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이니 ‘망할 대한민국’이니 자조 섞인 유행어가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나돈다고 한다. 섬뜩하고 민망하다. 살고 있는 나라를 망국으로 손가락질 한다면 나라를 떠나는 방법 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20대와 30대에서 이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는 비율이 무려 88%나 된다고 한다. 국가의 동력이 되는 젊은 세대들의 탈 한국 분위기가 매우 충격적이다.
3포, 5포, 7포를 넘어 n포 세대라는 유행어까지, 말 만들기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기발한 발상에서 나온 신조어이지만 절망의 늪에서 허덕이는 젊은이들의 패배주의를 보는 것 같아 걱정이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3포)에서 대인관계와 내 집 마련을 추가해 5포, 여기에 ‘희망’과 ‘꿈’마저 내려놨다고 ‘7포 세대’,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는 n포 세대라는 것이다. 말만 들으면 ‘희망이 절벽’이다.
국가나 조직에서 패배주의는 가장 위험한 경계 대상이다. 국어사전에는 “어떤 일에 성공하거나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자신감이 없이, 소극적이며 일을 해 보기도 전에 포기하는 태도나 사고방식”이라고 정의했다. 혹자는 패배주의를 식민지 문화의 산물이라고도 한다. “엽전은 안 돼”“조선 것들은 때려야 말을 들어”등등 모두 신민지배 세력, 다시말해 일본이 한민족을 지배하려고 심어준 패배주의라는 것이다.
패배주의가 팽배한 조직은 경쟁력을 잃는다. 새로운 시도, 아이디어에 소극적이거나 아예 포기해 버린다. “너는 안돼”“어차피 안될텐데” “끝났어”등의 말은 조직의 분위기를 해보기도 전에 포기하게 만든다. 이런 조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복지부동이나 탈출이다. 물론 조직의 미래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망국의 언어들의 책임은 정치권과 지도자들에게 있다. 미국에 사는 기자도 매일 덧칠하듯 보도되는 한국 정치판의 좌충우돌, 사생결단 싸움판을 지켜보다보면 머리가 돌 지경이다. 하물며 캘리포니아의 3분의1도 안 되는 작은 나라 한국에서 사는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은 어떨까 싶다. 희망 보다는 물어뜯고 깎아내리며 매일 쏟아내는 정치인들의 막말들이 젊은이들을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암흑 속으로 몰아넣는 것임이 분명하다.
박근혜 정부를 불통이라며 맹공을 퍼붓는 야당의 문재인 당수 역시 그에 못지않은 불통이다. 자신만이 옳다며 당내에서도 배척받는 그가 대통령이 됐다면 박 대통령보다 훨씬 더한 고집불통이 됐을 것이다.
세월호, 메르스 사태 등등 사건 사고가 터질 때 마다 두 쪽으로 갈라져 수없이 발길질을 해대는 한국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무엇을 보고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취업도 어렵고 살기도 힘든데 누구의 멱살이라도 잡아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고 싶지나 않을까. 난파선 같은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유럽으로 훌훌 떠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얼마전 읽은 ‘마음을 얻는 지혜 경청’(2007년 출간)이란 소설은 ‘이청득심’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들어야 한다”는 말인데 말을 듣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절대 듣지 못한다는 뜯이다.
악기 제작 홍보팀에서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주인공 이토벤은 뇌암으로 청각을 잃어가면서도 남은 시간 자폐아들을 위해 바이올린을 만든다. 평소 자신의 주장만 내세웠던 주인공은 청각을 잃고서야 ‘이청득심’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서 매사 부정적이던 반골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회사의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힘을 불어 넣어 준다는 내용이다.
사람은 말하는데 3년 걸리고 듣는데 60년 걸린다고 한다. 말은 지식의 영역이지만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남의 말을 듣는 것은 지혜를 넓히는 일이고 소통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라는 뜻이다.
‘경청’은 이청득심을 실천하기 위한 다섯 가지 행동 가이드를 제시했다. ▲ 공감을 준비하자 ▲ 상대를 인정하자 ▲ 말하기를 절제하자 ▲ 겸손하게 이해하자 ▲ 온몸으로 응답하자. 한국의 정치인, 조직이나 기업의 지도자들이 꼭 기억해야 할 조언이 아닐까 싶다. 정치인들 싸움에 죄 없는 나라와 젊은이들만 등터질까 우려돼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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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섭 / 부국장·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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