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초가 되면 유난히 우편함에 눈길을 자주 두게 된다. 오래 전부터 구독하고 있는 건축월간지를 받아 보는 기대 때문이다. 지난 8월 달에는 북가주의 ‘페이스북 사옥’이 표지에 나왔고 9월호에는 남가주의 ‘브로드 뮤지엄’이 선정 되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건축물이 연속으로 표지에 등장하기도 흔치 않은 일이다.
윌셔에 있는 LA카운티 미술관(LACMA) 구내 에도 2008년에 문을 연 ‘브로드 현대 미술관’ (BCAM)이 있는데, 그 입구에 ‘브로드 부부의 사진이 들어간 자그마한 안내판을 지나게 된다. 미술 애호가인 부자쯤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대체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호기심이 생긴다.
‘뉴요커’ 잡지에 소개된 기사에 의하면 리투아니아계 이민자의 아들로 뉴욕에서 태어난 이라이 브로드는 어려서 부모를 따라 디트로이트로 이주하여 성장하였으며 미시간 주립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하였다. 졸업 후 당시18세였던 에디츠와 결혼하였고 잠시 회계사로 일하다가, 1957년에 처가에서 사업자금을 빌려 주택건설업체인 ‘카우프만 앤 브로드’(Kaufman & Broad)를 시작해서 베이비붐 세대의 주택 수요에 편승하여 사업이 번창한다.
1980년대에 카우프만이 은퇴하고 1989년에 브로드도 ‘케이비 홈’(KB Home) 회장에서 사임하고 자신의 원래 전공분야로 돌아온다. 보험회사를 인수하여 ‘선아메리카’(SunAmerica)로 개칭하고 성공적으로 회사를 경영하여 10년 후 큰 차익을 내며 AIG에 팔고 은퇴한다. 장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탁월했고, 치밀하고 철두철미한 사업가로 그가 관여한 2군데 회사를 모두 ‘포춘 500’ 기업으로 별난 이력의 사업가이었다. 1999년 은퇴하고 사업으로 번 돈을 공익사업에 쓰는 ‘벤처 자선 사업가’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한다.
1960년대 초 아내 에디츠는 집안 장식용 그림을 구하러 라 시에네가 부근의 화랑들을 가끔 들러보는 게 취미가 되었다고 한다. 앤디 워홀의 ‘통조림 깡통’(Soup Can) 그림을 부엌에 걸어 놓고 싶었는데 당시 100달러가 넘는 이 그림을 구입 했더라면, 아마 남편이 집밖에 못나가게 금족령을 내렸을 거라고 회고한다. 그 분야에 관심이 없었던 남편은 그림보다는 가격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한다. 그런데 그런 인식이 바뀌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원래 ‘브로드’는 민주당원이었으나, 1970년대 초, 태프트 슈라이버의 공화당 기금 모금 파티에 초대를 받는다. 당시 MCA 유니버설 부회장이자 미술품 수집가이었던 슈라이버의 저택에 전시된 미술품들에 크게 감명을 받게 된다. 그리고 여태까지는 몰랐었던, 부자들만을 위한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업이 성공하여 큰돈을 벌어 큰집과 좋은 차를 타는 것만으로는 부자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되고, 그 후로 공익사업과 미술품 수집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사업가적인 감각으로 1950년대 이후 현대 미술품에 집중하였으며 이 분야 최대 수집가이자 후원자로 알려지게 된다.
그는 부자들이 가진 재산의 최소한 50%를 사회에 기부할 것을 주장하며, 자신은 26억달러를 공익사업을 위한 ‘브로드 재단’에 희사했다. 브로드는 교육, 의학 및 과학연구, 미술, 음악 등 다방면으로 큰돈을 기부해 왔다. 특히 LA 중심부 그랜드 애비뉴 선상에 있는 ‘현대미술관’ (MOCA) 창립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디즈니 홀 건립이 자금 부족으로 중단되었을 때 이를 살려 냈고, 인근의 LA 대성당’ 건축기금에도 기여하는 등 다운타운 활성화에 지대한 역할을 해왔다. 이번에 선정된 브로드 뮤지엄은 이런 노력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라이 브로드는 그를 부자로 만들어준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에 큰돈을 쓸 줄 아는 쓸모 있는 부자로 보인다. 그의 이름은 LA 중심부 높은 곳, 큰 바위에 새겨 진 것처럼 앞으로 오래 동안 기억되리라 본다.
‘브로드 뮤지엄’은 브로드 부부에게는 서로를 위한, 하얀 베일에 싸인 영원한 ‘타지마할’이자 소장 미술품들을 위한 견고한 ‘피라미드’라고 할 수 있다. 입구 로비에서 3층 전시실로 연결되는 긴 동굴 속을 오르는 에스컬레이터는 ‘피라미드’의 비밀통로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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