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파 위협’파리행 에어프랑스기 탑승
▶ 본보 김종하 기자 긴박했던 순간
17일 밤 LA를 출발해 프랑스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여객기가 폭탄테러 위협으로 솔트레익시티에 비상착륙해 대기하고 있다.
“This is an emergency. We will be making an emergency landing(이머전시 상황입니다. 비상착륙을 해야 합니다)”기내방송에서 나오는 긴급한 기장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호했다. 지난 17일 LA 국제공항(LAX)을 떠나 파리로 향하는 에어 프랑스 항공 65편 A380 항공기안.
오후 3시50분 이륙해서 두 시간쯤 지난 후였다. 객실 안은 평온함 속에 승무원들이 음료수를 나눠준 뒤 기내식을 서비스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베지테리안 등 특별식을 주문한 일부 승객들은 벌써 식사를 하고 있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세계 주니어음악콩쿠르대회 참가차 자녀를 데리고 에어프랑스에 오른 기자는 음식을 기다리며 에어 프랑스 기내 서비스로 제공되는 한국 영화를 한편 골라서 감상을 하던 참이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승무원들의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기내식을 서비스하려던 카트가 급히 치워지고, 이미 식사를 하고 있던 승객들에게는 음식 플레이트를 바닥에 내려놓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뭔가 잘못됐음이 직감됐다.
이어 기장의 비상착륙을 해야 한다는 안내방송이 짧게 나왔다. 이유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여기저기서 동요한 탑승객들이 웅성거렸고 긴장한 표정들이 역력했다. 한 할머니 승객은 불안감에 여승무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모니터에 운항 상황을 알려주는 지도상으로 비행기는 라스베가스를 한참 지나 아이다호주 상공을 지나고 있었는데, 급작스런 항로 변경으로 오른쪽으로 급히 선회해 내려갔다. 비상착륙 목적지는 가장 가까운 도시 솔트레익시티였다.
안내방송 후 비행기가 급강하를 계속하더니 솔트레익시티에 급한 착륙을 하기까지 20여분이 걸렸다. 긴장의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기내 안은 그리 큰 동요는 없었지만 기자를 포함한 탑승객들은 모두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기체 이상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에어 프랑스라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혹시…’하는 생각이 스쳤다. 테러 협박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기장의 첫 짧은 안내방송 이후 기내에서는 아무런 안내도 나오지 않았고, 긴장한 표정의 승무원들도 이유를 묻는 탑승객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이었다.
기자가 재차 비상착륙 원인이 뭐냐고 묻자 프랑스인 여승무원은 “미스터리”라고만 짧게 답하고 휙 지나갔다. 한 남성 승객이 일어나 가방을 꺼내려 하자 남성 승무원이 급히 다가와 심각한 표정으로 제지를 하기도 했다.
솔트레익시티 공항에서의 비상착륙은 착지 순간 ‘쿵’하는 소리와 흔들림이 평소보다 크고, 급한 브레이크에 제동거리가 훨씬 짧았지만, 다행히 비행기는 안전하게 활주로에 내렸다. 일부 승객들은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박수를 쳤다.
현지시간으로 오후 7시(LA시간 6시)를 조금 지난 시각, 창문 밖 활주로에 깔린 어둠 속에서 소방차량들과 경찰차들의 경광등 불빛들이 요란스럽게 깜박거리고 있었다. 응급차량들이 비상대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승무원들은 여전히 아무런 설명이 없는 가운데 그렇게 기내에서 기다리기를 30여분. 그러다가 나온 기장의 안내방송은 기내에 휴대한 개인 짐을 모두 가지고 내려야 한다는 내용뿐이었다.
탑승객들은 승무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비행기 앞과 뒷문으로 나누어 걸어서 내렸다. 활주로 한 가운데 경찰과 대형 버스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탑승객들 모두 경찰의 안내를 받으며 버스를 타고 공항건물의 보안구역으로 이동했다.
연방 세관국경보호국(CBP)이 입국심사와 조사로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탑승객들의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은 보안구역이라는 이유로 제지됐다.
초대형 항공기 A380에 탄 승객들의 수는 400명이 훨씬 넘었다. 의자도 제대로 없는 보안구역 내에서 승객들은 바닥에 주저앉거나 수화물대에 걸터앉아서 여전히 정확한 이유를 모른 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다.
이후 탑승객들 사이에서 ‘폭파위협’이 있었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고, 휴대폰으로 찾아본 CNN에 LA와 워싱턴을 출발한 에어 프랑스 항공기 2대가 익명의 폭파협박으로 긴급 착륙했다는 속보가 떴다.
결국 연방수사국(FBI)의 지휘로 철저한 기체 수색을 하고 있고, 승객들 모두 조사요원과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공항 관계자의 공식 설명이 승객들에게 전달된 것은 비상착륙으로부터 2시간여가 지난 후였다. 미국 여권을 가진 시민권자들은 중간에서 내릴 수 있는 선택권이 있고, 다른 국적 탑승객들은 모두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터뷰 조사는 승객들이 원하는 순서대로 강압스럽지 않은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약간 긴장한 채 줄을 서서 들어간 조사실에서 솔트레익시티 공항경찰 소속 경관은 이름과 생년월일, 여권번호를 적은 뒤 혹시 수상한 사람이나 행동을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런 건 전혀 없었다고 대답하니 경관은 “땡큐”하고 인터뷰를 끝냈다. 질문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430여명의 승객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하거나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며 차분히 기다렸다. 큰 소리를 지르거나 동요하는 사람들은 다행히 없었다. 비상착륙 이후부터 그렇게 무작정 기다리기를 5시간여. 메가폰을 잡은 공항 관계자가 드디어 탐지견과 장비들을 동원한 기체와 수화물 수색이 완벽히 끝났다는 발표를 하자 또 다시 박수가 터져나왔다. 공항 관계자는 “이제 여러분이 타실 비행기는 그 어느 항공기보다 안전하다”고 농담도 했다.
솔트레익시티 공항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한 항공기는 긴 운항 끝에 목적지인 프랑스 파리에 착륙했다. 현지시간 18일 오후 5시30분(LA시간 오전 8시30분.) LAX를 떠난 지 무려 17시간여가 지나고 있었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 활주로에 에어프랑스 65편이 무사히 착륙해 기장의 마지막 안내방송이 나오자 탑승객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게 박수로 답했다.
파리 테러의 큰 충격파가 가시지 않은 채 미국에 대한 테러위협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에어 프랑스’의 미국 출발 국제선 항공기들에 대한 연쇄폭파 협박이 단순한 장난전화였는지, 심각한 것이었는지는 조사 결과가 말해 주겠지만, LA를 떠나 파리로 가는 항공기에서 기자가 겪은 이번 일은 ‘테러’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 다가와 있었음을 실감케 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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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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