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속도가 너무 빨라 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이다. 세상이 변혁의 소용돌이로 정신없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아 혼란스럽다.
세계 바둑계의 1인자 이세돌을 격파한 인공 지능 알파고가 신의 영역에 도전했다. 학습능력을 인지한 컴퓨터가 스스로 공부하고 판단, 결정하고 바꾸는 능력을 갖췄다니 경이롭고 두렵다. 인간이 컴퓨터 제국의 지배하에 노예로 산다는 공상과학이 가상만은 아닌 것 같다. 집채만 했던 컴퓨터가 불과 30여년 만에 스마트폰으로 변해 사람의 손바닥에 올라와 있는 시대다. 삶의 윤택함과 편리함을 추구했던 첨단 과학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 예측하기가 힘들다. 혹시 바코드 말세론의 종말로 치닫는 것은 아닐까.
올 1월 개봉된 ‘로봇, 소리’는 미국 정보국이 극비리에 운영하는 감청 위성 로봇과 주인공(인기 드라마 미생에서 과정역할로 뜬 이성민)의 우정을 그린 공상과학 영화다. 지구 위를 떠돌며 온갖 도청 정보를 미 정보국에 전달해오던 로봇이 자신이 제공한 정보로 폭격을 당한 아프가니스탄의 한 마을에서 어떤 소녀의 살려달라는 절규를 듣는다. 로봇 위성은 곧바로 괘도를 이탈해 지구로 떨어지는데 마침 지하철 참사때 실종된 딸아이가 살아있다고 확신하며 찾아다니는 주인공을 만난다. 정보국에 쫓기는 로봇은 지구상의 모든 음성 기록을 뒤져 딸의 자취를 찾는 주인공을 도와준다. 대신 주인공은 소녀를 찾아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려는 로봇을 돕는다는 내용이다. 로봇이 감성을 가지고 자신의 실수를 자각할 줄 안다는 황당무계한 영화지만 인간 바둑 천재를 뛰어넘은 알파고를 보니 허황된 상상만은 아닌 것 같다.
자주 통화하는 한 원로 약사가 요즘 약국에서 일할 로봇 시스템을 구상중이라고 한다. 약국 일을 로봇이 대신한다는데 조금은 의아한 생각이 든다.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 로봇이 약을 담고 약사는 맞는 약을 담았는지 확인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그는 약사라는 직업이 종국적으로는 사라질 지도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이 우려가 약국만은 아닐 것이다. 자동차 조립부터 전쟁 수행, 심부름, 심지어는 말동무나 복잡한 수술까지 이미 로봇의 진출로 수많은 인간의 일자리가 거품처럼 사라지고 있다.
사용하지 않은 것은 도태되는 것이 자연계 불변의 법칙이다. 사용하지 않는 인간의 꼬리뼈가 퇴화돼 명맥만 유지하는 것처럼, 사용하지 않는 인간의 두뇌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인간계가 결국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우수한 두뇌 그룹인 ‘대뇌’ 소지 그룹과 로봇에 빼앗겨 정신세계가 피폐해진 ‘소뇌’ 그룹으로 분리돼 지배와 피지배의 신 노예 사회로 변할지 누가 알겠는가.
미국도 지금 변혁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고 있다. ‘막말’로 정치계에 돌풍을 몰고 오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와 ‘사회주의자’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말이다.
이들은 ‘꿈의 나라’ 미국에서 사라져가는 ‘꿈’의 부활을 외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경기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중산층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일자리는 줄어들고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부유하게 살 수 있던 미국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어 졌다. 포춘 500대기업 CEO들의 연봉이 최근 30여년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종업원 평균 임금의 무려 380배에 달한다. 이대로 간다면 가진자와 갖지 못한자들의 지배와 피지배 계급 형성도 우려된다.
빌 클린턴은 1992년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로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자유무역협정, 글로벌화 등으로 미국의 제조업은 쑥대밭이 돼 버렸다. 미국 대선의 화두는 벌써 20년 넘게 경제에 쏠려 있지만 소득 불균형의 양극화는 해결책이 보이질 않는다. 의학과 정신세계의 발달로 인간도 100세 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예전의 60세가 요즘은 80세로 변했다. 하지만 ‘펄펄’ 나는 은퇴자들의 60%가 소셜시큐리티 연금에 의존해 생활하지만 평균 수령액은 월 평균 1,200달러가 고작이다. 이정도로는 편안하게 늙어가기에 역부족이다. 소득의 불균형, 100세 시대, 구직난 등등 거칠고 빠르게 돌아가는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중산층에게 미국의 도덕적 가치나 경제 이론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미국의 부활을 내세운 트럼프의 돌풍과 인간 평등을 외치는 샌더스의 인기몰이가 일시적인 현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중산층의 들끓는 민심이 가라앉지 않는 한 제2, 제3의 ‘트럼프 돌풍’은 계속될 것이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 살아남으려면 기자도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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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섭 부국장·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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