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처음 시작한 나라는 아테네다. 수많은 나라가운데 왜 하필 아테네만 민주주의를 선택했는지에 관해서는 여러 학설이 분분하지만 이는 아테네의 군사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대부분의 나라들이 왕이 군사를 뽑아 무기를 대주는 징병제를 택하고 있던 것과 대조적으로 아테네는 자원병제를 택하고 있었으며 무기도시민 각자가 마련해야 했다. 무기 구입에도 상당한 비용이 들어갔기 때문에 군인은 주로 생활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자영농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렇게 자력으로 중무장한 중장 보병(hoplite)은 아테네의 주력부대였다.
이들은 왼 손에 든 방패로 왼쪽에 있는 전우를 보호하는 형식의 대오(phalanx)를 구성했는데 이는 당시까지 누구도 뚫지 못하는 철벽이었다. 장거리 달리기 경주의 기원이된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가 페르샤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이렇게 자신의 피와 재산으로 나라를 지킨 중장 보병들은 전쟁이 끝난 후 당연히 국사에 대한 발언권을 주장했고 이를 거부할 명분도 실익도 없었기 때문에 시민 모두가 정치적 결정에 참여하는 민주주의가 시작 됐다는 것이다. 시민 모두라 하지만 여자와 노예, 영주권자 등 외국인과 미성년자는 제외됐기 때문에 실제 참정권이 있는시민은 아테네 주민의 10% 미만으로 추산되고 있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중요한 이슈에 대한 토론을 거쳐 국론을 모을 수 있어 일단 결정이 나면 시민 전체가 단결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이점도 있었지만 때로는 대중 선동가에 휘둘리거나 감정적인 결정으로 일을 그르치기도 했다. 아테네 시민들이 민주적으로 내린 결정 중 대표적으로 잘못된 것이 기원전 399년 당시 최대의 철학자이자 지금까지도 4대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소크라테스에게 다수결로 독배를 내린 것이다. 이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그 후 400년 뒤 예루살렘의 군중들도 예수와 강도 바라바 중 하나를 택하라는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목청 큰 다수의 뜻에따라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미국의 창업자들은 민주주의의 장단점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연방 헌법을 통해 다수의 횡포와 잘못된 결정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뒀다.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뽑지 않고 선거인단을 둔다든지 선거에 의해 뽑히지 않은 연방 대법관이법의 효력에 대한 최종 심판권을 갖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를 정치학자들은 국민과 권력 간의
‘헌법적 거리’라 부른다.
주요 정당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을 후보로 정하지 않고 전당 대회를 열어 대의원들이 후보를 뽑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의원들은 1차 투표 때는 예선과 코커스에서 지지 의사를 밝힌후보에 표를 던져야 하지만 2차, 3차때는 이런 구속이 점차 없어진다.
공화 민주 양당의 경우 지난 100여년 동안(민주당은 1832년, 공화당은 1856년 이후)
90차례의 전당 대회가 열렸다. 이중 30%가 과반수 득표자가 없어 2차, 3차 투표가 계속되는 중재 전당 대회였다. 민주당은 1952년, 공화당은 1948년이 마지막 중재전당 대회여서 아주 옛날 일 같지만 전체로 보면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
이런 중재 전당 대회 가운데 1차투표에서 1등을 한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된 경우는 민주당은 16번 중 일곱, 공화당은 10번 중 세 번에 불과하다.
중재 전당대회에서 후보가 된 후보가 본선에서 꼭 불리한 것도 아니고 형편없는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다.
민주당은 이렇게 후보가 된 16명 중 6명이 본선에서 이겼고 공화당은 10명 중 5명이 승리했다. 역사상 큰 업적을 남긴 에이브러험 링컨과 프랭클린 루즈벨트 등이 모두 중재 전당 대회 1차 투표에서 지고 나중에 후보에 지명된 인물들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쟁에서 도널드덕만도 못한 트럼프가 아직 1위를 달리고는 있지만 과반수를 얻기는 쉽지않아 보인다. 그럴 경우 본선 필패가 거의 확실한 트럼프 대신 다른 인물을 뽑는 것은 공화당 대의원들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공화당 유권자와 대의원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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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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