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 택시 기사들의 분노는 컸다. 광화문과 시청 등 도심이 온통 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위대로 덮여 들어갈 수 없어 장사를 공쳤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들의 이런 분노는 세월호 유가족 대표들이 힘없는 택시 기사를 집단으로 폭행한 후 처음인 것 같다.
시위대들은 아직 만들지도 않은 교과서를 ‘친일 독재 미화 교과서’로 매도하며 국정화를 반대하고 있으나 교과서 논쟁의 핵심은 국정화냐 아니냐가 아니라 현행 교과서가 균형 잡힌 시각에서 한국 현대사를 보고 있느냐 여부다. 만약 이들 교과서가 공정하게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면 국정화를 추진하는 것은 온 국민이 반대해야 한다. 자녀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데 국가가 개입해 좌지우지 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국정화에 반대하는 이 중 누구도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국사 교과서가 공정하다 우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이 보기에도 현행 교과서들이 이념적으로 편향돼 있지 않다고 말하기는 낯 뜨거운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교과서가 한쪽으로 기울어도 너무 기울었다는 것은 조그마한 양심이라도 남아 있는 사람은 부인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시장의 1/3을 점하고 있는 한 교과서의 경우 이승만과 박정희는 시종 일관 악당으로, 김대중과 노무현은 영웅으로 묘사되고 북한의 한국의 대한 침략과 인권 유린은 적당히 덮여 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기 전 70 평생 중 40년을 반일 독립운동에 바쳤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바탕으로 한 국가의 기본 틀을 만들었으며 농지개혁으로 소작인이었던 농민들이 자기 땅을 갖는 것을 가능케 했고 한미동맹을 통해 북한의 남침을 억제했다. 그러나 이 교과서는 이런 부분은 모두 대폭 축소하거나 생략하고 친일파 기용, 사사오입 개헌, 삼선 개헌, 장기 독재, 3.15 부정 선거의 주역으로만 묘사하고 있다.
박정희도 마찬가지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보릿고개를 해결하고 한국을 세계 10위의 무역 강국으로 만드는 토대를 놓았음에도 그는 5.16 쿠데타를 통해 민주주의를 짓밟고 유신을 통해 인권을 탄압했으며 종신집권을 꿈꾸다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은 인물 정도로 나온다.
산업화는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노동자의 인권 탄압과 임금 착취, 그리고 공해를 유발한 과정이었으며 기업가와 재벌은 밀수와 조세 포탈, 횡령을 일삼다 감옥에 간 후에도 비자금을 동원한 로비로 사면을 받고 풀려나는 존재로 그려져 있다. 산업화의 주역인 이병철과 정주영은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지만 노동 인권을 외치다 분신자살한 전태일은 영웅으로 추앙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서술은 더 한심하다. 6.25는 “북한이 남침했다”가 아니라 “6.25 전쟁이 발발하였다”로 돼 있고 그 후 60여 년 동안 북한이 한국에 대해 저지른 아웅산 테러, KAL기 폭파,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은 언급이 없다. 오로지 이런 북한과 화해 정책을 편 김대중과 노무현만이 위대한 인물로 평가되고 김대중의 세 아들이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되고 그 가신 박지원이 불법 대북 송금 혐의로 감옥에 간 사실은 물론 노무현 역시 불법 자금 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다 자살한 것도 언급돼 있지 않다.
이승만은 4.19로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자 “불의를 보고 학생들이 가만히 있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며 물러났지만 김일성은 신의주 반공 의거가 일어나자 기관총으로 시위대를 학살한 후 주모자들은 시베리아로 보내고 3대째 집권하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조봉암과 인혁당 관계자를 사법 살인 했다고 비난 받고 있으나 김일성은 조선 공산주의 운동의 대선배인 박헌영을 비롯, 연안파의 무정, 소련파의 허가이를 비롯 수천 정적의 씨를 말렸고 장성택의 예에서 보듯 이 작업은 북한에서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한국 독재자의 사법 살인이 가내 수공업 수준이라면 북한은 대량 생산 체제임에도 이에 대한 균형 잡힌 서술은 찾아 볼 수 없다.
국정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정부 욕하는데 목청 높이기에 앞서 과연 이런 교과서로 2세들을 가르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에 대한 답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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