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왕국 한라산 성판악코스 등반-진달래밭대피소 지나자 눈부신 상고대 장관 펼쳐
▶ 칼바람 휘몰아치는 백록담 하얀 세상 ‘한폭의 수채화’
고도가 높아지면서 기온이 떨어지자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 수정 같은 상고대가 햇빛을 반사하고 있다.
얼어 붙은 백록담 위로 눈이 내려 있다.
“따르릉…." 오전3시40분에 맞춰 놓은 알람이 울렸다. 오전6시30분 김포발 제주행 비행기를 타려면 집에서 오전4시에는 나서야 했다. 버스도 없는 시간이라 어둠 속으로 차를 끌고 나섰다.
한적한 도로와는 달리 공항 안의 인파는 인산인해였다. 그 많은 사람들 중 70~80%의 행선지는 아마도 제주인 듯싶었다. 나 역시 꼭두새벽부터 부산을 떨며 집을 나선 이유는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기 위해서였다. 11월부터 2월까지 이어지는 동절기에는 정오부터 한라산의 동쪽에서 오르는 성판악탐방로를 통제하는 까닭에 일찌감치 산에 올라야 한다. 해가 떨어지면 조난의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일출이 어둠을 걷어낸 제주공항의 서편은 아직도 어스름 속에 누워 있었다. 잠이 덜 깬 공항을 뒤로하고 기자는 부랴부랴 서둘러 성판악으로 향했다. 시간을 아끼려고 차량 안에서 발열 비상식량을 데워 먹으면서 탐방안내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9시30분. 안내소 1㎞ 전부터 길 양쪽에는 등반객들이 타고 온 렌터카들이 줄을 지어 주차돼 있었다.
성판악탐방로에서 백록담까지 거리는 9.6㎞. 탐방안내소 표지판에 따르면 4시간30분이 소요된다. 이에 따라 입산 통제기간인 11월~2월까지 탐방로입구와 진달래밭통제소에서는 정오부터 입산을 막고 있다. 산을 조금 타는 이들이라면 성판악에서 백록담까지 오른 후 관음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지난가을 관음사 쪽 계단이 태풍에 유실된 까닭에 원점회귀 코스를 택했다.
성판악탐방안내소 앞에서 아이젠을 착용한 후‘ 스패츠(바지나 신발이 눈에 젖지 않도록 덧신는 각반)도 할까’ 잠시 망설이는데 함께 산행을 나선 동반자가 “눈길이 다져졌으니 스패츠까지는 필요 없을 것"이라고 해그대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패츠를 착용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까지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추운 날씨 탓에 눈이 다져지기는 커녕 설탕가루처럼 서걱거리면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등산화 안으로 스며들었다.
성판악 관리사무실(해발 750m)을 출발해 속밭을 지나 사라오름입구까지 가는 길은 견딜 만했다. 하지만 등반 후 두 시간이 지나자 구입한 후 처음 신어 본 겨울용 등산화가 낯설었는지 발뒤꿈치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게다가 양말까지 젖어 발이 시렸다.
사라오름을 지나 진달래밭대피소에서 정상까지는 젖은 양말과 물집 잡힌 발뒤꿈치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어 일행보다 뒤처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사라오름까지는 경사가 완만해 그런대로 걸을 만했지만 진달래밭대피소부터는 경사가 급해지면서 발뒤꿈치와 등산화가 쓸려 물집이 터진 자리가 따가웠다.
젖은 눈에 발이 불었는지 등산화가 꽉 끼는 느낌이 들면서 백록담까지 올라갈 길과 다시 성판악까지 내려갈 일이 막막했다. 게다가 눈이 온후 사흘이 지난 탓인지 등산로와 바닥에만 눈이 덮여 있을 뿐 정작 나뭇가지에 쌓인 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진달래밭대피소를 지나자 경사는 더욱 급해지기 시작했다. 급경사를 디디며 발목이 꺾이는 각도가 커지면서 뒤꿈치가 더욱 쓰렸다.
하지만 발의 노고를 위로라도 하려는 듯 산의 풍경이 면모를 바꾸기시작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기온이 떨어지자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 수정 같은 상고대가 햇빛을 반사하는 장관을 연출했다.
눈부신 수정의 숲을 벗어나자 드디어 백록담으로 이어지는 막바지 언덕인 동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부터는 나무랄 것까지 없는 키 작은 덤불들만 자라고 있는 화산암 비탈이 시작되는데 원색의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백록담으로 향하고 있었다.
웬만해서는 주말 취재를 나서지 않는 탓에 사람 구경을 할 기회가 없었지만 이날은 일요일이어선지 백록담둘레의 인파가 콩나물시루 같았다. 얼어붙은 백록담을 렌즈에 담으려고 카메라를 들고 난간으로 오르자 그곳은 딴 세상이었다. 불과 2m의 표고 차이였지만 난간 위에는 엄청난 칼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셔터를 몇번 누르고 간신히 몸을 추슬러 나무데크 아래로 내려왔다.
경사를 오를 때는 뒤꿈치가 아프더니 내리막길을 걷자 이번에는 체중이 쏠리는 발가락 앞쪽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내가 언제 이 먼 길을 올라왔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등산화 안에서는 체온에 녹은 눈이 물이 되어 ‘찔꺽찔꺽’ 소리를 냈다. 어서 빨리 산 아래로 내려가 등산화를 벗고 싶었다. 하지만 하산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한라산 성판악 등반코스
성판악탐방안내소-4.1㎞(80분)-속밭대피소-1.7㎞(40분)-사라오름입구-1.5㎞(1시간)-진달래밭-2.3㎞(1시간30분)-정상(동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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