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새해가 밝았다. 말갛게 씻은 얼굴로 힘차게 솟아오른 태양과 함께 2015년은 역사 속으로 물러나고 새 날이 왔다. 새해가 선사하는 366일, 시간의 백지 앞에서 우리는 희망에 부풀고 기대로 설렌다.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다시 한 번 출발점에 서는 경건한 순간이다.
2016년은 미국과 한국 모두 큰 변화를 앞둔 해이다. 미국은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 열기로, 한국은 4월 총선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될 대선정국으로 한해 내내 치열한 공방의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미주 한인들은 실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선거에도, 정서적 영향이 지대한 한국의 선거에도 관심을 늦출 수가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말만 무성할 뿐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미국선거 투표율은 물론 한국의 재외선거 투표율도 턱없이 낮다. 원인은 ‘내 나라’라는 주인의식의 결여이다. 새해에는 미주 한인사회가 역사의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으로서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도약의 기틀을 마련했으면 한다.
미국에 한인사회가 형성된지 113년이 되었다. 개정이민법 시행으로 이민문호가 열린 1968년을 기점으로 해도 거의 반백년이 되었다.
지난 50년 한인들은 끈질긴 근성과 타고난 성실로 이 땅에 보란 듯이 정착했다. 경제적 안정을 얻고, 남다른 교육열로 2세들을 번듯하게 키워냈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 마크 김 버지니아주 하원의원, 데이빗 류 LA 시의원 등이 모두 70년대 초기 이민가정에서 자란 1.5세들이다.
이들 외에도 각계에서 2세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코리안 아메리칸은 명석하고 우수하다는 인식이 미국사회에서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개개인의 성공 스토리 차원이다.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민족으로서의 저력을 형성하려면 커뮤니티 차원의 비전이 필요하다.
첫째는 주인의식이다. 2016년 미국 대선은 내 나라의 내 대통령을 뽑는다는 인식을 가져야 하겠다. 남의 잔치 구경하듯 할 게 아니다. 소수민족 이민 커뮤니티인 한인사회를 위해서는 누가 가장 좋은 정책을 펼칠 지, 미국사회를 분열이 아닌 통합으로, 안정과 번영으로 이끌려면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할지 연구하고 지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래서 후보들이 한인 표를 얻기 위해 커뮤니티를 찾아오게 만들어야 미국사회에서 대우받는 민족이 된다.
선거 때면 후보들이 발이 닳도록 찾는 유대인 커뮤니티가 좋은 예이고, 19세기에 더러운 이민자로 천대 받았던 아일랜드계도 벤치마킹 할만하다. 개신교 나라인 미국에서 이들은 가톨릭이어서 더 더욱 냉대를 받았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 이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며 정치적 힘을 기르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20세기 중반 뉴욕 등 동부의 정치인들은 선거 때면 3개 ‘I’ 방문이 필수였다. 이스라엘, 아일랜드, 이탈리아였다. 가톨릭 유권자들과 유대인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였다. 아일랜드 이민 4세인 존 F. 케네디가 1960년 가톨릭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이런 정지작업 덕분이었다.
둘째는 민족의식이다. 한인 후손들이 4세, 5세가 되도록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려면 뿌리교육이 필수이다. 성장기에는 민족적 뿌리에 무관심했던 한인 2세들이 나이 들면서 한국문화와 전통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반가운 현상이다. 2세들이 성인이 된 후 뒤늦게 한국말을 공부하는 가하면 이민 3세인 자녀들을 이끌고 주말 한국학교를 찾는다. 설날, 추석 등 명절을 챙기고 한국의 전통 돌잔치는 2세들이 1세들보다 더 요란스럽게 한다. 한국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자연스럽게 뿌리교육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높아진 국가 위상 그리고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적 인기가 큰 영향을 미쳤다.
셋째 코리안 아메리칸이 갖춰야 할 것은 역사의식이다. 미주 한인이민의 역사를 알아야 미국 사회에서 우리가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가는 지 방향을 잡을 수가 있다. 한인 커뮤니티가 우리의 이민역사를 담은 박물관 하나 갖기를 그토록 염원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마침 LA에서는 1990년대부터 구상해온 한미박물관이 2016년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해 매스터 플랜이 확정되고 LA 시의회가 건립 프로젝트를 최종 승인하면서 이르면 오는 7월 착공식이 거행된다. 한인 모두가 관심을 갖고 지원해서 3세, 4세… 계속 이어질 우리의 후손들이 코리안 아메리칸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정신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도 미래는 없을 것이다. 2016년 새해는 역사의 주인으로서 미주한인의 저력을 다져가는 도약의 한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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