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정상을 찾아가고 있었다. 지난달 세계를 경악케 한 연쇄테러 참사 발생 후 2주일여 만인 추수감사절 날 찾은 파리의 거리는 간간히 내리는 부슬비 속에 테러의 충격을 떨쳐내려는 듯 부산한 모습이었다.
파리의 상징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노트르담 성당 등 주요 명소는 무장 군인과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는 가운데 관광객들이 줄어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지만, 번화가 샹젤리제 거리의 식당과 백화점, 매장들은 여느 때 못지않게 사람들도 붐볐고, 지하철에서도 파리 시민들은 평소처럼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필자는 이번 유럽 방문 길에 프랑스 국적 에어프랑스 항공기에 탔다가 폭파 위협에 의한 비상착륙을 경험하면서 ‘테러 위협’이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 다가와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정작 130여명의 무고한 희생을 치른 파리는 테러의 상처를 내면에 안은 채 오히려 테러를 ‘극복’하고 있었다. 파리지앵들은 테러에 대한 공포감을 넘어서 ‘일상의 회복’을 통해 테러에 맞서고 있음을 현장에서 생생히 느꼈다.
파리 테러 이후 터져 나온 샌버나디노 총기난사 사건으로 이제 미국에서도 테러 위협 체감도가 높아지고 있다. 샌버다니노 참사 후 주변에서 조금만 펑하는 큰 소리가 나도 깜짝 움츠리게 되고, 남가주 지역에서 총기를 사들이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은 더욱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온 테러에 대한 우려로 민감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샌버나디노 사건이 극단주의 테러집단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해 온 자생적 과격 무슬림 부부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미국 내에서 더욱 무슬림들을 경계하고 나아가 노골적으로 혐오를 드러내거나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공화당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은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고 말았다.
트럼프가 지난 8일 낸 성명에서 ‘테러 예방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무슬림의 입국을 전면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돌출적이고 직설적인 언사가 많은 그의 평소 모습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지나친 것이었다. 이같은 주장은 극악무도한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과 일반 무슬림들을 구분하지 않고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이나 인종을 모두 싸잡아 적으로 취급함으로써 막연한 ‘포비아’(공포증)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이같은 발언과 이에 동조하는 많은 그의 지지자들의 정서는 2차대전 당시 미국내 10만 여명의 무고한 일본계 주민들이 강제 캠프 수용으로 내몰렸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10일 LA타임스의 조지 스켈턴 기자가 지적한대로 당시 일본계 강제 수용은 미국 정부가 공식 사과한 부끄러운 역사인데, 이처럼 정치적 목적으로 공포와 증오심 자극에 기대는 히스테리적 행태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재현되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이같은 ‘포비아’가 테러를 막아주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일반인들이 테러에 대한 막연한 우려와 불안감을 갖게 하는 것이 바로 극단적 테러세력들이 노리는 목적이며, 이를 부추기고 무슬림 전체를 배척하는 것이 바로 테러리스트들의 입지를 강화해주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지적은 옳다.
필자가 탔던 LA발 파리 행 에어프랑스 항공기 탑승객 430여명은 당시 긴급 착륙한 솔트레익시티 공항에서 5시간 넘게 대기하면서 비행기가 폭파 협박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이후에도 누구 하나 큰 소리를 내거나 소란을 피우지 않고 모두 침착하고 차분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다. 파리 테러 이후 파리 시민들이 불안을 이기고 노천카페나 식당 등을 이용하자는 일상 회복 캠페인을 통해 테러에 대처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테러에 대한 공포감에 굴복하지 말고 일상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테러를 이기는 길이다. 미국 내 테러 행위에 대한 당국의 수사 및 대테러 활동을 지원하고 주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에 촉각을 세우는 것도 필요한 자세다. 모든 무슬림에 대한 막연한 포비아를 확산시키는 것과 테러 위험에 대처하는 것은 별개의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현명한 테러 대처는 ‘포비아’ 극복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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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하 사회부장·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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