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에도 국제공항의 입국심사대처럼 급행출구와 완행출구를 구분한 검문소가 있다. 염라대왕의 소환장을 받고 자연사한 사람들은 자국여권 소지자들이 급행출구를 휙휙 빠져 나가듯이 하늘 문을 거침없이 통과하지만, 소환장 없이 자기 수명을 다 채우지 않고 온 자살자들과 피살자들은 완행출구 앞에 장사진을 이루며 몇 시간씩 꼬치꼬치 심사 받는다.
만약 이런 우스개가 사실이라면 자살자 심사대 줄에는 한국인이, 피살자 심사대 줄에는 미국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을 터이다. 한국에선 37분마다 한명씩, 하루 평균 40명이 자살한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이 28.5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평균 자살률 12.1명) 가운데 10년 넘게 톱을 달린다.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한국에서 지난 2013년 한해에 1만4,427명이 자살했지만 같은 해 미국에선 엇비슷한 1만1,208명이 남의 총에 맞아 죽었다. 하루 32명꼴이다. 사상자를 4명이상 낸 무차별 총격이 금년에만 294건이나 터졌다. 하루 한건 이상이다. 그중 45건은 학교 캠퍼스에서 터졌다. 모두 9,957명이 죽고 2만269명이 다쳤다. 매일 어린이와 10대 7명이 총에 맞아 죽는다.
지난 1968년부터 2011년까지 43년간 총기와 연루돼 목숨을 잃은 미국인은 140여만명에 달했다. 이는 독립전쟁부터 이라크 전쟁까지 모든 국내외 전쟁에서 산화한 120여만 전사자를 능가하는 수치다. 미국 내 민간인 총기는 약 3억정으로 추산된다. 계산상으로는 남녀노소 국민 1인당 1정 꼴이지만 실제로는 국민의 3분의 1이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1일 오리건주 로즈버그의 엄쿠와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10명의 사망자를 낸 무차별 총기 난사사건이 발생한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일상화된 총격사건이 정말로 지긋지긋하다”고 개탄했다. 그는 뉴스매체들의 총격사건 보도도 틀에 박혔다며 지난 10년간 발생한 총격사건과 테러사건의 피해상황을 비교해서 보도해달라고 주문했다.
연방정부가 테러방비를 위해 지출하는 연간예산은 1조달러를 상회한다. 정부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간 총기사고로 죽은 미국인은 연평균 1만1,385명에 달했다. 같은 기간 테러로 목숨을 잃은 미국인은 연평균 517명이었다. 그나마 2001년의 9?11 테러 사망자 2,937명을 제외하면 이 기간의 테러 희생자는 연평균 31명에 불과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규제법을 강화해 대량참살의 소지를 사실상 없앤 영국과 호주 등을 예로 들면서 “우리는 왜 못 하느냐?”고 공화당 주도의 의회를 힐난했다. 지난 2012년 미국의 총격 살인사건은 인구 10만명당 2.9건이었지만 영국은 그보다 30배나 적은 0.1건이었다. 특히 미국에선 모든 살인사건의 60%에 총기가 사용됐지만 영국에선 10%에 불과했다.
대형 총격사건 때마다 전 국민이 충격 받고 비통해한다. 다시는 그런 비극을 용납하지 않을 듯한 분위기지만 말짱 헛일이다. 희생자 추모 촛불시위가 고작이다.
엄쿠아 대학 총격사건 이후 로즈버그 주민들은 총기규제 강화를 요구하지 않았다. 다투어 총포상으로 몰려가 총을 구입했다. 학생들이 총을 갖고 있었다면 총격범이 범행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논리다.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도 똑같은 말을 했다. 그는 총기휴대 면허를 갖고 있다며 “나를 쏘려는 놈은 내가 먼저 쏘겠다”고 떠벌였다. 역시 공화당 후보인 칼리 피오리나는 총기규제가 강할수록 총격사고가 빈발한다는 엉뚱한 논리를 폈다. 전국 총기협회(NRA)는 2012년 샌디 후크 초등학교 참살사건 후 회원이 500여만 명으로 불어났다며 뻐겼다.
엊그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총기규제 강화법을 행정명령으로 관철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녀를 찍어주고 싶지만 지금 오바마가 못 하는 그 일을 그녀가 해낼 수 있을까? 암살당한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회생해서 생존권 캠페인을 벌여야만 될 일 같다. 킹 목사도 하늘나라 검문소의 완행출구에서 오래 시달렸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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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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