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 왕성했던 30여 년 전 LA 집의 방들을 새로 페인트칠했다. 게딱지만한 집이라고 우습게 여기며 시작했다가 일주일 넘게 중노동을 하고는 그 후 두번 다시 페인트칠을하지 않았다.
벽은 수월했지만 천장이 문제였다. 위를 바라보느라 고개를 뒤로 제키고 몇시간씩 작업을 하고는 일을마치고 나니 목덜미가 뻐근하고 어깨가 결려 여러 날을 고생했다.
까마득한 옛날 일이 새삼 생각나는 이유는 지금도 내 목덜미가 뻐근하기 때문이다.
시애틀의 셋방 아파트를 내가 새로 페인트칠한 게 아니다. 사정 상 며칠 전 스마트폰을 다른 브랜드로 갑자기 바꾼 게 탈이었다. 나는 IT의 왕초보다. 종전 전화기도 제대로 사용 못한 주제에 새전화기를 익히려고 만지작거리며 장시간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인것 같다.
요즘엔 고개를 곧추 세운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 거리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남녀노소 거의모든 사람이 한결 같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아니면 랩탑을 내려다보느라 장시간 구부정한 자세이다. 이메일을 점검하고, 카카오톡 등 문자메시지(텍스팅)를 보내고, 다른 정보를 서핑하는데 열중한다. 이들도 나처럼 목덜미가 뻐근할 터이다.스마트폰 소지자들은 하루 최고 4시간, 연간 1,400시간 가량을 전화기 사용에 할애한다는 신문기사를 최근 읽었다. 이들이 장시간, 반복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비정상적 자세를 취하면 목뼈가 굽어지고 목덜미와 어깨 통증은 물론 두통과 관절염 증세도 일으킨단다.
특히 10대들이 반복적으로 오래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면 목뼈가 50대처럼 퇴화된다고 했다.
이런 21세기형 신종 병에 ‘텍스트넥(Text Neck)’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사람이 있다.
플로리다주 척추교정 의사(카이로프랙터) 딘 피시맨이다. 그는 운동이나 교통사고와 관계없이 목뼈통증을 호소하는 청소년이 많아지자 X-레이 검진결과 이들의 목뼈가 흉하게 휘어져 있음을 발견했고, 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장시간 텍스팅하는 공통점이 있음을 알아냈다.
사람의 머리는 정상적인 자세일때 목뼈와 근육에 10~12파운드의 압력을 가한다. 그런데 국제 외과기술협회보에 최근 놀랄만한 연구논문이 게재됐다. 머리를 곧추 세운 정상자세에서 15도 아래로 숙이면 머리무게의 압력은 27파운드로 늘어나고 30도로 숙이면 40파운드, 45도로 숙이면 49파운드, 60도로 숙이면 60파운드까지 비례해서 늘어난다는 것이다.
웃어른에게 공손히 인사할 때 머리를 대체로 60도 정도 숙인다. 스마트폰을 들고 텍스팅에 열중할 때도 비슷하게 숙인다. 그럴 때마다 15파운드짜리 쌀 4포대에 해당하는 압력을 목뼈가 받는다는 얘기다.
믿거나 말거나한 말 같지만 엄연한 과학적 실험결과다. 이런 자세가반복되면 경부(목) 척추가 최고 4cm나 어긋나 결국 수술을 받아야한다니 겁난다.
의사들은 ‘텍스트 넥’을 방치하면 목뼈 퇴화현상이 초래되고 더악화되면 곱사등이 될 수 있다고경고한다. 이미 ‘텍스트 넥’을 신종관절염으로 규정하는 의사도 있다.
관절염은 통상적으로 40대 후반에 발생하기 시작하지만 스마트폰에 머리를 처박고 사는 요즘 젊은이들사이엔 20대 후반~30대 초반부터 관절염환자가 폭증할 것으로 우려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텍스트 넥’ 예방법은 간단하다. 가능한 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사용을 줄이고, 불가피하면 전자기기를 될수록 위로 올려 머리숙이는 각도를 줄이라는 것이다. 목운동을 비롯한 전신 스트레칭을 자주하고, 물을 충분히 마시며, 잠잘 때 똑바로 눕거나 옆으로 눕고, 가능하면 요가를 매주 서너 차례, 한번에 30분씩이라도 하는 게 좋단다.
내 손자는 두 살 때부터 태블릿을 갖고 놀았다. 네 살이 된 지금도여전하다. 처음엔 대견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대로 두면 ‘텍스트 넥’을 예약한 거나 다름없다. 스마트폰 보다 더 기발한 놈들이 쏟아져 나올 터이다. ‘세기의 바둑대결’에서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은 게 충격이라지만 앞으로 알파고 후손들이 우리 후손들의 건강을 어떻게 해칠지 더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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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시애틀 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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