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트럼프. 온통 도널드 트럼프 이야기다. CNN 등 기존 매체는 말할 것도 없다. 온갖 토크 쇼에, 또 블로그 마다 넘쳐나는 건 트럼프 이야기였다. 꽤나 무식하게 들린다. “모든 이슬람의 미국 입국을 전면금지해야 한다.” 파리 연쇄테러에 이어 샌버나디노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집단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하는 커플의 무차별 총격사건이 발생하자 트럼프가 한 발언이다.
엄청난 백파이어가 뒤따랐다. 저런 인물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 정치사에 오점을 찍었다. 현대판 히틀러다. 온갖 비난과 함께 영국에서는 증오발언이나 일삼는 트럼프 입국금지 운동까지 벌어졌다. 사면초가의 궁지에 몰렸다고 할까. 그런데도 트럼프 지지율은 떨어질 기미가 없다. 그 발언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35%의 지지율을 마크, 공화당 대선주자 중 여전히 부동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이슬람을 증오하는 사람이 그토록 많은 것인가. 아마도 아주 틀린 분석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는 ‘포스트 파리, 포스트 샌버나디노’의 미국국민 정서를 트럼프가 제대로 파고 든 탓이 아니었을까.
“IS가 직접 사주한 테러든, IS에 감명을 받은 자생적 테러든 조만간에 테러는 또 다시 찾아 올 것이다. 그런 불안감 속에 미국인들은 장래를 응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페기 누난의 말이다.
그 때가 언제인지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샌버다니노 학살에서 보듯이 미국에 대한 증오를 내면으로 쌓아가면서 철저히 준비를 한다. 그런 어느 날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대형 살상극을 벌인다. 그 가능성이 있는, 숨어 있는 이슬람이스트가 하나둘이 아니다. 이것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미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불안감이라는 거다.
그 정서는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올 들어 처음으로 다수의 미국인은 미지상군 시리아 파견을 지지했다, 경제가 아닌 테러리즘을 대통령 선거의 주 이슈로 본 유권자가 40%에 이른다 등등의 여론조사 결과가 그것이다.
이와 함께 새삼 지적되고 있는 것이 무기력한 오바마의 발언이다. 9.11 이후 미국 땅에서 첫 테러가 발생했다. 그런데도 오바마의 발언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 새로운 전략 제시도 없다. 그 오바마를 영국의 데일리 미러지는 이런 식으로 풍자했다. ‘로마는 불타고 있는데 한가히 하프를 뜯고 있다’고.
발언은 거칠기 짝이 없다. 포퓰리즘의 냄새도 짙다. 그렇지만 유권층의 불안감, 안보에 대한 문제의식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의 발언은 최소한 ‘현존하는 위협(existential threat)’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는 것이 누난의 지적이다.
그렇다고 트럼프의 주장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분열에, 증오 범죄를 조장한다. 그리고 모든 이슬람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그 보다 더 위험하고 어리석기까지 한 것은 이슬람과 테러는 무관하다는 오바마의 발언이라는 거다.
파리테러가 발생하자 바이든 부통령도 같은 발언을 했다. 이슬람과 테러는 무관하다는 주장과 함께 ‘미국에 대한 현존하는 위협은 없다. IS는 미국인의 삶을 바꿀 수 없다.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 ‘과연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샌버나디노 테러가 발생한 지금 새삼 제기되는 주장이다. IS야말로 서방세계가 맞은 ‘현존하는 최대 위협’이라는 반론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테러공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2015 테러리즘 인덱스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테러로 숨진 사람은 3만여 명으로 2011년의 8,000여 명에 비해 급격히 늘었다. 자살공격에 따른 사상자 수도 2001년 피크 때와 같은 수준을 보였다.
이 수치가 말하는 건 다름이 아니다. 그동안의 테러정책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문제는 적을, 그것도 전투요원이 아닌 민간인을 죽이고 나 자신도 죽을 용의가 있다는 이슬람 수가 상당히 많고 그 수가 계속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살공격을 불사한 것은 이슬람이스트 테러리스트가 처음이 아니다. 일본의 가미카제도, 러시아 공산혁명 시 볼셰비키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중세시대 니자리 암살교단도 자살공격으로 악명을 떨쳤다. 이들은 그러나 교전 당사자가 아닌 민간인은 손도 대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그 잔학성에 있어 전례를 찾을 수가 없는 게 IS다. 이 회교 근본주의 무장집단의 위협이 중동 이슬람권을 벗어났다. 유럽에 이어 미국의 문턱을 이미 넘어섰다는 것이 법집행당국의 진단이다.
대책은 과연 있는 것인가. 막말을 쏟아내면서도 지지율에서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트럼프. 그 ‘트럼프 현상’은 바로 그 불안감의 반영이자 경고라는 것이다. 맞는 분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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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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