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듣던 ‘스탕달 신드롬’을 나는 올해 두 번이나 경험했다. 한번은 지난 6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였고, 또 한번은 최근 뉴욕 출장길에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갔을 때였다.
다들 알고 있듯이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란 뛰어난 예술작품을 감상한 후 그 압도적인 감동에 의해 심장이 빨리 뛰고, 의식혼란과 격렬한 흥분, 어지럼증, 심하면 환각을 경험하는 현상을 말한다. ‘적과 흑’의 프랑스 작가 스탕달이 이탈리아 피렌체를 방문해 르네상스 미술품들을 감상하다가 무릎에 힘이 빠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경험한 후 이를 자기 책에 묘사했고, 후에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여행객들의 사례가 계속 보고되면서 ‘스탕달 증후군’이란 용어가 만들어졌다.
나의 경우, 의식의 혼란이나 환각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명작들 앞에 설 때마다 ‘이걸 이렇게 한번 보고 지나가야 하나’하는 안타까움과 ‘짧은 시간 동안 이 많은걸 어떻게 다 보나’하는 조급증, 그리고 ‘내가 여기 다시 올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가슴이 마구 뛰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리고 돌아온 후에도 허무감과 무력감, 다시 그곳에 가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지속되는 것으로 보아 이게 바로 스탕달 신드롬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이 병은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을 찾고 회복된다는 것이다.
프라도 미술관은 별 기대 없이 찾았다가 너무 많은 고전 명작들을 코앞에 대하면서 엄청난 흥분이 몰려온 경우였다. 마침 그때 스위스 바젤의 쿤스트뮤지엄에서 대여해온 피카소 명작 10점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이와 함께 스페인 거장들인 벨라스케즈와 고야의 수많은 작품들을 한꺼번에 다 보게 되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티치아노, 틴토레토, 카라바지오를 비롯해 조지 들 라투르, 라파엘, 루벤스 등 셀 수 없이 많은 15~19세기 작품들을 마주하면서 거의 울 뻔했던 것이다. 시간이 모자라 미친 듯이 뛰어다녔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
뉴욕에서는 그보다 조금 더 했던거 같다. 그리고 바로 보름전의 일이라 그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다. 뉴욕은 거의 30년만에 방문했으니 처음 간거나 다름없었다. 5박6일동안 메트로폴리탄, 모마(MoMA), 구겐하임, 휘트니, 뉴 갤러리, 9·11 뮤지엄을 완전히 풀로 돌았으니 상태가 어떠했겠는가. 사실은 지금도 제정신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함께 메트 뮤지엄에 갔던 사람의 말에 의하면 나는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이방 저방을 뛰어다니며 흥분해서 난리를 쳤다고 한다. 아침 10시 문 열자마자 들어가서 오후 5시30분에 나올 때까지 쉬지 않고 보느라 눈이 말라서 인공눈물을(다행히도 백안에 있었다) 넣으며 다녔다. 저녁 약속만 아니었다면 밤 9시 문 닫을 때까지 더 구경할 수 있었을텐데, 일곱시간 넘도록 뛰어다녔어도 못 보고 나온 전시실이 많아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메트 외에도 모마 현대미술관에도 좋은 작품이 많았고, 구겐하임과 휘트니에서도 꿈에 그리던 미술품들을 많이 보고 돌아왔다. 사실을 말하자면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미술관을 도는건 결코 권할 만한 일이 아니다. 과잉감상으로 뇌가 체한 느낌, 그리고 어디서 봤는지 모두 헷갈리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며칠전 나는 올해 세 번째 ‘스탕달 신드롬’을 겪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LA에 새로 세워진 ‘더 브로드’ 현대미술관이 개관을 앞두고 16일 미디어 프리뷰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런 증후군은 비슷하게도 찾아오지 않았다. 물론 세계적인 작가들의 유명한 작품이 250점이나 전시되고 있으니 볼 것이 많았다. 하지만 한번 주루룩 훑고 나오면서 이번에 깨달았다. 현대미술과 고전명작의 차이를.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아무리 오랫동안 들여다보아도,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깊은 감동을 주는 작품을 우리는 명화라고 부른다. 거기 담긴 장인의 숨결과 영혼이 세월을 넘어 전해오기 때문이다.
‘미술’을 떠나 ‘철학’의 범주로 들어가버린 콘템포러리 아트는 우리를 깨우고 도전하고 생각하게 하기는 할망정 다시 보고싶다는 열망을 갖게 하진 않는다. 작가의 손길이 아니라 개념으로 태어나는 건 그 개념을 이해하고 나면 더이상 시각예술품으로서의 매력을 잃게 되는 탓이다. 마크 로스코처럼 자꾸 보고 싶은 추상미술도 가끔 있지만, 진공청소기를 유리박스에 넣은 제프 쿤스의 ‘후버’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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