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국을 다녀간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느 대중 스타를 능가하는 주목을 받았다. 교황 개인적으로는 생애 첫 미국 방문인데다 이전 교황들에 비해서 두드러지는 친서민 이미지 때문에라도 더욱 관심이 컸다. 더욱이 이민자와 환경 문제, 경제적 약자 보호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현실 정치와 직결되는 핫이슈들을 거침없이 거론한 교황의 행보가 가져온 울림은 강렬했다.
사실 올해 78세인 교황이 그 연세가 되도록 미국에 한 번도 오지 않았었다는 게 미국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겠느냐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평소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을 구조적 문제로 보고 이에 대한 극복을 공공연히 주창해 온 교황이기에, 바로 그 미국에서 교황이 보인 이번 행보에 대한 평가는 정치 성향이나 종교적 배경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빈자의 성인’으로 일컬어지는 ‘프란시스코’를 교황명으로 택한 그가 교황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늘 고난에 처한 사람들, 소박한 민초들, 사회적 약자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 서슴없이 ‘스킨십’을 하며 챙기는 모습에서 신선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번에 이러한 교황의 행보를 좇으면서 든 생각이 있다. 꼭 교황 같은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공적인 일을 맡아 하는 사람들이라면 최소한 그의 본을 따라 어렵고 힘든 처지에 처한 사람들을 마음으로 생각하고 이해해서 그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일을 하는 것을 배웠으면 하는 것이다. 특히 공무원들이 그렇고, 관료들이 그렇다.
우리가 한국의 공무원들에 대해 떠올리는 부정적인 단어들, 행정편의, 전시행정, 보신주의, 한건주의, 복지부동, 철밥통 등등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특히 해외에 파견돼 대한민국을 대표하면서 재외국민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공관원들과 주재 공무원들은 한국에서보다 2~3배의 수당을 더 받으면서 근무하는 만큼 한인들을 ‘위해’ 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게 문제다.
캘리포니아에서 올해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이른바 불체 신분 이민자들에게는 천금 같은 운전면허증 혜택을 아직도 많은 한인 서류미비자들이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도 이러한 배경이 작용한다.
LA 총영사관의 영사관 아이디(ID)를 신분 확인을 위한 증명을 쓸 수만 있다면 해당 한인들이 훨씬 더 쉽게 운전면허증을 받을 수 있을텐데, 그 전제조건인 바코드 삽입에 필요한 예산 배정이 되지 않고 있다는 ‘행정편의’적 덫에 걸려 한인 해당자들은 여전히 하루하루를 마음 졸이며 살아가고 있다. 공무원들이 고통 받는 당사자들의 입장에 서서 조금만 더 발로 뛰며 일을 했다면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또 문화원이 준비한 한식 홍보 행사에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타민족 참가자들이 바닥에 앉아 비빔밥을 먹게 하는 것은 전형적인 ‘전시행정’의 한 단면으로, 공무원들이 나서서 한인들의 얼굴을 깎아내리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공무원이 어려운 처지의 한인들의 사정을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서는 자세가 어떤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예도 있다. 올초 주목을 받은 캘리포니아내 한인 재소자들 대상 편지와 사랑의 선물 보내기 운동은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담당 영사가 관할 지역 교도소 내 한인 재소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만나 현황을 파악하며 그들의 딱한 사정을 듣고 편지를 교환하는 노력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재외공관이면서도 LA 총영사관으로부터는, 당시 어떤 대처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의에, 관할지역 교도소 내 수감 한인 재소자의 현황 통계는 있지만 공개할 수는 없다는 말만 돌아왔었다. 한인들의 어려움을 내일처럼 여기고 있느냐 아니냐 하는 자세의 차이가 극명히 드러내주는 예다.
공관을 총괄하는 총영사의 자세도 중요하다. 부임 1년6개월째인 LA 총영사가 그동안 관할 지역에서 도움이 필요한 한인들에게 다가가 ‘스킨십’을 하면서 발 벗고 나섰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관의 울타리에 둘러쳐져 ‘권위’만 세우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그게 교황으로부터 배워야 할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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