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검 다루는 ‘죽은 학문’ 오명, 최근 MRI 등 발달로 연구 활발
▶ 먼지 찬 허파 등 흡연증상 확인, 환자 치료에 직접적 도움 제공
해부학은 죽은 사람이 대상이라 ‘죽은 학문’으로 불렸지만 최근 절단해부학 등 관련 기술의 진보로 환자치료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살아 숨 쉬는 학문’으로 거듭나고 있다. 흡연자의 허파를 입체화 한 3D영상.
보통 의사들은 해부학을 공부하면서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감성을 겸비한 진짜 의사로 거듭난다.
넋이 없는 차가운 시신을 해부하면서 ‘환자가 얼마나 아플까?’ 보다 ‘환자가 어째서 아플까?’를 비로소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해부학은 죽은 사람이 대상이라 ‘죽은 학문’으로 불렸다. 하지만 최근 자기공명촬영(MRI) 등 영상기술의 발달로 시신을 평면으로 절단해 보는 절단해부학 등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환자치료에 직접적 도움을 주는 ‘살아 숨 쉬는 학문’으로 거듭나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섬뜩하면서도 호기심으로 가득한 해부학의 세계를 엿본다.
<흡연, 비만은 죽어서도 문제>
“담배는 죽어서도 백해무익하다”고 해부학자들은 말한다. 살아서 담배를 많이 피운 사람은 사후 기증 시신으로도 환영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해부학자들에 따르면 평생 담배를 피운 사람의 허파는 검은 반점으로 가득차 있다.
정민석 아주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는 “흡연자의 시신은 ‘허파 먼지증(pneumo-coniosis)’이 심한데, 담배를 피우지 않은 시신과 뚜렷이 차이 난다”고 했다. 흡연자 허파는 딱딱해서 해부하기도 힘들다. 정 교수는 “흡연은 죽어서도 민폐”라고 했다.
담배와 함께 비만도 문제다. 의대 해부학교실에서는 시신을 기증받으면 살아 있을 때 모습으로 고정(fixation)하는 방부처리를 하는데, 이 때 혈관 상태가 안 좋은 시신은 고정액이 온몸에 고루 퍼지지 않아 훼손 우려가 크다.
정 교수는 “살아서는 동맥경화로 협심증과 심근경색이 걱정이고, 사후에는 고정액이 온몸에 퍼지지 않아 문제”라며 “남을 위해서라도 평소 체중 관리와 금연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엉덩이 큰 여성이 아이도 잘 낳을까>
왜 비뇨기관을 통한 병원균 침투는 여성이 더 많을까, 여성의 유방 크기는 어떻게 결정될까, 엉덩이 큰 여성이 아이도 잘 낳을까…. 해부학의 창(窓)을 통한다면 베일속 인체의 신비도 이내 진면목을 드러낸다.
해부학적으로 여성 요도는 음핵과 질 사이로 곧장 열려 짧은 데다, 질과 항문에서 가까운 곳으로 열리므로 주변 병원균이 요도를 타고 퍼지기 쉽다.
해부학자들에 따르면 유방 크기는 선천적으로 결정되는데, 유방 속 피부밑조직 크기가 유방 크기를 좌우한다. 유방이 크다고 젖이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젖 분비는 젖샘에 달렸기 때문이다. 큰 엉덩이가 출산에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다.
해부학적으로 골반뼈는 위와 아래가 뚫린 세숫대야 모양이다. 위로 뚫린 구멍이 위골반문, 아래로 뚤린 것이 아래골반문이다. 엉덩이가 크더라도 피부밑조직만 발달하고 골반뼈가 넓지 않으면 출산에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산모의 엉덩이 크기보다 위골반문과 아래골반문 크기를 통해 자연분만 할지, 제왕절개 할지를 결정한다.
뼈 모양새는 그 사람의 성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해부학자들은 첫째 목뼈(고리뼈)의 위를 잘 움직이는 사람은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첫째 목뼈의 아래를 잘 움직이는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이다. 첫째 목뼈 위에 있는 관절은 고개를 앞뒤로 굽히고 펴게 한다. 고개를 끄덕이는 긍정의 관절인 것. 이와 달리 첫째 목뼈 아래에 있는 관절은 고개를 양 옆으로 돌리게 한다. 고개를 젓는 부정의 관절인 것.
정 교수는 “긍정의 관절이 부정의 관절보다 높게 자리 잡은 것은 삶을 긍정적으로 살라는 가르침”이라고 했다.
<오똑한 코는 美 기준 아닌 환경 적응의 결과일 뿐>
해부학자들은 우리사회의 키 성장과 성형 열풍을 개탄한다. 큰키와 오똑한 콧날 등 서구인 닮은 외모는 미(美) 등 가치판단의 기준이 아닌, 인류가 지구 환경에 적응한 오랜 진화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큰키는 추운 지역에서 열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고, 좁고 높은 콧날은 차가운 공기를 따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키 큰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은 키 큰 기린을 부러워하는 것과 같다”고 비꼬았다.
의사들끼리 ‘암호’처럼 사용되고 있는 일본식 의학용어가 쉬운 우리말로 바뀌어야 의료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부학자들은 말한다.
예컨대 상완(위팔), 관골(광대뼈), 건(힘줄), 구개(입천장), 소장(작은창자), 담낭(쓸깨) 안검(눈꺼풀) 등이 그렇다. 만일 의사가 “제부에서 촉지되는 연종괴가 허니아로 의심됩니다. 감별진단 후 외과로 전과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이를 알아들을 환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를 우리말로 “배꼽 부위에서 만져지는 것이 바깥으로 튀어나온 창자 같습니다. 더 검사한 다음에 외과로 옮기겠습니다”로 바꾼다면 환자들은 이내 알아차리고 지시를 따를 것이다. 그럼에도 상당수 의사들은 어렵게 외운 옛 용어에 집착하거나 새 용어 익히기를 귀찮아하고 있다.
정 교수는 “세종대왕께서 양반이 아닌 평민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 것처럼 의사들도 환자를 위해 쉬운 우리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뼈는 의학의 시작이라고 해부학자들은 말한다. 해부학은 인체의 신비는 물론이고 인간이 질병에 걸리면 우리 몸에 어떤 증상이 발생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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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중 의학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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