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후보 경선 선두주자를 달리고 있다. 관심을 모으던 젊고 박력있는 후보 스캇 워커(위스콘신 주지사)는 어제 중도하차 했다. 선거자금 부족이 근본원인이겠지만 트럼프의 광풍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것도 큰 원인이다. 트럼프 때문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미국 선거판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주 열린 공화당 대통령후보 TV 토론(2차)은 도널드 트럼프가 수준미달의 후보라는 것을 잘 보여 주었다. 그는 리더십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정치 코미디언 같았다. 이런 사람이 미국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선두를 달린다는 것은 미국의 망신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엊그제 열린 에미상 시상식에서 사회자 앤디 샘버그가 정곡을 찌르는 조크를 던졌다. 트럼프 선풍은 왜 일어나고 있는가. 그가 너무나 비정상적인 끔찍한 소리를 해 미디어의 관심을 모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 세상에서는 정상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인기가 없다는 소리다.

트럼프 광풍에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매일 퍼붓는데도 자격미달이라고 비판하는 신문이나 방송이 없다. 계속 흥미있게 트럼프 뉴스를 다루니까 그의 인기가 날이 갈수록 상승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무슬림이며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이 아니라는 유권자 질문이 말썽이 되고 있지만 그 루머를 처음 퍼트리기 시작한 정치인이 바로 트럼프다.

트럼프는 나르시스트다. 나르시스트란 자기애(自己愛)가 지나쳐 자기중심에만 빠져있는 인간형을 말한다. 이 단어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물에 빠져 죽었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의 이름에서 따온 용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일종의 인격장애자로 취급한다. 이런 인격장애자가 지금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광풍이 이번 선거전에서 저지른 커다란 죄악이 있다. 그것은 인종혐오 바람(라티노와 무슬림)이다. 그의 유세 내용은 백인우월주의자나 KKK(쿠 클럭스 클랜)와 같은 인종차별 단체들이 외쳐온 구호와 너무나 비슷하다. 북한이 미국에 도전할 때 트럼프가 미국에 살고 있는 코리언들에 대해 뭐라고 언급할까. 코리언들은 미국의 적이라고 하지 않을까.

지금 미국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숙제는 빈부의 차이다. 서민경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들이 이같은 난제를 풀어줄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이민문제를 잘못 해결하여 모든 것이 꼬이는 것처럼 이슈를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광풍에 떠밀려 너도나도 이민문제를 중요의제로 취급하고 있다. 리더들이 미국사회의 분위기를 잘못 이끌고 있다. 심지어 미국이 이민의 나라임을 분명히 한 수정헌법 제14조 폐기 움직임까지 일어나고 있다. 이 모두가 도널드 트럼프가 일으킨 바람이다.

우리는 기존 정치인의 개혁을 외치면서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된 영화배우 슈워제네거가 무엇을 했는지 똑똑히 보았다.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르고 겉만 번지르르한 엉터리 정치인이라는 것이 드러났으며 주정부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퇴임했다. 트럼프의 인기 뒤에는 이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미국언론들이 용감하게 지적해야 할 때다. 트럼프 매니아의 본질을 파헤칠 때다. 트럼프 매니아의 본질은 무엇인가. 인기 영합주의다. 그것에 놀아나는 미국 언론도 꼴불견이다. 트럼프 광풍이 잠시 흥미를 끌다가 사라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길어져 미국선거전이 지루해 보이고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