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겁다. 가만 더듬어 보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날이 짧아져서 그런가? 연말이 오고 있어서 그런가? 운동을 안해서? 사람들과 덜 만나서? 어디서 모욕을 받았나? 누구한테 배신감을 느꼈나? 왕따를 당했나? 최근 마악 알아가기 시작하던 사람들을 한큐에 잃은 일이 있다.
오랜 세월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연관이 있던 분들도 아니었고 그저 잠깐 호의를 받은 것 뿐이어서 상실의 느낌을 구지 과장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 역시 많이 아팠던 것 같다. 우리 모두 잠깐 나들이 온듯 이 세상을 방문중이란 걸 잘 아는데도 모든 이별은 늘 슬프다.
오래 전 우리 선조들은 먹고 사는 일이 힘겨워 그저 등 따습고 배 부르면 된다 했건만 어쩌자고 등은 따스운데 가슴이 시리고 배는 빵빵한데 자꾸 뭔가가 고픈 걸까? 사람마다 그릇이 다르다. 온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사는 이도 있고 자기 몸뚱이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겨워 허덕이는 사람도 있다.
나는 하루 하루 내 앞가림 하며 사는 것도 힘에 겨운 사람이다. 그런데 세상이 시끄럽고 흉포해지면 그만 우울해 진다. 미국에선 시도 때도 없이 묻지마 총격이다. 근데 그게 늘 하필 학교 캠퍼스다. 애들이 무슨 죄가 있나? 몇 년전의 일이고 나와 개인적으로 아는 애 하나 없는데도 나는 아직도 샌디 훜 초등학교에서 유치원 애들이 몽땅 총에 맞아 죽은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잊혀지지 않을 뿐 아니라 종종 다시 생각이 나서 그 때마다 무지무지 슬프다. 무차별 사격을 하려면 나쁜 놈들 소굴로 뛰어 들어가 나쁜 놈들을 죽여야 하는 게 아닌가? 최근에도 학교에서 총기난사가 있어서 속상했는데 이번엔 빠리가 쑥밭이 됐다. 축구 구경하다, 콘서트에서 음악에 취해 있다가,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려다, 아무 이유없이 총에 맞아 죽는다.
누구의 가족이고 누구의 동료이고 누구의 소중한 이웃인 하나 하나가... 남을 죽이면 자신의 행복이 보상되는가? 무슨 놈의 종교가 살인을 하라고 가르치는가? 아니, 종교가 가르치는 게 아니라 탐욕스럽고 우매한 인간이 종교를 왜곡 이용 하는 걸게다. 그들은 진정 자신들이 저지른 폭력뒤에 달콤하고 풍요로운 수확이 자신의 손에 쥐어질 것이라고 믿는걸까?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중동으로 건너가 난민 구조 사업을 벌리는 사람들이 인질의 표적이 된 적이 있다.
그들은 툭하면 인질을 잡아 돈을 요구하면서 뜻대로 되지 않으면 댕강댕강 목을 잘랐다. 인질들은 계속 처형됐다. 처형된 인질 중에서 폴리 라는 미국인과 겐지라는 일본인의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다. 먼지와 피로감에 추레한 행색으로 주황색 옷을 입고 등뒤로 손이 묶인채 세계를 향해 무릎 꿇고 앉았던 모습. 칼든 사람 앞에 묶여있던 그들의 표정은, 그러나 침착하고 초연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명까지 바쳐가며 타인을 위한 삶을 살게 한걸까?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영국 액센트의 영어를 하던 그 칼잡이, 지하드 죤이 사살되었다 한다. 그러나 한 명의 칼잡이는 사살되어도 그 뒤를 잇는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의 행렬 은 그치지 않는다. 테러범 중 시리아 난민으로 위장 진입한 사람이 있다 해서 이제부터는 난민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부모와 함께 피난가다 바닷가의 모래밭에 얼굴을 묻고 죽은 세살박이 사내 아이, 아일란 쿠르드의 애처로운 죽음이 아직도 눈 앞에 아롱이건만. 최근 ‘Human Experience’ 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적이 있다.
불우한 환경탓에 거리로 내몰린 젊은 이들이 잠시 머물며 안정을 취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돕는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찍은 영화다. 한 때 무숙자였던 그들에게 뻬루에 있는 가난한 불구 아동을 치료하는 병원에서 얼마동안 도우미로 살아보게 하고 아프리카의 가나에서 나환자촌에서 생활하며 돕게 했다.
이 모든 일을 겪은 후 그들이 하는 말은 이 모든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소중하며 인생은 아름다운 거라고. 인생은 아름다운 거라는데 왜 내 마음은 무거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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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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