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의 진흙탕 싸움을 느긋하게 관전하며 본선에 대비하던 민주당의 대선진영이 첫 공식투표인 아이오와 코커스를 눈앞에 두고 불붙은 듯 다급해졌다. ‘압도적 선두주자’ 힐러리 클린턴과 ‘무명의 언더독’ 버니 샌더스의 심상치 않은 접전 때문이다. 지난여름 시작된 샌더스 돌풍이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어 점점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샌더스의 ‘불평등이 사라지는 세상’에 열광하는 곳곳의 구름청중은 이미 숫자로 나타나 힐러리를 위협하고 있다. 초기경선지의 1월 여론조사 평균에 의하면 뉴햄프셔에선 10여포인트 차이로 힐러리를 앞질렀고 아이오와에선 2포인트 차이로 바짝 추격 중이다.
쫓기며 위기를 감지한 힐러리도, 쫓으며 희망을 발견한 샌더스도 공격의 톤이 달라졌다. 17일 밤 민주 대선후보 4차 TV토론의 기류는 지난 3차례와 완연히 틀렸다. ‘예비 대통령’처럼 침착했던 힐러리와 이메일 논란에서 힐러리 구출했던 샌더스의 지난해 여유는 사라졌다. 총기규제를 외면하고 오바마에 등 돌렸다는 ‘샌더스 때리기’와 월가의 고액 강연료 챙긴 장본인으로 손가락질한 ‘힐러리 공격’이 거친 고성의 설전 속에 난무했다.
어찌 보면 민주당 후보들의 궁극적 이상은 같다. 공화당처럼 “1,100만명 서류미비 이민자 전원추방”과 “무슬림 입국 금지”를 둘러싼 된다, 안 된다의 대결과는 다르다. 그들의 이견은 무보험자와 의료경비 줄이는 헬스케어 개혁, 총기안전, 경제 불평등 해소 위한 월스트릿 규제, 대학교육 확대 등 같은 목적을 실현하는 방법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샌더스는 정부가 운영하는 전국민 의료보험제를 도입하고, 대형 금융기관을 해체시켜 부의 편중을 초래하는 경제 권력을 규제하고, 공립대학 무료교육을 실시하겠다고 역설한다. 힐러리는 오바마케어의 확대, 금융을 규제하는 도드-프랭크법의 강력 시행, 저소득층 학비지원 입법화 등 기존제도의 개선과 강화를 강조한다.
힐러리의 ‘현실’과 버니의 ‘꿈’이 부딪치고 있다. 샌더스는 어젠다 이행을 위한 ‘정치혁명’을 주창하고, 힐러리는 실현가능한 점진적 변화를 설득한다.
LA타임스의 도일 맥마너스가 ‘파워볼 복권’과 ‘머니마켓 펀드’로 비유한 급진적 혁명가 버니 샌더스와 신중한 실용주의자 힐러리 클린턴 중 누구를 찍을 것인가…버니의 꿈에 열광하면서도 희박한 실현 가능성에 주춤거리게 되고, 힐러리의 실용성에 동의하면서도 열정 부재에 실망하는 민주당 유권자들에겐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사실 버니의 꿈은 실현되기 힘들다.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한 요즘의 정치 환경에선 가능성 제로다. 그가 원하는 정부운영 의료보험과 금융기관 해체는, 2010년 오바마케어 법안과 도드-프랭크 법안에 한 부분으로 포함시키려던 시도조차 좌절된 사안들이다. 당시는 민주당이 상하 양원의 다수당인데다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의 인기가 높았던 집권초기였는데도 그랬었다.
‘사회주의자’ 샌더스의 당선 가능성도 그의 혁명 실현 가능성 못지않게 낮다는 것은 대부분이 인정하는 현실이지만 풀뿌리 지지자들의 열정이 불 지피고 있는 샌더스 돌풍은 초기경선을 거세게 흔들어대고 있다.
버몬트 주 연방 상원의원인 샌더스에게는 홈경기 같을 바로 이웃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의 승리는 거의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데다 신선한 뉴페이스를 선호하는 아이오와에서도 전망이 나쁘지 않아 힐러리는 자칫 초기경선 연패에 직면할 위기에 처해졌다.
흔들리지 말고 페이스를 지키라고 선거분석가 찰리 쿡은 조언한다.
흑인과 라티노의 압도적 지지로 힐러리의 ‘방화벽’이 되어 줄 2월말 사우스캐롤라이나와 3월 첫 주의 남부주들, 3월 중순 플로리다로 이어지는 경선에서 다시 선두주자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도 미국대선은 단연 화제였다. 40여명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참석한 오찬이 끝나갈 무렵 주최측인 월스트릿저널 관계자의 극히 ‘비과학적’ 거수 여론조사가 실시되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분?” 아무도 손 들지 않았다.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예상하는 분?” 모두의 손이 올라갔다.
이미 수백명의 수퍼대의원도 확보했고 전국지지도에선 20일 현재 51.2% 대 38%로 샌더스를 가볍게 누르고 있으며 당락의 주요 요소인 소수계 표밭에서 인기 높은 오바마 대통령의 계승자로 인정받는 힐러리는 돌발변수가 없는 한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할 것이다. (FBI의 이메일 수사결과 법적 제재가 취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 바이든이나 또 다른 누구의 출마 등으로 대선판이 한바탕 요동치게 될 테니까)
그러나 첫 2개주 경선에서 모두 패한다면 힐러리의 캠페인은 휘청댈 것이다. 치열한 전투준비에 이미 돌입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최종 승리를 거둔다 해도 그 대가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길고 험한 여정에 시달리다가 지치고 상처 입은 후보로 약화될 것인가, 여유 있게 본선에 대비할 수 있는 무난한 경선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 갈림길이 될 아이오와 코커스가 이제 열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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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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