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기만 하던 여름이 지났다. 여름 동안 정신과 의사는 졸아서는 안된다. 조울증 환자의 재발이 많고, 우울증 환자의 자살위험이 높고, 성 도착증 환자도 흔해지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보다 화창한 봄이나 생기발랄한 여름에 자살이 많은 이유는 지구의 회전운동으로 인한 생체시계와 호르몬의 변화인 듯싶고, 조울증 재발, 성 도착증 발생빈도가 많은 것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양이 비교적 높아지기 때문이다.
몇 달 전 한국 어느 중견작가의 표절시비가 있었다. 문득 환자 한 분이 생각난다.
“글을 더 이상 쓸 수가 없어요.”
조울증과 강박증을 가지고 있던 40대 중반 남자의 말이다. 그는 조증 시기에는 잠도 자지 않고 글을 썼으나 우울증이 오면 글자 한자도 안 썼다. 그가 의사를 찾았을 때는 조증 상태인 것 같은데 글을 쓸 수 없다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인지…”
“두렵고 무서워서 그럽니다.”
그는 6개월 전 표절에 대한 신문기사를 읽었다. 당시에는 그냥 지나쳤는데 시간이 갈수록 자꾸 떠올라 글 쓰는데 지장을 주었다. 일주일 전부터는 손이 떨려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혹시 자기가 쓴 문장들이 어느 누가 예전에 썼던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정신적으론 조증상태여서 글을 쓰고 싶은 열정이 불같은 데 강박증세가 이를 가로막은 케이스였다. 강박증은 상식적으로 어긋나는 생각이나 행동이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되지 않아 계속 반복하게 되어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는 정신질환이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거의 없다. 20세기 초 프로이드 선생은 오래 전부터 학자들 사이에 돌아다니던 무의식에 대한 추측들을 체계적으로 종합하고 그에 이름을 붙여 무의식의 개념을 만들었고 더 나아가 정신분석이론을 발표하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실은 새로운 게 아니었다. 예전부터 지식인들은 ‘나’라는 개체와 주위 환경과의 관계가 시간과 공간을 의식하는 차이를 나타낼 거라 생각했는데 아인슈타인이 이를 수학적, 물리적, 생리적 실증으로 증명하여 집대성한 것뿐이다.
글쓰기도 매 한가지다. 좋은 글을 쓰려면 다른 사람들의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남들이 쓴 문장을 읽고, 분석하여 아이디어를 얻은 다음, 거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여 자기만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1920년대 이탈리아 의사 자코모 리촐라티는 우연한 기회에 한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의 행동을 따라하는 것을 관찰하고 그 원숭이 뇌에 전극을 넣어 실험했더니 뇌의 일정한 영역의 활동이 증가해 있음을 발견하고 후에 이를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라 이름 지었다. 그는 같은 영장류인 인간도 타인을 모방하는 신경세포가 존재할 거라 믿었다.
그 후 MRI 촬영을 통해 운동과 관련된 인간의 전두엽 밑부분, 다양한 감각들을 조절하는 두정엽 안쪽 부분, 다양한 감정들을 조절하는 뇌섬(Insula) 앞부분에 있는 신경세포들이 타인의 행동과 감정을 따라 하거나 관찰할 때 매우 활성화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거울뇌세포가 모방에만 관계하는 줄 알았지만 지금은 공감과 언어, 인지활동까지 조절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거울 뇌세포가 많으므로 인간은 가장 사회적인 동물로 평가된다.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 모방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다 보면 주위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모방하고 표절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타인의 어느 작품에 엄청 집중하게 되면 그게 타인의 작품이란 기억은 희미해지고 마치 자신의 것으로 가미될 수도 있다. 한편 건전한 모방은 창조의 초석이다. 이름난 과학자, 문학가, 예술가들은 거울세포가 잘 활성화해 남의 생각이나 작품을 아주 교묘하게 자신의 것으로 이용하는 재능이 특출한 사람들인 듯싶다.
정신적, 정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은 일상의 세상사들을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 증상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강박증세를 가진 환자들은 특히 더 하다. 정신과의사는 세상 돌아가는 것도 잘 눈여겨보아 환자들이 물으면 적당한 대답을 해줄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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