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주에 사는 친척 아들이 LA로 이주할 계획이라며 한인타운에 괜찮은 아파트를 알아봐달라고 해서 인터넷을 서치하다 깜짝 놀랐다. 버몬트가에 지은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눈에 띄어 문의해보니 600여 스퀘어피트 남짓한 1베드룸의 렌트가 자그마치 월 2,500~3,500달러에 달했기 때문이다. 비교적 ‘고급진’ 아파트들의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윌셔가 한 주상복합 아파트의 ‘손바닥만 한’ 스튜디오는 월 1,600~1,700달러, 1베드룸은 2,000달러를 훌쩍 넘었다. 한인타운 아파트 가격이 비싸졌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인터넷 상으로 살펴본 이들 아파트의 인테리어나 부대시설은 웨스트우드나 할리웃 지역의 럭서리 아파트에 못지않았다.
최근 몇 년간 LA 한인타운에는 망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변화’를 실감하는 것은 하루가 멀다하게 들어서는 럭서리 아파트들이다. 덕분에 한국 방문객들로부터 ‘구린 동네’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던 한인타운의 거리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지하철역이 자리 잡은 윌셔와 버몬트 길 주변을 예로 들면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패스트푸드점과 레스토랑, 커피샵이 줄줄이 늘어서 한인과 타인종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흡사 강남이나 웨스트우드의 모습과도 닮았다는 느낌이다.
한인타운 개발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윌셔, 버몬트, 6가, 버질 등 주요 도로에도 지금도 레미콘 차량 행렬이 줄을 잇고 있으며 더 많은 럭서리 아파트와 주상복합 프로젝트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3~4년 내 추가되는 주거 유닛만도 어림잡아 1,000여개는 웃돌 것이다.
한인타운의 개발 열풍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사통팔달의 교통 여건과 다양한 생활편의 시설이 밀집해 있어 편리하다는 것이다. 아주 만족스런 수준은 아니지만 예전에 비해 크게 줄어든 범죄율도 한 몫하고 있다. ‘투자가치’도 뒤지지 않아 한인은 물론 주류 자본과 차이나 머니까지 개발에 가세했다. 많은 주민들이 이런 높은 렌트를 부담하면서도 사는 것은 한인타운이 ‘괜찮은 주거타운’이 됐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K팝과 한류 바람, 한인타운 활성화, 타인종 유입 증가 등으로 타운업소들의 고객층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얼마 전 친구와 6가의 한인샤핑몰내 시푸드 바에 들어갔는데 종업원부터 고객까지 대부분이 비한인인 데다 영어권이라 놀란 기억이 난다. 백인과 히스패닉, 아시안들이 뒤섞여 코리안 바비큐를 맛보겠다며 기다리는 행렬도 이젠 낯선 풍경이 아니다. 몇몇 대형 찜질방의 경우 한인과 비한인의 고객비중이 역전된 지도 오래다. 10~20여년 전 한인타운 모습을 떠올리면 상전벽해다. 타인종 사이에서 한인타운이 먹고 놀고 샤핑하고 즐기기 좋은 ‘가보고 싶은 곳’으로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인타운의 성장과 개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닐 터. 특히 저소득층이나 영세업주 입장에서는 씁쓸하기도 하다. 신규 개발 프로젝트 상당수가 럭서리 대형 아파트나 대형 주상복합 위주로 이루어지면서 가뜩이나 비싼 한인타운 렌트 급등을 부추긴다는 지적 때문이다. 여기다 우후죽순 격으로 투자수익만 노린 기존 상가의 철거와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비즈니스 오너들도 늘고 있다.
은행 융자와 쌈짓돈을 톡톡 털어 몇 년전 한인타운에 어렵게 일식집을 차린 김모씨도 그 중 한명이다. 개업 초반 엄청난 시련을 견뎌내고 오직 손맛과 신선함, 친절함으로 겨우 자리를 잡아가던 김씨는 최근 랜드로드로부터 퇴거 노티스를 받았다.
“오랜 기간 장사를 하겠다는 각오로 시작했는데 건물이 팔리고 재건축을 명분으로 나가라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김씨는 “권리금 한 푼 못 받고 쫓겨나가야 한다니 앞이 캄캄하다”고 한숨지었다.
이런 재개발 프로젝트들은 한인타운 상권 일신과 활성화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것은 맞지만 사실 ‘공급 초과’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실제 한인타운내 기존 샤핑몰들 중 100% 입주 율을 기록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1~2년새 입주자를 채우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는 신축 상가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교통 영향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도 의심이 든다. 6가 주변의 대형 샤핑몰들이 들어서며 인근의 교통체증이 극심해진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러시아워 때는 한인타운 안에서 웬만한 거리를 이동하는 데도 30여분이 걸리는 것은 예사다. 물론 이는 한인타운 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비즈니스 밀집도가 높고 도로 폭이 좁은 한인타운의 임팩트는 상대적으로 큰 것 같다. 극심한 트래픽은 오히려 찾아오는 고객마저 쫓을 수도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특정 선호 지역에만 개발이 집중돼 자칫 같은 한인타운에서도 지역별 불균형이 심화될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인타운은 우리의 얼굴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의무도 있다는 말이다. 20~30년 후 아니 50년 후의 한인타운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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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광 특집2부장·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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