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스타트랙이란 티브이 시리즈가 유행했었다. 인간적이며 잘생기고 능력있는 젊은 캡틴 커크는 끝내주게 멋있었다. 캡틴 커크는 지능이 인간은 저리 가라, 끝내주게 좋은 반외계인, 닥터 스파크를 위시해 모두 한가닥하는 멤버들을 몰고 우주를 다닌다. 그러다 모르던 행성을 방문하고 그때마다 무언가를 발견, 대적하여 결국엔 이해와 화합, 그리고 성취를 이루어내는 시리즈였는데 그 프로를 보고 있으면 내가 대단히 지적이며 더 근사해지고 더 많은 걸 알게 된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우주 속의 일을 우리 함께 상상해간다는 식의 성취감(?)을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프로에 종종 나오는 설정이 있었다. 어느 행성에 가보니 모두들 무서운 통치자에게 무서운 경외감을 갖고 복종하는데 그게 캡틴의 일행의 눈으로 보면 뭔가 석연치 않다. 그래서 그 존재와 맞서 싸우다 결국은 정체를 발견해 내는데 그게 잘 프로그램된 컴퓨터였다는 스토리였다는 거. 그 때 보여주던 컴퓨터는 큰 방을 가득 채울만큼 덩치도 크고 어린애 장난감 빤짝이듯 삐삐삐삐 소릴 내며 요란스레 여기 저기 껌뻑껌뻑, 그러다 여러개의 소리를 합쳐 다 갈라진 목소리의 모노톤으로 짧은 문장의 명령을 되뇌이는, 순진한 컴퓨터였다. 우리의 상상이 그정도 밖에 안되는 시절이었던 거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면 정말 우린 말로 형용할수 없을 정도의 진화를 지난 50년에 이루어냈다. 세계 인간 문화유산에 등재 되었다는, 우리 나라의 이산가족 찾기를 눈물을 흘리며 보고 있다보면 그 시절에 쎌폰이 없었던게 통탄하고 싶게 아쉽다. 폰만 있었다면 그 많은 아픈 이별이며 그 많은 아픔과 상처를 막을수 있었을 텐데 싶다. 사람들 팔자가 달라졌을텐데..
내가 처음 한국일보에 글을 쓰던 80년 중반에는 컴퓨터는 커녕 팩스도 없어서 일주일에 한번씩 원고 딜리버리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출입을 해야 했었다. 그러다 팩스가 나와 팩스로 보내면서 정말 신기했다. 어떻게 종이 위의 글자를 한번 스르륵 흝고 지나더니 그 인포메이션이 저쪽으로 전달되는가? 거침없는 발달 때문에 이젠 이메일로 원고를 보내지만 실상 가끔은 그때, 한가한 하이웨이 280를 매 주마다 드라이브 했던 게 그리워지기도 한다. 원고를 전하고 펀집부에 앉아 기자들과 한담도 나누던 시절, 신문사 직원이 모두 한식구 같이 느껴지던 그 정겨움이 그립다고 하면 늙은이의 넋두리라고 하겠지..
지금 돌아봐도 내가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었을까, 의아하리만치 정신없이 바빳던 나의 중년시절. 원고 전해주려 한 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그 고적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나는 오히려 더 지쳤을 것 같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던 그 한 시간은 내겐 오히려 쉼과 충전의 시간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볼땐 당연하다 못해 애기들의 옹알이 수준으로 보이겠지만 나는 아직도 컴퓨터의 모든 기능이 혀가 내둘릴 정도로 감탄된다. 어떻게 한국에서 보낸 카톡 문자가 그 당장 읽혀지나? 어떻게 유투브의 모든 음악이 아무 때고 내가 틀기만 하면 낭랑히 울려퍼져 나를 행복하게 해줄까? 어떻게 사진들이 저정될까? 어떻게 음성을 인지하나?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에서 마리아가 사랑에 빠지고 나서 아마도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좋은 일을 엄청 했나보다고 상기되어 노래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나는 내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이 안되는 엄청난 첨단 기능들을 맥없이 신나게 즐기다 말고 문득 ‘나, 지금 무슨 상 받고 있는 중이여?’ 자신에게 묻곤 한다. 어쩌다 이런 모든 무섭고도 황송하고 신나면서도 겁나는 문명의 이기가 코푸는 것보다도 쉽게 내 생활속으로 들어와 있는 걸까? 앞으로 컴퓨터는 더욱 더 맹렬히 발전할 것이다. 멀미나기 전에, 현기증때문에 쓰러지기 전에 내리고 싶어진다.
아무리 개발되었다 해도 인간의 머리엔 못당해내리라던 컴퓨터와 바둑 9단, 이 세돌의 대결에서 이 세돌이 연달아 세판을 지고나니 갑자기 컴퓨터가 너무도 무서워진다. 다행히 네번 째 이겼다. 캡틴 커크가 싸워 이긴 보이지 않는 독재자, 컴퓨터가 진짜로 우릴 지배할 시간이 정말 다가오는 걸까?
<
최정>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