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이 쇼팽 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하는 동영상을 보았다. 40분 동안 옴짝달싹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고,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한 연주였다.(유튜브가 있는 것은 얼마나 축복인가!)이제 스물한 살, 미국으로 치면 갓 소년티를 벗고 법적 음주연령이 된 청년이 그토록 어려운 무대에서 그렇게나 여유있고 자신있게 연주하는 모습은 놀라움을 넘어서 전율을 부르는 것이었다.
이 동영상을 벌써 280만명이 클릭했고, 결선 공연 실황음반은 지금까지 6만5,000장이 팔려나갔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대단한 일이고, 덩달아 다른 클래식 음반들도 판매가 늘었다니 이런 희소식이 없다.
조성진의 쾌거는 이제 서막에 불과하다. 그는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이전부터 손열음(29), 김선욱(27)과 함께 ‘국내파 3인방’으로 불리며 한국 음악계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아온 피아니스트다. 이들 3명은 남들처럼 어린 시절에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 가지 않고 한국서 음악을 공부해 국제무대로 나간 연주자들이다. 지금은 셋 다 유럽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조만간 세계적으로 탁월한 연주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손열음은 2010년 벤추라 뮤직 페스티벌에서 만난 적이 있다. 2009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2위 입상한 후 남가주에서 처음 가진 리사이틀이었는데, 하도 잘 친다기에 친구들과 함께 벤추라까지 올라가서 들었다. 그때 그는 스물네살이었는데 어찌나 속이 꽉 차고 잘 여물었는지, 얼마나 섬세하고 초롱초롱한 연주를 들려주던지, “여기에 연륜이 더해진다면 얼마나 굉장한 연주를 할 수 있을지 정말 궁금하고 기대된다”고 리뷰에 썼었다.
김선욱은 지난 4월 이곳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무대에서 만나볼 뻔했던 피아니스트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미국 순회공연에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황제’)의 협연자로 무대에 설 예정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서울시향의 전격 취소로 무산됐다.
취소되기 전 김선욱에 대해 기사를 쓰느라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그가 얼마나 특출난 피아니스트인지 발견하고 흥분했던 생각이 난다. 유튜브를 통해 들어본 그의 베토벤 연주는 ‘젊은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왜 붙었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정명훈이 가장 아끼는 연주자라는 김선욱은 지난 10년동안 베토벤만을 파고들어 독일 본의 베토벤 생가에서도 초청연주를 가질 정도로 내공을 쌓았다고 한다.
조성진 손열음 김선욱 셋은 모두 한국에서 음악신동들을 키우는 ‘금호 영재’ 콘서트 출신이고, 한결같이 겸손하며 성실한 태도로 음악에 몰입하고 있어 더욱 든든하다. 한국 언론에 실린 이들의 인터뷰기사를 읽어보면 음악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나고 카리스마도 갖추었으며 명성에 흔들리지 않는 채 연주자로서의 인생을 길게 호흡하고 있어 도무지 20대 젊은이들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는다.
중국에는 랑 랑과 윤디, 유자 왕이 있고, 일본에는 우치다 미츠코가 있다. 그러나 한국은 정경화(바이올린), 정명훈(지휘), 조수미(성악)를 배출했을 뿐 피아노 부문에서는 백건우 외에 이렇다 할 스타 연주자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몇 년 안에 우리는 이들의 이름을 세계 유수 연주장에서 보게될 것이다. 아니, 조성진은 이미 스타 반열에 올라섰다고 해도 좋겠다. 그가 지난 주 일본에서 가진 연주의 반응을 보면 얼마나 열광적인지 벌써 해외에서도 팬덤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클래식 음악이 죽어간다고들 걱정한다. 젊은이들이 더 이상 듣지 않고, 연주장에는 노인들만 그득하다는 한탄이다. 실제로 오페라와 콘서트 연주장에 가보면 대다수가 백발의 백인 노인들이다. 그러나 요즘 나오는 젊은 연주자들의 초인적인 기량과 열정, 언제든지 누구든지 보고 들을 수 있는 수많은 연주 동영상과 음반들, 거기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젊은이들의 댓글들을 보노라면 어쩌면 지금이 클래식 음악의 전성기라는 생각도 든다. 조성진 동영상을 클릭한 280만명도 대부분 젊은이들이 아니었을까.
나는 콘서트를 주로 스물네살짜리 아들과 함께 간다. 아들은 종종 음악회 시작 전에 셀폰으로 연주홀 사진을 찍곤 하는데, 왜 그러냐고 했더니 SNS에 올리면 친구들이 부러워하면서 ‘쿨하다’고 한다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젊은이들에게 ‘쿨’한 시대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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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특집1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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