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첫 주는 연방대법원 새 회기의 시작을 의미한다. 6월 말 끝난 지난 회기에 동성결혼과 오바마케어 합헌 판결로 진보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던 대법원은 5일 월요일, 이번에는 ‘보수의 승리’가 예보되는 2015~2016년 회기를 ‘조용히’ 개정했다.
매해 그렇듯이 이번에도 대법원 심의 일정표에는 우리 일상의 오늘과 내일을 바꾸고 뒤흔들 핫이슈들이 줄줄이 올라 있다. ‘대법원 데자뷰’ ‘속편의 회기’라는 비유가 나돌 만큼 소수계 우대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에서부터 노조, 투표권, 피임, 낙태, 사형제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논쟁으로 낯익은 토픽들이다. 9명 대법관 중 보수파 5명이 보수 입장을 지지했던 이슈들이 대부분이어서 진보진영의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중에서 이민사회를 정조준 한 ‘극우의 음모’가 눈길을 끈다. 보수단체의 지원을 받는 수 이븐웰 등 2명의 텍사스주 공화당 유권자가 제기한 이른바 ‘1인 1표(One Person, One Vote)’ 소송이다. 대의 민주정치의 핵심인 ‘1인 1표’ 원칙에서 1인의 의미, 즉 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대법원이 정의해 주어야 한다.
1964년 대법원은 각 주의 선거구는 헌법이 명시한 1인 1표의 원칙에 의거해 획정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각 선거구 내의 인구가 비슷한 숫자라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현재 모든 주가 선거구를 획정할 때 그 지역에 거주하는 전체 인구의 숫자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그 ‘인구’란 누구인가? 거주하는 모든 주민인가? 아니면 투표권 가진 유권자인가? 이것이 이번 소송의 핵심이다. 소송의 원고들은 유권자 수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투표자격이 없는 주민까지 모두 ‘인구’로 카운트하기 때문에 비유권자가 적은 선거구 내 유권자에 비해 자신처럼 비유권자가 많은 선거구 내 유권자의 한 표의 가치가 약화되어 평등권을 침해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비유권자는 누구인가. 아이들, 복역수, 중범전과자, 그리고 시민권이 없는 이민자들이다. 불법이민만이 아니라 영주권자를 포함한 합법 이민자도 이에 속한다. 주요 타겟은 이민자다. 다시 말해 이번 소송은 이민 인구를 선거지도에서 지워버리려는 보수의 정치적 음모다. 투표자격이 없는 이민자들까지 카운트하여 ‘인구’ 숫자를 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이들은 공공연하게 주장한다.
“각 주의 전체 사람 수에 의거해 획정되어야 한다”고 헌법에 명시된 연방의회 선거구는 이번 소송의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븐웰이 승소할 경우 전국 각주의 주 선거구는 대폭 재조정되어야 한다. 비유권자가 많은 민주당 성향의 도심지역 선거구가 줄어들면서 정치권력이 공화당 유권자가 많은 교외 농촌지역으로 옮겨갈 것이다. 라티노를 비롯한 전체 이민사회 정치적 영향력도 상당한 타격을 우려해야 한다.
불법이건 합법이건 수백 수천만 이민 인구가 ‘사람’으로 카운트되지 않는다면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등록 유권자만, 실제로 투표 참여 유권자만 카운트하는 엘리트만의 선거구? 설마…상당수 전문가들이 ‘보수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는 케이스는 따로 있다. 백인 여학생이 텍사스대학을 상대로 역차별을 주장하며 제기한 어퍼머티브 액션 소송과 캘리포니아 교사노조를 상대로 비노조 회원들이 회비징수를 문제 삼은 소송이다.
애초 2008년 소수인종 학생 우대정책 때문에 텍사스대에 입학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애비게일 피셔가 제기한 어퍼머티브 액션 소송은 2013년 대법원에서 이 정책을 계속 유지는 하되 적용기준을 좀 더 엄격하게 검토하라는 주문과 함께 재심리하라고 항소법원으로 돌려보냈던 케이스가 되돌아 온 것이다. 지난해 항소심이 또 대학 승소판결을 내렸는데 대법원이 피셔 케이스를 다시 받았다는 것은 이 같은 항소판결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만인에게 평등한 법의 보호를 명시한 헌법 하에서 어퍼머티브 액션은 유효한가” - 이번에 대법원이 답해야 할 질문이다. 평등사회 구현을 위해 마련되었던 제도가 평등의 이름으로 사망선고를 받을 위기에 처해 있다.
어퍼머티브 액션에 대한 반감 못지않게 현재 보수파 대법관들이 못마땅해 하는 것은 노조 비회원에 대한 의무적 회비징수다. 1977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현재 공무원노조는 정치활동이 아닌 집단협상 경비를 위한 회비는 비노조원에게서도 징수할 수 있다. 이번 소송의 원고들은 노조의 모든 활동은 정치적이므로 비노조원들에 대한 회비 강요는 정치활동에 동조 안하는 자신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집단협상을 통한 혜택은 누리면서 회비를 안 내는 것은 ‘무임승차’라는 노조의 주장은 보수파 대법관들에겐 별로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할 전망이다.
연방대법원의 판결 결과를 예상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하지만 적어도 ‘1인 1표’ 소송에선 합리적 판결이 나오기를 기대하자. 대법원이 ‘사람’의 정의까지 바꾸려는 극우보수의 정치적 음모에 동조할 만큼 우경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지난 회기 존 로버츠 대법원장도 오바마케어 합헌판결을 통해 10년 전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대법관의 역할은 “야구 심판과 같다”고 강조했던 자신의 신념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나마 다행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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