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내는 결국 드러나고 말았다. 시진핑은 진박(眞朴)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혹시’ 하는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은 핵 장난을 하는 김정은에 제동을 걸어줄 것을 요청하는 발언을 시진핑을 향해 그동안 수차례 했었으니까.
그 요청은 번번이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왔다. 그러다가 한 달이 다 돼 시진핑과의 전화통화가 이루어졌다. 결과는 실망이었다. 분노였다.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천안문 망루 등정을 마다않는 등 3년 동안의 공들임이 헛수고였음을 뒤늦게 깨달은 데서 치솟은. 그 분노의 결과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배치 본격논의다. 그리고 그토록 멀리하던 일본과의 안보협력 강화다. 그리고 개성공단 폐쇄다. 남과 북은 20세기형 냉전시대 대치상황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박 대통령의 분노는 그렇다고 치고 여전히 납득이 잘 안 가는 것이 있다. ‘핵 장난을 하는 김정은 감싸기’로 정책의 가닥을 분명히 정한 중국의 셈법이다. 전략적 이해에 마이너스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왜. 같은 독재 체제다. 때문에 그 독재 이데올로기에 눈이 먼 것인지….
김정은의 불장난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입지만 강화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을 최우선 외교정책으로 내건 미국이다. 이 정책의 핵심요소는 미국과 한국, 일본 3국의 안보협력강화다. 바로 그 빌미만 제공한 셈이다.
중국의 상당수 관측통들은 한국을 일종의 외교 전리품으로 간주했었다. 한미일 삼각동맹의 가장 약한 고리로 한국을 지목, 구애작전을 펴왔고 그 전략은 박근혜 정부의 급격한 중국경사로 거의 성공단계에 이른 것으로 관측됐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유감이다. 그러나 한국의 사드배치는 깊은 우려를 자아낸다’- 중국정부의 공식 입장표명이다. 이와 함께 중국의 한국 떼놓기 전략은 물거품이 됐다. 반(反)중으로 한국의 여론이 급격히 돌아선 것이다.
사드배치뿐이 아니다. 일본과의 안보협력 강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핵 무장론도 점차 탄력을 받고 있다. 일부 우파의 주장이 아니다. 일종의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반응도 과거와는 다르다. 경제대국에, 민주주의 국가다. 미국의 맹방이다. 그 한국의 핵무장을 굳이 막을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 워싱턴 안팎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리얼 클리어 디펜스에 실린 ‘핵무장 한국’도 그 같은 주장으로 한국 핵무장에 은연 중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을 겨냥해 워싱턴이 띄운 모종의 애드벌룬은 아닐까 하는 추측까지 자아내고 있다.
동아시아지역의 패권을 노리는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상황은 한미일 삼각동맹과 더 나가 한국이, 또 일본이 핵 무장국가가 되는 경우다. 그런데 그 가능성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사이버안보문제 등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관계는 잔뜩 긴장돼 있다. 그 정황에서 북한 핵문제는 미국으로부터 중국이 양보를 얻어낼 수 있는 유일한 부문이었다. 그 북한문제가 그런데 미국과의 충돌의 요소가 되고 말았다. 중국으로서는 대미 외교의 한 주요 지렛대를 상실한 것이다.
새삼 한 가지 질문이 던져진다. 중국은 왜 상당한 전략적 이해의 희생을 무릅쓰고 김정은 보호에 나섰는가 하는 것이다.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미국과의 대치상황에서 핵무장 북한은 부담이 아닌 전략적 자산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주장이다.
‘딴은’-. 그러나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대북 제재가 대폭 강화되면서 그 불똥은 중국으로도 튈 수 있다. 감당하기에 너무 고비용인 것이 북한 감싸기다. 그런데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을 보호해야 할 절박한 사정이 중국 입장으로서는 있는 것이 아닐까. 그 같은 추측을 낳게 하는 단초는 올해 들어서만 2명의 북한의 고위층이 잇단 의문의 운명을 맞이한 사실이다. 교통사고로 죽은 것으로 발표된 김양건과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인민군 참모총장 리양건이 그 경우다.
졸다가 처형됐다. 박수를 건성으로 치다가 처형됐다. 술 마시다가 처형됐다. 하찮은 이유로 100여명 정도의 북한 내 최고위층들이 맞은 운명이다. 그 직격탄을 맞은 곳은 군부다. 그 군부가 동요하고 있다. 그리고 김정은 주변에는 이제 사람이 없다.
무엇을 말하나. 소년독재자의 럭비공 행보를 견제할 장치가 없다. 그래서 특히 위험하다. 반대로 반(反)김정은 쿠데타나 정변의 가능성이 높아가고 있다. 공포정치의 통제력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정변이 발생했을 때 뒤따르는 것은 말 그대로 대혼란이다. 여기서 한번 상상을 해보는 거다. 뭔가 화급을 다투는 정보가 답지한다. 그렇다면…. 그 악몽의 사태를 막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서 일단 김정은 보호로 베이징은 가닥을 정한다.
사드배치를 서둘러야한다. 삼각동맹을 강화하고 핵 무장론을 본격적으로 펼쳐야한다. 그리고 분노를 삭이고 비상상황에 대비해야한다. 김정은 축출도 한 가능성으로 보고 북한전략을 다시 짜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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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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