 이렇게 천재성과 괴짜는 실제로 공존할 수 있다.
오래 전 하버드대 사회심리학 교실 조사에 의하면 세상 사람들의 1/3은 김삿갓 같이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그저 세월 따라 살고, 2/3가 조금 못되는 사람들은 희미하나마 목표를 가진 사회인으로서 평범한 삶을 산다. 극소수만이 천재성을 바탕으로 뚜렷한 목표를 세운 다음이에 집착하고 몰입한 끝에 유명한 지도자, 과학자, 문학가 등으로 살았다.
그 극소수에 속하기를 원한다면 우선 태어날 때 혹은 아주 어려서 어떤 연유로 우수한 우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그 다음 피나는 노력과 연습으로 우뇌를 더 발달시켜야 한다. 동시에 감정조절도 잘 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유너바머 같이 될 수도 있다.
천재성도 끈기도 없다고 실망할 건 아니다. 오히려 정신질환에 걸릴 가능성이낮으니, 평범한 삶의 소유자로 일생을 살아가는 것도 나쁠 건 없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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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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