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한국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있는 요리주제 오락 프로그램이 초·중·고등학생 희망 직업 조사 결과를 언급했는데 요리사가 상위권이라 했다.
특히 여중생들은 연예인, 의사에 이어 요리사를 세 번째 선호직업으로 꼽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한 방송 출연자는 “선호직업이라면 본인 선호직업이 아니라 남편 선호직업을 말한 건가요?”라고 물었다. 사회자는“ 물론 본인 선호직업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방송사의 요리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시골에 진행자들이 가서 재료를 직접 구해 마을 분들과 같이 그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하는 코너가 있다. 작년에 이 코너에 한 여성 마을 이장이 출연했는데 진행자, 그것도 여성 진행자가 말하기를 “어떻게 여성분께서 마을 이장이 되셨어요? 혼자 나가셨나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이것은 농담도 아니었고 재치 있는 멘트도 아니었다.
젊은 여성 MC는 지극히 구시대적이고 여성 차별주의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요새 같은 세상에 여자가 드문 직장이나 직책에 있을 때 마치 뭔가가 잘못된 것 마냥 그런 발언을 한다는 건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얼마나 갈 길이 많이 남았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실상이다.
여자 이장을 처음 접해 본거라면 “너무 멋있다” 혹은 “우리 젊은이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어 주셔서 고맙다”고 하지는 못할망정, 마치 그녀가 이장이라는 사실이 신기하다는 식으로 말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은 이장이라는 직책을 하찮게 만드는 것이며 한국사회의 여성의 위상에 대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참으로 큰 실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이들은 심각한 내용의 프로그램도 아니고 오락 프로그램에서 우스갯소리로 한 말을 너무 확대 해석한다고 한마디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중 오락프로그램들은 사람들의 사고와 인식에 많은 영향력을 준다. 게다가 오락 프로그램이 아닌 실제 상황에서 이런 언급을 들은 적도 있다.
작년에 한국정부의 어느 고위 공직자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마치 질문에 대답하기가 매우 곤란하다는 듯 표정을 짓고 오래 망설이며 말을못했다. 한 숨을 쉰 다음 고작 한다는 말이 “개인 생활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아무런 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너무 어이가 없어
서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리더십과 관련해 개인생활이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많은 일에 참견을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사람을 운영할 줄 모른다는 말인가? 다른 설명 없이는 성차별주의적인 발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박 대통령이 남자였다면 그 간부는 과연 같은 발언을 했을까?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을 평가하는 기회에서 그 정도 발언밖에 할 수 없었을까?
한국 정부를 대표하는 고위직이라면 그렇게 예기해서는 절대 안 되고 사실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미국에는 ‘lead by example’이라는 말이 있다. 리더십 위치에 있다면 거기에 걸 맞는 행동거지를 하도록 조심하고 여러 모로 좋은 롤모델이돼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네티즌이 의견 표명이 활발한 곳에서 그 오락 프로그램 댓글에는‘간재미’와 ‘가자미’의 차이를 잘못 내보낸 자막에 대해선 여섯개의 댓글이 올랐지만 이장 코멘트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지적도 없었다. 네티즌은 쓸데없는 데 핏대 올릴것이 아니라 이런 구시대적인 발언에 대해 따끔하게 지적했어야 했다.
그래야지 방송사에서도 시대 흐름에 뒤처진 자신들의 무감각을 깨닫고 반성하지 않겠는가?
방송에 출연했던 여성 이장은 사실 남편과 경선해서 이긴 사람이다.
MC의 우둔한 발언에 옆에 계시던 마을 어르신은 “동네에서 잘 하니깐 뽑았지”라며 이장을 칭찬했다.
그렇다. 여성은 분명 남성과는 다르고 따라서 리더십의 성향도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오래 전부터 여성 리더십의 속성이 전형적인 남성 리더십과 다른 점에 관심이 많아서 수리나 칸 (Surina Khan)이라는 파키스탄계 여성 리더에게 그녀만의 유일한 리더십 철학을 물어봤다.
그녀는 재단 세계에서 보기 드문 소수민족 여성 재단장으로‘ 가주 여성재단’ (Women’ s Foundation of California) 대표를 맡고 있다. 그녀는 리더로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진실성, 뛰어난 반응도(responsiveness, 직책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을 동등하게 대하는 태도), 그리고 접근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했다. 이런 리더십은 여성성의 특징들이다.
한국에서 또는 미국에서 한국계 여성 리더들은 공포와 권위를 바탕으로 한 전형적인 남성 중심적 리더십이 아닌 여성만의 리더십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키우고 이를 키워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여성 차별주의적인 사회의 구시대적 인식도 조금씩 바꿔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마침 8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여성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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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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