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이 5일 발표한 총기규제 행정명령은 솔직히, 너무 약하다. 합리적이지만 답답할 정도로 온건한 내용이어서 가시적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지난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전국총기협회(NRA) 대변인이 “이게 전부냐, 겨우 이것이냐?”고 놀랐을 정도다.
총기구매자의 신원조회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10개항의 이번 행정명령은 한마디로 현행 연방 총기규제법의 집행 강화다. 개정이 아니다. 잇단 총기폭력의 참극을 막기 위해 이미 오래 전에 규제강화를 입법화했어야 할 연방의회가 총기로비에 굴복한 채 움직이지 않으니 대통령이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기본 조처에 나선 것이다. 당연히 극히 제한적이다.
연방법은 총기 판매를 통해 “이익을 얻고 생계의 수단으로 삼는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사람은 누구나 총기판매 면허를 발급받고 총을 사려는 사람의 신원조회를 의무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비즈니스가 아닌 총기애호가의 취미라면 면허와 신원조회 없이 총을 사고팔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 같은 현행법의 허점을 최대한 이용 내지 악용하는 것이 인터넷과 총기박람회(gun show)를 통한 거래다. 아무런 제재 없이 중범전과자도, 정신질환자도, 가정폭력범도, 마약중독자도 총을 살 수 있는 마구잡이 거래가 전체 총기판매의 40%에 이른다. 그런데도 ‘영업’ 아닌 ‘취미’라고 주장하면 1년에 100정 이상의 총기를 파는 사람도, 연 5만달러 총기판매 소득자도 면허와 신원조회 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것이 현 연방법의 적용 실정이다.
오바마의 행정명령은 어디까지가 ‘취미’이고 어디부터가 ‘영업’인가의 기준을 강화하여 ‘총기판매자’의 범위를 확대하려고 한다. 자연히 신원조회를 받는 총기 구매자가 늘어나면서 그만큼 총기거래의 안전장치가 강화될 것이다.
그밖에 총기의 분실 및 도난신고를 강화하고, 거래기록 보관 의무화를 확대시키며, 발사사고를 줄이는 ‘스마트 건’ 테크놀로지 개발 지원과 함께 규제법 집행 강화를 담당할 정부기관들의 인력을 보강할 계획이며 동시에 정신질환 치료지원을 위한 별도의 5억달러 기금배정도 의회에 요청하고 있다.
총을 가져서는 안 될 부적격자의 총기 구입을 어렵게 만들려는 목적의 이번 행정명령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 현행법 집행 강화와 정신질환 치료 지원이다. 이 두 가지는 매번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총기규제법 강화 대신 공화당이 거듭 강조해온 바로 그 사안들이다.
그런데도 행정명령 발표 전후로 쏟아져 나온 공화당의 반대가 요란스럽다. “여러분은 곧 총을 사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대선 선두주자 도널드 트럼프의 겁주기에서부터 “자유를 약화시키고 수정헌법 2조를 위반하는 위협”이라는 폴 라이언 하원의장의 부정확한 비난에 이르기까지 경쟁적으로 수위를 높인 무책임한 과잉대응 일색이다. 위헌과 월권 등 온갖 공포 단어를 동원하고 있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지난해 법학교수 23명이 서명한 공동서한은 “연방 총기법의 강력한 집행을 위해 행정명령을 내리는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은 의회의 입법권과 완벽하게 양립될 수 있다”고 천명하고 있다. 설사 이번 행정명령이 위헌소송을 당한다 해도 신원조회 확대가 수정헌법 2조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리는 법원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사실 이번 총기 행정명령이 발표될 때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마일드한 규제내용보다 오바마의 눈물이었다. 새해벽두 첫 연설, 카메라 앞에서 미국의 대통령이 울어버린 것이다.
26명이 희생된 샌디훅 난사사건을 언급하다 흘린 대통령의 눈물은 겨우 1학년생 그 작은 아이들의 떼죽음 앞에서도 총기로비에 맞서는 대신 규제법을 무산시켜버린 워싱턴 정계에 대한 자괴와 실망과 분노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총기소유에 집착하는 미국의 여론도 행정명령보다 한 발 더 나간 신원조회 전면 확대 등 규제강화 지지는 절대적이다. 90%에 달한다. 오바마의 행정명령은 매년 3만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미국의 총기문제 해결책은 못된다. 그러나 갈수록 요원해지는 의회의 규제강화 입법화를 압박하는 첫 걸음은 될 수 있다.
극히 상식적 내용의 이번 행정명령에도 공격은 사방에서 가해질 것이다. 공화당 의회가 인력보강 예산배정을 거부할 수도 있고 NRA가 위헌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높다.
눈물을 닦고 난 대통령도 총기규제 입법화가 이번 회기 의회에서는, 자신의 대통령 임기 중에는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여성의 투표권도, 흑인의 해방도, 동성애자 권리도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 수십년 노력에 의한 결과라고 상기시킨 그는 도전의 의지를 다지며 말했다. “그러므로, 어렵다고 해서 그것이 시도조차 안 해도 된다는 구실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공화당의 소란스런 반대 아우성이 계속되면서 총기규제가 금년 대선의 핫이슈로 가열된다면, 그래서 시들해졌던 총기규제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난다면 세상은 좀 안전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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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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