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세계를 향해 미국이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 앞장서겠다고 약속한지 불과 몇 시간만에 워싱턴에선 공화당 주도 하원이 그의 약속을무효화시키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전세계가 주목하는 국제회의에 참석한 자국의 대통령에 정면 도전한 이 민망한 타이밍은 우연이 아니었다.
공화당이 작심하고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 오바마의 기후대책은 그의 혼자 생각일 뿐이다!(…의회는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니믿지 말라!)이번 주 초 개막한 파리 기후회의의‘정치적 기후’는 쾌적해 보인다. 오바마를중심으로 150여개국 거의 전 세계 지도자들의 기후변화 대응 연대가 형성되면서 상당히 낙관적 분위기다.
그러나 워싱턴의 기후는 스모그에 갇힌 베이징만큼이나 답답하다. 하원은 오바마 기후변화 대책의 핵심인 환경보호청의 발전소 탄소배출 규제안을 폐기하는 결의안을 2개나 연달아 통과 시켰다.
오바마의 거부권 행사가 확실하니 입법은 무산될 것이다. 거의 공화당만 찬성표를 던진 상징적 제스처다.
오바마와 공화당의‘ 기후 갈등’은 2010년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면서 계속악화되어 왔다. 기후변화 대응을 반대하는 공화당의 전략도 수시로 바뀌었다고USA 투데이는 지적한다.
처음엔 과학과 맞섰다 : “지구온난화가 사실 맞아? 인간에 의한 것이란 증거가 어디 있어?” 그러나 인간활동에서 배출된 온실개스가 지구를 덥히고 있다는과학계의 합의가 이루어지고 빙하 유실과 해수면 상승, 폭염과 극도의 가뭄 및홍수 등으로‘ 증거’가 늘어나면서 그 주장은 힘을 잃었다.
대신 다른 구실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들이 배출량을 규제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미국이 홀로 책임질 수는없지 않은가”2015년 파리 기후회의는 이런 주장을무색케 하고 있다. 세계 최대탄소배출국인미국과 중국이 책임을 인정하고 적극대응을 약속하고 나섰으며 유럽연합은 물론이고 선진국의 책임을 강조한 인도 역시 대응 공조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미178개국이 배출량을 감축하는 자체적 기여방안을 유엔에 제출했다.
6년 전 실패로 끝난 코펜하겐 기후회의와 완연히 달라진 파리의 공조분위기는 우연히 생긴 게 아니다. 지구온난화의위협이 고조되면서 온 세계가 기후변화의 영향을 점점 더 체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주 시카고 대학 과학자들은“지금 당장 재생 에너지로 연료를 바꾼다 해도 이미 대기권에 끼친 손상을 회복시키려면 수천수만년이 걸릴 것”이라고경고했다.
기후재앙의 파국을 막을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2주일”로 불리는 파리회의를 개막하며 오바마 대통령은“ 역사적전환점”이 될 것을 천명했고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은 “지구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사명”이라고 선언했으며 프란치스코교황은 “세계가 자살로 치닫는 것”을 막을 마지막 기회라면서 시급한 대처는 이시대를 사는 우리의 “도덕적 책임”임을상기시켰다.
“기후변화는 산호초와 삼나무 숲을 살리자는 환경보호만의 이슈가 아니라 인류사회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경제 및 안보이슈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 위협에서지구를 구하자는 세계의 합의에 공화당이 완강히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대선주자들은테러위협에 전력해야할 이 시점에 기후변화에 집중하는 것은“ 미친 짓”이며“ 가장 멍청한 것”이라는 막말을 서슴지 않고있고, 거대한 석유기업과 석탄기업의 그늘에 있는 의원들은 일자리와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내세우며 오바마의 기후대책을 “무책임하다”고 비난하고 기후대책기금을 차단시키겠다고 위협하는가 하면,상당수 공화당 의원들과 주지사들은“ 난과학자가 아니다”라며 기후변화 자체에대한 회의론으로 돌아갔다.
아무리 분위기가 좋다 해도 파리회의만으로 지구를 구할 수 있다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다. 지구의 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2도 이하로 유지하는 것조차 힘든 게 현실이다. 여전히 날서 있는 각국의 이해상충 속에서 최악의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는 감축약속이 합의된다면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갈 길이 멀지만 지구온난화는글자그대로 지구적 해결책이 필요한 지구전체의 문제다. 숨 가쁘게 매일을 사는보통사람들과 달리 국가의 리더들은 외면해선 안 될 중대한 사안이다. 파리회의는 세계의 리더들이 이 같은 공감대를이루며 해결책을 마련할 터를 닦았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오바마가 백악관을 떠난 후에도 기후변화는 계속 전 인류의 인내와 동참이필요한 장기적 과제로 남을 것이다. 불타고 있는 지구의 한 복판에서도 거대기업의 눈치를 살피며 ‘오바마 반대’에집착해 정치싸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공화당의 행보가 이번엔 정말로 옹졸해 보인다. “ 세계 선진국의 주요정당 중유일하게 기후변화를 부인하는 정당”이라는 타이틀을 공화당은 자랑스러워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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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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