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세기는 우연히도 지구의 동쪽과 서쪽에서 대규모 토목사업이 시작된 시대이기도 하다. 동쪽에서는 거대한 방벽이 세워졌다. 만리장성이다. 총 길이는 무려 5,000km에 이른다. 서쪽에서는 로마가도가 건설됐다. 간선 도로만 80,000km가 넘는다.”‘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의 지적이다. 방벽은 사람의 왕래를 차단한다. 가도는 사람의 왕래를 촉진한다. 둘 다 국가방위라는 목적을 위해 일으킨 토목공사다. 그런데 중국과 로마는 왜 이처럼 극명한 사고의 차이를 보인 것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전략폭격기가 날아들었다. 중국이 조성한 남중국해의 인공섬 주변상공으로. 미 해군 구축함이 해상으로 진입한 후 12일 만이다. 이로써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해상시위에서 공중시위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남중국해가 다시 달아오르면서 새삼 한 가지 질문이 또 다시 제기된다. 남중국해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어디서 찾아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중국판 먼로주의가 거론된다. 중국은 또 영토팽창 야욕에 들 뜬 나치 제국과도 비유된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남중국해는 중국의 영토라는 중국지도자들의 일종의 피해자 의식(victim-minded)발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진단이다.
‘남중국해는 우리 것, 중국 영토의 일부다’- 등소평 이후 일관된 중국지도자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도광양회(韜光養晦)라고 했나. 힘이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참고 기다린다. 남중국해 영유권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낮추어왔다. 그게 80년대의 상황이다.
후진타오시대, 시진핑시대 들어 상황은 일변했다. 경제발전과 함께 군사력이 팽창하면서 연안방어에만 급급하던 중국의 해군 전략은 원양방어로 전환했다. 그러면서 높아진 소리가 ‘남중국해는 우리 것’이다.
남중국해는 이름 그대로 중국의 바다다. 그 바다를 그동안 외국세력이 멋대로 유린했다. 그 바다를 되찾는 거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U 자형으로 9단선(최근에는 10단선으로 바뀌었다)을 그어놓고 그 해역, 그러니까 전 남중국해의 90%에 이르는 해역을 ‘우리 바다’로 선언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섬이니, 산호초 등은 그 논리에 따르면 모두 중국영토인 것이다.
그 남중국해의 난사군도에 인공섬을 조성한다. 중국의 관점에서는 당연한 주권행사다. 그 주권행사에 시비를 걸고 도전해온다. 미국이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게 중국식 해석이다. 그 일방성의 뿌리 깊은 ‘우리영토의식’이 문제를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국가주권(sovereignty)에 대한 중국의 태도 내지 중국식 해석이다. 이 국가 주권과 관련해 중국이 전가의 보도인 양 걸핏하면 들고 나서는 것이 ‘사활적 이해’(core interest)란 용어다.
중국의 주권이 침해된다. 이는 사활적 이해가 달린 문제로 전쟁도 불사한다. 그러니까 중국의 사활적 이해 리스트의 척 목록을 차지한 것은 중국의 주권이고 영토보전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중국본토와 대만이 바로 사활적 이해가 걸린 지역으로 대내외에 선포됐다.
그 대상을 중국당국자들은 확대시켜왔다. 티베트와 신장성도 그 리스트에 올랐다. 거기다가 경제성장과 공산체제존속도 사활적 이해 리스트에 올랐다. 그러다가 최근에 그 리스트에 추가로 첨가된 것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다.
중국이 영토주권을 선포한 지역은 이처럼 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중국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 신형대국관계다. 중국이 영유권을 행사하고 있는 지역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영향권 하에 있는 지역에서도 중국은 간섭 받지 않고 내 멋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남중국해 사태의 근본적 문제도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지적이다.
거기다가 중국의 주권선포는 최근 들어 아주 다양한 영역에서 지극히 창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이버공간에서의 주권선포가 그것이다. 가상의 공간이다. 그런데도 주권을 선포한다. 이와 동시에 인터넷 검열은 당연한 주권행사로 정당화된다.
문화에도 이 개념이 적용된다. 그래서 나온 말이 ‘문화안보’다. 국가는 불순한 외부세력으로부터 중국문화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논리가 제시되면서 관련법이 제정됐다. 국가안보법의 한 가닥으로.
실제적 공간이든, 가상의 공간이든 가리지 않고 국가주권의 영역을 넓혀간다. 말하자면 인류 보편가지에 입각한 세계질서는 무시한다. 그러면서 ‘오직 공산당1당 통치라는 중국 중심의 배타성의 만리장성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중국이 이웃 국가들에게 악몽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자유무역에 따른 공해 상에서의 항해의 자유, 정보의 자유로 대변되는 국제사회의 흐름과 모순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남중국해 사태는 단순한 강대국 간의 갈등이 아니다. 거대한 가치관의 충돌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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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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