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대선필드의 이번 주는 ‘테드 크루즈의 시간’이다. 제일 먼저 2016년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한 후 중하위권에 머물며 9개월 가까이 칼을 갈아온 그가 마침내 급부상하며 ‘때’를 맞은 것이다. 지난 주말 첫 경선지인 아이오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했고, 16일 현재 전국 지지율에서도 2위로 올라섰다.
여전히 도널드 트럼프는 전국지지율 1위로 건재하고, 대 힐러리 예상 승률에선 마르코 루비오가 앞서 있으며 젭 부시가 가장 많은 자금을 확보하고 있지만 지지율 2위, 자금 확보 2위로 치고 올라온 크루즈의 기세는 트럼프 돌풍에 식상해 있는 대선판에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크루즈의 약진은 15일 공화당 대선후보 토론에서도 한눈에 드러났다. 자리부터 달라졌다. 지난여름 첫 토론에서 무대 가장자리에 서있던 그가 이번엔 선두주자 트럼프 옆, 중앙으로 진출했고 가장 발언을 많이 한 후보도 크루즈였다.
상승세를 탄 후 첫 시험대에 오른 크루즈가 겨냥한 목표는 트럼프가 아닌 루비오였다. 티파티 강경보수의 기수를 자처하는 크루즈와 공화주류 기득권층의 총애를 받는 루비오의 치열한 논쟁은 모두가 기대해온 흥미로운 대결로 이날 토론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안보와 테러를 주제로 벌인 ‘전투적’ 토론은 한편으론 주관처 CNN의 표현대로 “새로운 세대의 우파정치를 대변하는 두 젊은 프린스가 보수의 왕관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기도 했다. 44세 동갑의 연방 상원의원들은 이민, 테러추적 정보수집, 중동의 정권교체 등에 대해 날 세워 대립했고 양쪽 진영 모두 승리를 주장할 만큼 둘 다 큰 실수 없이 무난한 합격점을 받아냈다.
처음으로 트럼프에 공격다운 공격을 가한 부시가 선전을 했지만 토론 후에도 지지율 순위엔 큰 변화가 없다. 아직은 확고부동한 선두주자 트럼프에 이어 크루즈와 루비오가 가장 바람직한 ‘트럼프 대안’이 될 2위를 노리는 경쟁자임을 확실하게 알렸을 뿐이다.
당선권은커녕 경선승리 가능성도 희박했던 크루즈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트럼프였다. “트럼프로 인해 크루즈가 ‘주류’가 되었다”고 정치해설 사이트 ‘복스’는 지적한다.
공화당 주류의 크루즈 혐오는 워싱턴의 공개된 비밀이다. “극단적 이념주의자, 개인적으로 불쾌한 사람, 전략적으로 무모한 정치가”로 낙인찍혀온 그는 2013년 정부폐쇄를 주도하며 미국을 재정절벽으로 몰아갔고 상원 본회의에서 미치 맥코넬 공화대표에게 ‘거짓말쟁이’라고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경선초기 지금의 트럼프처럼 ‘당선 불가능’으로 기득권층이 제처 놓은 후보가 크루즈였다.
그런데 트럼프가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 돌풍을 불러온 경선표밭의 분위기는 기득권층의 선택 여지를 ‘트럼프냐 부시냐’가 아닌 ‘트럼프냐 크루즈냐’로 바꿔놓은 것이다. 트럼프가 ‘절대불가’라면 크루즈에 대한 재평가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젭 부시의 추락과 함께 주류의 대안으로 떠오른 루비오의 상승세가 영 지지부진해서 더욱 그렇다. 크루즈에 대한 공화 주류의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는 최근 소문은 트럼프와의 상대적 비교의 산물인 셈이다.
크루즈가 손 놓고 앉아 행운만 기다린 것은 아니다. 사실 상당수 공화 전략가들이 크루즈를 “눈 여겨 보라”고 말해 왔다. 반 워싱턴 후보와 작은 정부를 원하는 보수표밭에 강력한 우파 메시지로 어필했고, 넉넉한 자금과 탄탄한 조직으로 효율적 캠페인을 벌이며, 트럼프 거품이 꺼진 후 그의 지지표밭을 확보하기 위해 모두가 트럼프를 비난할 때 발언을 삼가는 영리한 전략으로 때를 기다려온 크루즈를 주시한 것이다.
어떤 막말을 해도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트럼프 재앙’에 전전긍긍하는 공화당은 과연 크루즈에게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는 상원 100명 중 초당적 자질로는 99번째로 꼽힌다. 사사건건 민주당만이 아닌 공화지도부와도 맞서 워싱턴을 교착상태에 빠지게 한 ‘분열의 기수’다. 정책은 강경일변도다. 쿠바계 이민이면서 반이민 강경입장은 트럼프 못지않고 IS테러그룹은 ‘융단폭격’으로 소멸시킬 것이며 국세청을 없애고 연방소득세는 10% 단일세율로 개혁하고(현재 최고소득층의 세율은 39.6%다) 모든 낙태·동성결혼·총기규제는 절대 반대하며…“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는 경고까지 나올 정도다.
그런데 크루즈의 경선승리 전망이 현재로선 그다지 어둡지 않다. 선거일정도 그에게 유리하다. 현재 지지율 1위인 아이오와에서 승리한 후 그 바람을 타고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선전하면(중도적인 뉴햄프셔는 접어두고) 3월 첫 수퍼화요일에 압승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의 출신주인 텍사스를 포함한 남부 주들이 ‘남부의 파워’를 과시, 하루에 경선을 치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크루즈는 예년의 반짝 스타들과 달리 초반의 승리를 지속해나갈 자금, 조직, 전략을 갖춘 후보다.
41%까지 치솟은 트럼프의 지지율이 언제 곤두박질 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득권층이 작심하고 루비오를 대대적으로 지원할 수도 있다. 선두권에 진입한 크루즈에게 어떤 검증이 가해질 것인지도 알 수 없다…공화당 경선의 판도는 그 어느 해보다 예축불허로 요동치고 있는데, 첫 경선 아이오와 코커스까지는 이제 45일이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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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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