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공화당 존 베이너 연방 하원의장의 전격적인 조기사퇴 발표에 대한 당내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티파티를 중심으로 한 강경보수파에선 “중대한 승리다…드디어 리더십 세대교체의 기회가 왔다”는 환호가 터져 나왔고 실용적 주류에선 “공화당 치욕의 날이다…미치광이들의 승리다”는 개탄이 흘러나왔다.
‘베이너의 가장 행복한 순간’ ‘워싱턴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 미디어들의 표제가 베이너의 자의 반 타의 반 사임을 초래한 현 당내 계파 간 역학관계를 단적으로 표현해준다. “사임발표 기자회견에서의 베이너는 마치 감옥에서 막 석방된 것처럼 보였다” “그는 너무 기쁜 나머지 ‘얼마나 멋진 날인가’ 노래를 흥얼거릴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이런 해방감은 그의 후임자가 직면할 어려움과 비례한다…”
형식상으로는 전격 사퇴인 베이너의 퇴장은 워싱턴 인사이더들에겐 예견되어온 사실상 강경파에 의한 퇴출이다. 2010년 티파티 득세로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의 수장으로 등극했으면서도 그는 오랫동안 이들 극단적 강경보수파의 타겟이 되어 왔다. 보수신념이 달라서가 아니다. 보수정책을 실현시키는 전략의 차이다. ‘타협과 협상’으로 목표를 이루려는 베이너의 전통적 정치를 ‘굴복과 결탁’으로 비난하는 티파티 ‘반군들’은 민주당에 맞서 보다 공격적인 투쟁을 요구해 왔다.
247명 공화당 하원의원 중 불과 40여명의 소수이면서도 ‘미치광이들(crazies)’로 불릴 만큼 막무가내 강경파인 이들의 요구는 번번이 베이너의 협상 발목을 잡아왔다. 2011년엔 오바마 대통령과의 예산 ‘대타협’ 협상을 좌절시켰고, 2013년엔 수십차례 하원 표결로도 성공 못 시킨 오바마케어 폐지를 재시도하며 16일간의 정부폐쇄를 감행했고, 이번에도 낙태지지 단체의 기금중단을 요구하며 또 다시 정부폐쇄를 위협해 왔다.
베이너 자신의 책임도 적지 않았다. 대안 없는 극단으로 진을 빼는 반군들의 위협에 정면대응 대신 소심한(혹은 비겁한) 후퇴를 택했다. 그중 하나가 이민개혁안이다.
2014년 초 공화당은 ‘반대 아닌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이라며 베이너 자신이 국경단속과 서류미비자 신분합법화를 담은 원칙까지 공개하며 추진을 발표했던 이민개혁은 그 자신이 티파티 진영의 위협에 굴복하는 바람에 그대로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베이너가 포기하지 않고 하원 민주당과 손잡고 ‘역사적’ 이민개혁안을 통과시켰더라면 의장직 퇴출은 조금 앞당겨졌을지 몰라도 공화당의 미래는 훨씬 밝아졌을 것이다.
강경파는 입법 아닌 투쟁을 위해 워싱턴에 입성한 사람들처럼 타협정치를 혐오한다. 그러나 필리버스터를 할 수 있는 상원 민주당의원들이 건재하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민주당 대통령이 백악관을 차지하고 있는 이상 공화당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그것이 현 정치의 현실이라고 베이너 등 당 지도부가 아무리 강조해도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보수원칙 최우선”을 고집한다.
강경파들은 반박한다 : “지난해 우린 표밭에 ‘상원을 달라, 그러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상원을 갖고도 달라진 게 없다. 2010년엔 ‘하원을 달라, 그러면 달라질 것’이라고 했었다. 그때도 달라진 게 없었다…지도부는 표밭에 대한 공약 이행보다는 책임공방과 규정만 우려한다. 지금처럼 사용하지 못한다면 양원을 장악했다는 파워가 무슨 소용이냐?”
보수여론의 72%도 베이너 하원의장과 미치 맥코넬 상원 공화당 대표의 리더십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원내 강경파를 넘어 표밭에 만연한 보수의 불만은 베이너 침몰로 만족할 기세가 아니다. 이미 “다음 타겟은 맥코넬”로 공언하는가 하면 대선주자인 바비 진달은 그의 사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베이너 퇴출을 계기로 득의만만해진 극우강경파의 보이스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의미다. 케빈 맥카시가 후임 의장에 선출 되든, 고사 중인 트레이 가우디가 원내대표에 추대되든, 새 지도부 역시 강경파의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면서 민주당과의 타협이 불가피한 현실을 체감할 새 지도부와 계속 벼랑 끝 전략을 불사할 반군들과의 불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자신을 몰아내려는 불신임 투표가 추진되자 싸우기보다는 사퇴를 택한 베이너의 결정이 그래도 잠정적 평화는 가져왔다. 어제 상·하원이 각각 임시예산안을 통과시켜 강경파가 위협했던 정부폐쇄는 일단 막은 것이다. 베이너 퇴장의 단기적 효과다. 또 의장직에서 물러나는 10월말까지 강경파 위협에서 자유로워진 베이너가 민주당과 협력하여 부채상한선 인상과 수출입은행 재인가, 고속도로 기금 등 유보된 법안들을 통과시킬 수 있다면 ‘비생산적 의회’에 고마운 ‘이별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장기적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이번 임시예산안은 12월11일로 만료된다. 정부폐쇄 위협이 되살아나면서 워싱턴이 소용돌이 칠 ‘최악의 12월’에 대한 경고도 이미 나왔다. 의회 강경파의 득세는 그렇지 않아도 정치 무경험 아웃사이더들에 휘둘리고 있는 공화 대선필드를 더욱 불안하게 흔들 것이라는 우려도 대두되었다.
베이너는 자신의 사퇴가 “공화당 단합의 계기가 되기 원한다”고 했으나 그럴 기미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성찰의 계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 공화당의 최우선 과제는 통치인가? 아니면 선명한 보수이념의 실현인가? - 어느 쪽이든 내분을 끝내고 공화당의 방향이 확실해지면 유권자들의 선택도 훨씬 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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