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내내 노랫 가락이 머리 속을 따라 다닌다. ‘송알송알 싸릿잎에 은구슬...’ 봄 기운이 완연해서인가? 파릇파릇 손을 내미는 나뭇잎새들이 너무 예뻐 내 마음마저 봄 아지랑이처럼 아롱대더니 기여코 예쁜 노랫말에 잡힌 것 같다. 어떻게 그런 말이 엮였을까? 그런 노랫말을 지어낸 이는 얼마나 예쁜 마음씨를 갖었을까?
송알송알 싸릿잎에 은구슬/ 대롱대롱 거미줄에 옥구슬/ 조롱조롱 풀잎마다 총총/ 방끗 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단어를 하나 하나가 너무 예뻐 알사탕 굴리듯 입속에 굴리며 마치 내가 대여섯 살 먹은 어린애가 된 기분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스튜디오를 접고나니 내가 얼마나 그곳에 매어 있었던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집에 있어도 마음은 늘 숨가쁘게 그곳으로 향해 있어 새봄이 오고 잡초가 무성해지면 잡초 미운 생각만 했지 잡초를 뽑고 흙을 만지며 흙이 주는 기쁨을 충만하게 즐기지 못했다.
드디어 눈물로 내 애물단지를 처리 하자 갑자기 숨쉬는 공기마저 느긋해 진 것 같다. 올해는 일찌감치 잡초와의 전쟁에 나섰다. 흙 일은 해도해도 끝이 없다. 그래도 몇시간씩 나가 앉아 뿔을 뽑고 나면 마치 혁혁한 공을 세우고 집에 돌아온 노장군처럼 지친 자신이 대견하다.
몇 년동안 뿌리를 갈라주어야지 하고 벼르기만 했던 피오니도 고루고루 나눠 심고 개나리와 라일락도 가지를 쳐 주었다. 이십 여년전 이 집에 이사 올때 전주인이 하도 집을 험하게 써서 정말 머리위의 지붕이 있는 것만 감지덕지할 지경이었다. 휑한 마당에 해마다 하나씩 하나씩 꽃도 심고 과일 나무를 심었다. 사과, 감, 대추, 레몬과 오렌지, 배나무, 석류나무.. 한 그루 한그루 내 손으로 심고 물을 주고 가지 쳐 준 나무들은 심을 땐 꼭 손가락 만한 굵기였다가 해가 가면서 어른 장딴지만하게 굵어진다.
그런데 그저 과일 나무 있는게 좋았지 어느 곳에 심어야 하는지를 몰랐다. 딴에는 창가에 심으면 그늘을 줘서 좋겠다 싶었다. 또 어릴 때 읽은 책속에서 이층의 방에 있는 아이가 부모 몰래 창문으로 나와 창가의 나무를 타고 내려오는 스토리 같은 게 근사한 느낌이 나서 침실 창문 바로 앞에 나무들을 심었다. 그런데 나무를 아는 사람들이 보고 나무는 집 가까이 심는게 아니란다.
얌전해 뵈는 나무들이 정작 뿌리의 힘이 엄청나 집이 망가진단다. 그 소리를 들으니 앙콜 왓트의 석조건물들을 칭칭 감싸듯 가지와 뿌리가 내린 음습한 모습이 떠올라 조바심이 쳐진다. 남편을 살살 꼬드겨 레몬트리부터 작살 내기로 했다. 오랜 친구마냥 집 앞에 서서 정말 좋은 열매를 맺어준 예쁜 나무였는데... 레몬꽃의 향기가 차암 싱그러웠는데... 나무를 베며 미안해, 미안해..를 뇌였다.
다음은 오렌지 나무와 배나무 차례다. 세월이 좋아져서인지 우리 집 기운이 좋아서인지 우리 집의 과일 나무들은 정말 맛이 좋은 열매를 맺어 주었었다. 나무에게도 생김새가 있는 건지 내 눈에 우리 집 나무들은 정말 생긴 것도 잘 생기고 열매들도 맛있고 보기 좋았다.
그런 나무들을 베어버려야 하다니.. 내가 뭘 몰라서 일이 이렇게 됐구나 싶어 나무들에게 미안하다. 나무를 베어버리기가 너무나 아까워 전문인 이라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 정도 크기의 나무를 옮기는 건 꽤 달란다. 할수 없이 전부 베어버리고 새로 심기로 했다. 돌아보면 세월은 금방 간다. 회초리 만한 묘목이 우람하게 되는 것도 그리 더디지는 않았다.
나 역시 어릴 적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건만, 할머니들은 날 때부터 할머니로 태어나는 줄 알았건만 나 또한 어느 새 할머니의 삶으로 들어서지 않았던가. 남들 보기에 봄 바람속의 복사꽃처럼 곱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할머니의 삶은 참으로 널널하다.
나도 겪어봐서 잘 알지만 애들 교육 때문에 안달복달하며 뛰어 다니는 예쁜 엄마들의 시절은 사실 보기에 예쁜 것 빼놓고는 고달픈 때이다. 예쁘고 미안하고 아깝지만 벨 건 베야지. 또 사서 심자. 또 봄은 오고 또 나무는 크고 또 애들은 어른이 되며 어느 날 나는 흙으로 돌아 가겠지. 신발 속에 들어온 흙을 털어내며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본다. 싱그러운 봄 냄새... 송알송알...
<
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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