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블라인더의 날개들을 드르륵 드르륵 긁어대는 소리에 문득 눈을 뜬다. 잠깐 낮잠에 취해 있었나보다. 햇빛은 바람에 너울대며 창 밖 나무들 위에서 춤을 춘다. 휴식의 달콤함... 바쁘게 돌아가는 바깥 세상의 온갖 소식들과 산더미 같이 밀린 잡다한 일들에도 불구하고 한껏 나태해져본다.
150일의 여름 장사가 끝나고 하루 24시간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는데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 외에 갑자기 주어진 시간의 여백에 어쩔줄 몰라한다. 매해 겪는 일이지만 할 일은 많은데 그 중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얼까 생각한다. 대개는 해야만하는 일들로 내 손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들이고 보니 내게 좀더 관대하게 모든걸 놓아버리고 몇일은 이 달콤한 휴식에 빠져보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이 휴식의 시간 동안 바람이 블라인더를 흔들어 날 깨우듯 저 깊이 잠들었던 열정이 그 숨을 몰아쉬며 깨어나 내 안에 바람으로 휘몰아치길 기대하는 것이다.
어느 아마추어 밴드 모임, 실내는 땀과 열정으로 젖어있다.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음에도 각 악기들의 소리로 꽉 찬 실내는 열기에 들떠있다. 내 또래 혹은 약간 젊은 이들 다섯의 연습실에 남편과 둘이 청중으로 끼어든다. 감동을 주기엔 어딘가 부족한 연주임에도 각자 소리를 낼려고 애쓰지 말고 소리 없음도 음악이라는걸 명심하자고 외치며 이리 저리 멤버들에게 주문하는 리더를 비롯해 한 마디의 대꾸나 불평없이 진지한 멤버들의 자세에 감동한다. 옛 PoP의 연주에 맞추어 추억으로 돌아가고 이 아름다운 모임을 보는 것으로 내 잠자던 열정이 아주 미세한 숨을 쉬기 시작함을 느낀다. 아직 꿈이 있는가를 스스로 묻는다.
이미 버려진 젊은 시절의 꿈들, 그 파편들만 간간이 떠올라 그 꿈을 꾸었던 설렘의 기억에 가슴이 저린다. 이젠 크고 작은 다른 꿈들을 꾸지만, 보다 성숙하고, 보다 현실적인, 그러나 어느만큼의 체념이 배어있는 꿈들은 나를 그토록 설레이게 하진 못한다.
그렇더라도 그 꿈들이 한결같이 향하고 있는 것은 감동이라는 단어이다. 감동을 주는 것, 아니 나누는 것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그 꿈이 어느 분야의 것이건 혹은 삶 자체일지라도... 요즘 이런 저런 분야의 많은 작품들이 대중의 인기를 몰고 다닌다. 얼마전 관람한 영화, 영화는 없고 연기만 있다. 천만이 넘는 관객동원이란 말에 조금의 예술적 가치를 기대해서일까. 극장을 나오면서 나는 그 영화를 잊어버렸다.
현대는 그것이 음악이든 미술이든 영화든 아니면 경계가 모호한 그 어떤 장르의 것이든, 그저 소모되어지는 쾌감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기형적 작품들위에서 예술은 방황한다. 대중은 오락적이고, 충격적이고 무겁지 않으며 다분히 충동적이고 우발적이며 기발한 것들에 매료되고 열광한다. 그리고 떼지어 몰려 다니며 그러한 것들이 선사하는 즐거움을 과대포장 선전한다. 그러한 작품들도 분명 공헌하는 바가 있다. 내 취향이 아니라고 모두 비난의 대상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대중은 언제나 옳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현 시대의 반영이므로. 그렇긴 해도 그러한 대중의 선도에 따라 다니느라 급급한 작품들은 돈과 이름은 얻을수 있을지 모르나 사람의 마음은 얻을 수 없다.
내겐 예술 작품이라 칭할수 있는 한가지 바로미터가 있는데 감동이 바로 그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가슴을 뜨겁게 하는 그 무엇, 우리의 영혼에 대고 무언가 말하려는 그 무엇, 그 것이 없다면 그저 오락일뿐, 아무리 저명한 작품이라도 그 것은 예술이 아니다. 일반적 시선과 취향과 대다수의 견해들에도 불구하고 감동이란 걸 받기위해선 내가 한껏 열려 있어야 할테고, 받은 것을 나누기 위해선 그걸 내 것으로 키워낼 수 있는 자양분이 있어야 할테니 감동이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내 꿈은 평생토록 감동을 주고 받는 것이라 말해도 좋으리라.
작품으로든 혹은 삶으로든... .창 밖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블라인더 틈새로 슬그머니 기어 들어와 내게 속삭인다. 꿈을 꾸는 자여, 그대는 그 자체로 이미 행복하고, 꿈을 꾸는 한 그 삶은 열정적인 것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