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남부여대(男負女戴)의 피난 행렬에 선 경험이 있다. 청주 주성 초등학교 6학년 때 북괴의 남침으로 서울이 3일 만에 함락된 후 괴뢰군이 청주지역으로 진격할 때였다. 여자들은 그릇이나 옷가지를 머리에 이고 남자들은 이불이나 쌀 같은 무거운 물건들을 등에 메고 산을 넘어 총소리가 안 들리는 시골을 찾아가는 긴 대열에 섞여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도착한 데가 어떤 초등학교 교실이었다. 교실이 잠자리가 되었고 모닥불을 피워 간신히 끓인 밥을 먹는 며칠 동안의 고생 끝에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석달 동안 인공천하를 경험했었다. 꽁보리밥도 먹기가 어려운 그 시절 ‘김일성장군 동장군’이라는 은어가 돌기도 했다.
시리아와 기타 나라들의 피난민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유럽으로 향하는데 뒤따르는 비극과 유럽 여러 나라들의 상반된 반응을 보면서 그때 생각이 났다.
오랫동안 시리아를 철권통치한 아버지에 이어 바샤르 알 아사드가 취임했을 때 안과의사로 영국에서 교육받은 경험도 있고 해서 그에게 거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기는커녕 무력으로 억압하는 아사드의 방침 때문에 내전이 악화해 이미 20만 이상의 생명이 희생되었을 뿐 아니라 수백만의 피난민들이 요르단, 터키, 레바논 등 이웃나라에 범람하게 되었다.
유엔 피난민 고등판무관(UNHCR) 실무자들이 피난민들에게 천막과 음식을 제공한다지만 내전이 계속되거나 종전이 되더라도 IS의 마수 아래 놓인 지역에 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절망 상태에서 피난민들은 탈출구를 찾게 된다. 사람 밀수꾼들에게 전 재산 아니면 친척들에게서 빌린 2천이나 3천 달러를 주고 터키 해변을 떠나는 고무보트에 몇십명씩 빈틈없이 몸을 맡겨 그리스 해안의 섬으로 향하는 수순을 밟는다.
국가 부도의 위기에 처한 그리스가 피난민들을 반기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인구 몇 백 명의 섬들에 피난민이 잠시라도 몇천명에 이르게 되면 우선 수세식 변소가 넘쳐나 관광수입으로 먹고 사는 주민들이 불평과 반감으로 들끓게 될 것이다. 반감이 심해지면 그리스 해군들이 민간복장을 한 채 해안선을 순시하다가 피난민들의 배를 보면 엔진을 박살내거나 휘발유통을 망가뜨려 표류하게 만드는 장면도 TV에 보도될 정도였다.
그런 과정에서 아마도 세살배기 아일란이 엄마와 다섯 살 짜리 형과 함께 익사하게 되어 해변으로 휩쓸려 왔을 것이다. 세살짜리 희생자의 애처로운 모습이 담긴 사진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게 되었다. 그 사진과 더불어 시리아와 이라크 등지의 피난민들이 알바니아 등을 통해 헝가리를 거쳐 독일로 향하는 것을 부다페스트 철도역에 몰아넣거나 철조망을 쳐서 아예 헝가리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보수 정부방침 때문에 매일 세계뉴스의 탑을 장식하더니 독일의 엥겔라 메르켈 총리가 독일에서는 금년도 80만의 피난민들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를 한다.
SNS로 실시간에 모든 것이 알려지는 데는 피난민들도 예외가 아니라서 더 많은 피난민들이 적어도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 사람 밀수꾼들을 찾아 죽음을 무릅쓴 유럽행을 하게 될 것이다. 유럽연합(EU)에서 이미 이탈리아, 그리스와 헝가리에 와 있는 도피처 신청민 12만명중 8만6천명을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을 위시한 비교적 큰 나라들에 정착시키고 영국에서도 20만명을 받아들이고 미국도 거들겠다고 했지만 문자 그대로 ‘새 발의 피’ 정도나 될까 말까다. 그리고 어떤 칼럼니스트의 지적대로 터키 해변에서 죽은 세살짜리나 시리아의 알레포에서 죽은 세살짜리와의 차이가 무엇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피난민 자격 또는 도피처를 신청하는 요건이 전쟁과 같은 정치적 피해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도 모순이다.
경제적 피난민은 망명처를 제공받을 수 없어 나이지리아와 수단을 거쳐 독일로 도착했다 해도 강제 송환된다. 그러나 하루에도 40만명의 아동들이 기근으로 죽어간다는 통계 앞에서 더 나은 삶을 찾아 이동하는 경제적 ‘피난민’의 이슈가 심각한 일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반 이민정서가 피난민들 아니면 이주자들이 테러에 가담할 수 있는 개연성 관련 안보 경각심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전쟁과 기근이 없는 세상, 언제나 오려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