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민 와서 사는 우리 한인들을 위해 나는 1975년 10월2일 지금은 없어진 한 한국어 신문에 ‘생활영어교실’이란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 이 칼럼은 ‘미국생활영어’라는 새 이름으로 한국일보 미주판으로 이동하여 지난 2일자로 꼭 40년째 연재가 계속되고 있다. 신문이 없는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면 40년간 무려 1만2,000회 넘게 썼다.
미국에서 일간신문에 가장 오래 연재된 칼럼이 무엇일까 궁금해서 구글검색을 해보았더니 인생상담 칼럼 ‘Dear Abby’였다. 이것은 포올린 휠립스(Pauline Phillips)라는 여성이 Abigail Van Buren이라는 필명으로 1956년부터 2000년까지 44년간 매일 쓴 칼럼이었다. 휠립스 혼자서 44년간 ‘디어 애비’를 쓴 것에 비하면 나는 4년이 짧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계속 더 쓸 것이므로 내 ‘생활영어’ 칼럼은 적어도 미국에서는 한 필자가 계속 쓴 최장 칼럼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1973년 당시 나는 서른 살 나이에 단돈 150달러을 손에 쥐고 미국 땅에 첫발을 디뎠다. 미시간 주의 아름다운 소도시 칼라마주에 있는 WMU(웨스턴 미시간 대학교) 역사학과에서 유급조교로 일하면서 석사과정을 이수하기 위해서였다. 1972년에 서울에서 친 나의 TOEFL 성적은 매우 우수했기 때문에 영어 걱정은 없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자존심에 치명적 타격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그때 용돈을 좀 벌려고 대학 구내식당에서 busboy(버스보이)로 파트타임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한 달 만에 식당 매니저가 나를 해고하는 것이었다. 내가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게 이유였다. TOEFL 작문과 어휘부분 세계최고 득점 기록을 세운 내가 무식한(?) 대학 구내식당 매니저한테 영어 못한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말이 되었다. 나는 교수의 칭찬을 받을 정도로 논문도 잘 쓰고, 보통 미국사람들도 잘 모르는 단어들도 알고 있었지만, busboy(손님이 식사를 하고 나간 후 식당 테이블에서 그릇 치우는 사람)를 ‘버스차장’으로 잘못 알아들었고, 식당에서 쓰는 Check, please!(계산서 갖다 줘요) Wait tables(테이블 서빙을 맡아라), Bus this table quickly!(이 테이블 그릇들 빨리 치워!) 같은 일상 생활영어는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식당에서 잘린 날부터 나는 미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 가운데 처음 듣는 말들을 노트에 적기 시작했고 이것을 모아 언어 장벽 때문에 고생하는 한인들을 위해 도미 2년 후부터 LA에서 발행되는 한인신문에 영어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이 신문칼럼을 모아 책으로도 만들어 한인사회에 보급하기로 결심했다. ‘미국생활영어’ 첫 권이 나온 것이 1976년 9월16일이었다.
목돈이 없어 친구한테 4,000달러를 빌려 우선 2,000권만 찍었다. 혹시 책이 팔라지 않아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나는 아내와 함께 LA의 한국 식품점 주차장에 가서 자동차 유리창에 광고지를 꽂아 놓았다. 그리고 우선 한인들이 많이 사는 LA와 뉴욕의 한글 신문에 광고도 냈다. 처음엔 하루에 대여섯 건 주문이 오더니 점점 늘어나 매일 10건 이상 계속 주문이 밀려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박이었다. 책1권이 나온 지 석 달 만에 제2권도 만들었다. 그리고 10권까지 계속 만들었다.
이 책은 본국에서도 소문이 나 웅진미디어가 1980년대에 책과 카세트 테입 세트를 만들어 보급했다. 2001년 2월23일자 조선일보 사보에 의하면 내 책이 100만부를 돌파, 조선일보사가 출간한 책 중 가장 많이 나간 책이 되었다.
이런 소문이 일본까지 전해져 일본 출판사가 일본어로 번역하여 전10권 세트로 냈다. 그 다음엔 대만과 중국 본토 출판사들도 중국어판을 냈다. 최근엔 기존의 책 10권에다 추가로 쓴 2권 분량을 더 보태 25개 분야로 재편집한 1,000쪽 대형 새 책 한권에 ‘이것이 미국 영어회화다’란 타이틀을 붙이고 80분짜리 CD 22장을 함께 묶어 주로 미국 한인들에게 보급하고 있다,나는 오늘도 미국 6개 대도시에서 발행되는 신문에 ‘미국생활영어’ 칼럼을 쓰고 있다. 10월2일로 4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매일 생활영어 칼럼 쓰는 일은 즐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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