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역사상 최고의 연설은 역시 링컨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이다. 남북전쟁의 숱한 희생자들이 묻힌 격전장에서 링컨은 1863년 11월19일 불과 272개의 단어를 사용한 몇 분 안 되는 연설 가운데서 민주주의를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그 “국민” 가운데는 흑인들이 포함되지 않았었다. 링컨이 암살된 다음해인 1865년에 가서야 노예제도를 폐지한 연방헌법수정 제13조가 발효됐고 미국에서(해방된 노예남자들을 포함해서) 출생했거나 귀화한 사람들의 권리를 주 정부가 제한할 수 없다는 제14조는 1868년에 발효됐기 때문이다. 백인이건 흑인이건 여자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것은 1920년의 헌법수정 제19조가 출발점이었다.
그러므로 18세기말 미합중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생각했던 민주주의는 국민 보편의 민주주의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우선 투표권이 처음에는 일정한 재산소유자들에게 국한된 경우가 많았고 투표권행사에 세금을 지불했었음을 상기할 수 있다. 또한 민의에 가장 민감한 하원의원 임기는 2년제로 하면서 직접 비례민주주의 사상으론 말이 되지 않는(인구로 볼 때 비교가 안 되는) 버몬트 같은 주도 뉴욕주와 똑같이 2명의 상원의원을 연방수도로 보낼 수 있게 하면서 임기조차 6년으로 했으니 직접 민주주의에 귀족정치를 가미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 헌법의 장점으로는 독재자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한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이 마련되어있다. 헌법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조지 워싱턴 초대대통령이 두 번 임기만 하고 물러난 것이 전통이 되어오다가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4선까지 당선된 이후 1951년에 헌법 개정으로 재선까지만 가능하게 됐다.
그것과 대조가 되는 것은 대법원, 순회(공소)법원 그리고 지방법원으로 구성되는 연방사법부 판사들의 임기로서 결격사유가 생겨 탄핵소추를 당하기 전에는 종신직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도 사회최고의 엘리트층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역사 전체를 보면 오바마까지 대통령수가 44명이지만 연방대법원 판사수는 불과 122명이다.
법률과 헌법의 해석권이 대법원에 있고, 때로는 90년 이상 존재하는 판례들을 남기기 때문에 민주 공화 양당이 사망한 스칼리아의 후임을 놓고 불꽃을 튀기고 있다. 양당의 대립이 어느 정도 날카로운가는 워싱턴포스트지가 지난 2월22일자 사설에서 대법원 판사들의 종신임기를 재고해야 될 것이라고 주장한데서도 느낄 수 있다.
나의 기억으로는 50년 이상 되는 미국생활을 하면서 처음 접한 논조인데 대법원판사들의 임기를 제한하는 것이 당파싸움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게 워싱턴포스트의 주장이다. 연방판사의 종신직 제도가 18세기 말엽 채택되었을 때 미국인들의 평균수명은 50세 미만이었고 많은 유럽국가 최고법원 판사들이 70세면 퇴임한다는 사실, 그리고 뉴욕 공소법원판사의 임기가 14년, 또 FBI국장의 단임 임기가 10년 이라는 사실도 그 논설에 언급됐다.
대법원 판사들의 교육배경만 보아도 그들이 미국 최고의 엘리트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122명중에서 19명이 하버드 법과대학 출신이다. 또 10명은 예일 법대를 졸업했고 7명은 컬럼비아 법대출신이다. 현 대법원 구성을 보면 스칼리아를 포함한 하버드 법대 졸업생들이 5명이고 예일이 3명, 컬럼비아가 한 명이다.
그리고 현재 스칼리아의 공석뿐 아니라 앞으로 다른 사람의 은퇴나 사망으로 대법원 판사의 충원이 필요할 때에도 아이비리그 출신이 선호될 가능성이 아주 높을 것이다. 공립대학으로서는 미시간대학 법대가 3명을 배출했지만 메랠랜드 법대는 적어도 한명을 대법원에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일화가 있다. 서굿 마샬 전 판사가 그 법대에 지원했다가 흑인을 전혀 입학시키지 않던 시절이라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어 하워드 법대에 진학했던 것이다.
그 사건이 마샬에게 얼마나 한이 되었던지 그가 대법원 판사 퇴임 후 메릴랜드 법대가 도서관을 마샬 도서관으로 명명하는 기념식에 그를 초대했을 때 그는 불참하고 만다. 좌우간 연방판사의 종신제 폐지는 헌법 개정으로나 가능한 일이라서 지금으로서는 아주 요원한 일이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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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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