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스미스는 자유 시장 경제의 우월성을 이론적으로 처음 설파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는 시장 경제의 문제점에 눈 먼 사람도, 상인들의 이익을 대변한 사람도 아니었다. 18세기 후반 번성하던 스코틀랜드의 상업 도시 에딘버러와 글래스고우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낸 그는 그곳 상인들이 실제로 어떻게 비즈니스를 하는지 똑똑히 목격했다.
그런 그가 내린 결론은 “같은 직종 종사자들은 즐기기 위한 자리를 포함해 만나기만 하면 ‘어떻게 하면 대중을 벗겨 먹을까’로 이야기의 끝을 맺지 않는 일이 거의 없다”고 적었다. 상공인들이 좋은 상품을 싸게 만들어 팔기보다는 담합을 통해 부당 이익을 챙기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일찍이 간파한 것이다. 그 후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상공인들의 이런 경향은 변하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를 택한 모든 나라가 독과점 금지법을 만들어 상인 간의 담합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요즘 한국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논쟁으로 시끄럽다. 국정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역사와 같이 다른 견해가 나올 수 있는 분야에 정부가 개입해 단일 교과서를 만드는 것은 다양성을 해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의 대다수는 평소에 자유 시장 경제 체제를 ‘악마의 똥’ 정도로 생각해 온 ‘진보적’ 인사라는 점이다.
평소 왜곡된 시장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정부의 개입을 적극 옹호에 오던 이들이 교과서 문제에 관해서만은 열렬한 시장주의자가 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현재 한국 교과서 시장의 좌편향 성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한국 교과서 시장의 90%를 점하고 있는 좌파 성향 여섯 교과서 필진 37명 가운데 절반이 전교조 출신이거나 국보법 폐지 주장을 펴온 인물이다. 중도 성향 교과서의 점유율은 10%, 우파 성향 교학사 교과서는 0.2%에도 못 미친다.
어느 나라건 학계는 좌파 성향이 강하지만 그중에서도 한국 국사학계는 유별나다. 2년 전 처음 세상에 나온 교학사 교과서는 나오기 전부터 “김구는 테러리스트, 유관순은 깡패”로 묘사했다는 근거 없는 공격을 받았으며 나온 후에는 오류가 가득 하고 친일과 독재를 미화했다는 이유로 조직적인 보이콧 대상이 됐다. 이를 채택한 학교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시위와 전화 협박에 시달려야 했고 결국 대부분 철회하고 말았다. 책 제작부터 배포에 이르기까지 좌파 카르텔이 장악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 시장에서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소리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이처럼 분명히 보여준 사례는 없다.
한국 정부가 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밝히자 일부 단체에서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교과서를 ‘친일 독재 미화 교과서’로 매도하면서 철없는 중고생들까지 길거리로 내몰며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7년 전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자 모든 국민을 광우병에 걸려 죽게 하려는 수작이라며 여중생들을 동원해 울며불며 “명박아, 미친 소고기 너나 먹어라”고 외치게 하던 수법과 매우 유사하다.
그 동안 수많은 한국민이 미국 쇠고기를 먹었지만 광우병에 걸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쯤 되면 그 때 일을 사과하는 양심 있는 인사가 한 명쯤은 있을 법 한데 반성은커녕 교과서 파동에 광우병 플레이북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 정신상태가 어느 정도 병들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70~80년대 박정희와 전두환의 독재로 암울하던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던 많은 인사들은 역사 연구를 통해 한국을 바로 잡으려 했다. 독재와 인권 탄압의 폐해를 직접 경험한 이들은 한국 근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것으로 이해하고 남한보다 수백 배 포악하면서 수백만 동족을 굶겨 죽인 북한의 공산 왕조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한 남한의 독재자들에 대해서는 매우 가혹하다. 사실상 좌파 카르텔의 독과점 체제 하에 있는 기존 교과서로 2세들을 가르친다면 이런 편향된 역사관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정부가 역사 교육을 좌우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역사 교과서 시장은 정상적이지 않다. ‘다양성’을 위해 국정화를 반대한다는 사람들은 현재 쓰이고 있는 교과서 내용이 과연 얼마나 다양한지 한번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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