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처녀 제 오시네. 새풀옷을 입으셨네, 하얀구름 너울쓰고, 진주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 오시는고,,,,,’ 따사로운 햇빛아래 있으니 나도 모르게 봄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노랫말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싶고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뱃속이 간지럽고 가슴이 설렌다.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던 날, 이웃 할머니가 새흙과 비료를 뿌리며 텃밭 준비 하는 것을 창가로 힐끔거리던 아이가 뒷마당에 나가자고 졸라댔다.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찾듯 열심히 땅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있는지를 연신 찾아다녔다. 기나긴 겨울을 지나 이젠 봄이 왔노라고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 있다 보니 이마에선 송글송글 땀까지 맺혔다. 언젠가부터 알아차리기 시작하면 가버리는 봄은 너무 짧기 때문인지 오히려 더 반갑고 아쉽고 강렬하다.
주말이 되어 마트에 들렀는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게 있었다. 바로 푸르고 싱긋한 봄나물이었다. 여기도 봄, 저기도 봄이라는 생각과 함께 푸릇한 쨍한 봄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그냥 보기만 해도 설레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겐 봄나물로 만드는 음식은 일종의 공부이자 숙제일수도 있다.
하지만 머릿속에 아련히 떠오르는 달래무침과 냉이 된장국의 맛이 기억나 호기롭게 여러 봄나물을 집어들었다. 생소하다. 이걸 어쩐다. 그래도 한아름 사들고 돌아오는 길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제 가면 언제 올 지 모르는 봄을 나만 놓치는 거 아닌가하는 살짝 유치한 마음에 장바구니 가득 담아온 봄나물은 이제 어떻게 요리해야 할 것인가 싶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까, 인터넷 유명 블로그를 찾아볼까’집에 오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살면서 식재료를 두고 이렇게 오래도록 고민해보긴 처음이다. 왠지 싱싱한 봄나물을 냉장고에 오래 두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 요리해서 먹어도 쌉싸한 그 향기와 맛에 봄을 느낄 수 있겠지만, 제철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일년내내 볼 수 있던 다른 과일이나 야채와는 급이 다른 이 귀하신 몸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설레기까지 했다.
언제나 냉이와 달래가 헷갈려하는 전혀 기본상식이 없는 내게는 더욱 그러하다. 순간 미국에서 태어나 앞으로도 계속 미국에서 살아갈 아이도 이걸 내내 헷갈려할까 싶어, 열심히 공부하게 시작했다.
봄나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했고, 그저 제철음식으로만 여기기엔 너무나 많은 영양분과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아주까리, 산초, 돌나물, 달맞이꽃, 두릅, 참나물, 모싯대, 쑥, 더덕, 머위, 곰취, 엉겅퀴, 민들레, 쑥 등 어디선가 들어본 반가운 이름부터 처음 들어본 생소한 것까지 그야말로 사방천지에 봄나물이 널려있는 듯했다.
봄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쑥은 현대인의 질병의 원인인 스트레스와 잘못된 식습관으로 인해 발생한 몸속의 독소를 배출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신경을 안정시켜준다 한다.
향기 가득한 냉이는 나물 중에서 단백질 함량이 가장 풍부하고 철분과 칼슘 등의 무기질 함량이 풍부해서 고혈압을 예방해고, 체내의 나쁜 세균카로틴성분이 시력을 보호하고 눈의 피로감을 줄여주며, 비타민 A성분이 풍부해 춘곤증을 예방해주며, 해독작용에도 좋다 한다.
달래는 한약재로 소산이라 불리며 토사곽란과 복통을 치료제로 쓰이며, 특히 칼슘이 많아 빈혈과 동맥경화에 좋다. 달래의 칼륨은 몸속의 나트륨과 결합하여 밖으로 배출되어 서양식습관에서 문제되는 염분과다섭취로 인한 성인병을 예방한다고 하니 미국에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음식이다.
씀바귀는 고들빼기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있는데, 위장을 튼튼하게 해 소화기능을 좋게 하며, 암을 예방하는 토코페롤(비타민 E)라는 성분보다 항암효과가 14배 높다고한다.
이렇듯 봄나물은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돋우며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는 자양강장음식으로 현대인에게 가장 문제시되는 스트레스를 받을때 분비되는 부신피질 호르몬의 분비와 조절을 도와 노화를 방지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봄나물을 공부하다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많아졌다. 스트레스많은 남편과, 성인병이 염려되는 부모님, 시력보호가 필요한 아이와 아이친구들, 독소배출이 필요한 친구들, 지인들이 자꾸 생각났다. 봄나물은 그 존재만으로 한국땅의 흙을 그립게 하고, 친구와 가족을 생각나게하는 요물이었다.
오래 전 유학시절, 멀리 운전해 간판도 없이 구멍가게보다 더 비좁은 한인마트에서 김치 한병을 사들고 오면서 느끼던 그 뿌듯함을 잊을 수 없다. 몇 달을 두고두고 아껴먹을 때마다 혀끝부터 눈물이 나던 사뭇치게 그립던 한국의 맛을 이젠 가까운 곳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 감사함을 잠시 잊었다. 그런데 또 다시 감사하다. 한국인들만 느낄 수 있는 봄기운이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다시 일어나게 하는 봄이라 감사하다.
이 봄, 목련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 4월의 노래처럼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봄나물에 흠뻑 취해 가슴속부터 시린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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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다미 (갤러리 부관장/ 릿지필드 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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