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가치가 계속 치솟는다. 원화 환율이 1,200원대를 돌파했다. 곧 1,250원대까지 오를 전망이란다. 기독교 신자인 한 친지는 달러가 ‘하나님께 신탁된 돈’이라서 가치가 크다며, 무신론자들도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없지만 호주머니 안에는 모시고 있다고 농담했다. 달러에 쓰인 “In God We Trust(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문구가 이를 뒷받침한단다.
그런데 그 ‘4자 문구’가 달러에서 튀어나와 경찰과 함께 거리를 달리고 있다. 돈 속의 좁쌀 글씨가 아닌 대문짝만한 스티커를 붙인 순찰차들이 전국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주로 ‘바이블 벨트’로 불리는 남부 보수지역의 소도시들이다.
경찰이 달러강세를 자랑하는 게 아니다. 달러처럼 경찰에게도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라는 요즘의 서글픈 세태를 반영한다.
지난 주 북부 텍사스의 칠드레스(인구 6,100명) 경찰국이 모든 순찰차량에 그 4자 문구 스티커를 부착했다. 차량 뒤쪽 범퍼를 거의 다 덮을 만큼 큰 글씨이다. 그에 앞서 역시 텍사스의 케비빌 경찰국, 미주리의 뉴턴 카운티 셰리프국, 루이지애나의 센트럴 경찰국, 플로리다의 월튼 카운티 셰리프국 등 수십 개 경찰기관이 비슷한 스티커를 붙였다.
유행처럼 번지는 경찰의 이 같은 풍속도는 최근 전국에서 잇따른 경찰관 피살사건에서 촉발됐다. 특히 2주일 전 휴스턴 외곽의 한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던 셰리프 대원이 등 뒤에서 15발의 총격을 받고 비명횡사한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에서 경찰관 8명이 직무수행 중 피살됐다. 이들 중 4명은 10일 내에 집중적으로 희생됐다.
경찰국들이 ‘하나님 순찰차’로 무장하자 ‘종교로부터의 자유 재단(FFRF)’과 미국시민 자유연맹(ACLU)이 제동을 걸었다. 정부기관인 경찰국이 특정 종교를 옹호하는 행위는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되며, 국민의 세금을 쓰는 경찰국이 서비스 대상을 모든 국민이 아닌 기독교인들만으로 제한하는 모양새는 적절치 않다며 스티커를 즉각 떼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해당 경찰국장들은 “In God We Trust”가 기독교와 관계없이 연방의회가 제정한 미 국민의 ‘공식 모토’라고 반박하고 최근 일련의 총격사건들로 국민들의 애국심 고양과 경찰관들의 사기 진작이 절실한 요즘 이 보다 더 적절한 모토는 없다고 주장한다. 스티커 제작 비용도 세금이 아닌 독지가들의 기부금이나 경찰국장의 호주머니 돈으로 채웠단다.
이 4자 문구는 1957년 연방 상하원의 합동결의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서명에 따라 미국의 공식 ‘국민표어(National Motto)’로 확정됐다. 같은 해 달러(지폐)에 이 문구가 삽입되기 시작했다(동전에는 1864년부터). 그 후 비종교인들이 정교분리 원칙을 들어 여러 번 제소했지만 법원은 번번이 이 문구가 종교와 무관한 국가 표어임을 재확인했다.
그렇긴 해도 이 4자 문구가 하필 이 시점에 새삼 이슈가 되고 있는 건 여상치 않다. 표면적으로는 경관들의 잇따른 피살사건으로 촉발됐다지만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 내 눈엔 보수와 진보의 새로운 대결 구도로 보인다. 워싱턴 주를 비롯한 여러 주에서 동성결혼 저지에 실패한 보수가 지난 6월 연방대법원의 합법판결로 KO 당한 후 권토중래를 꾀하는 듯하다.
신앙의 양심을 이유로 동성결혼 증명서 발급을 거부해 투옥됐던 켄터키의 시골 카운티 서기가 지난 8일 닷새 만에 출옥하자 공화당 대선후보인 마이크 허카비와 테드 크루즈가 달려와 그녀를 보수영웅으로 치켜세웠다. 켄터키 주의회는 상하원 본회의장에 이미 부착돼 있는 4자 문구 스티커에 더해 13개 소위원회 회의실 모두에도 이를 붙이기로 결의했다.
여러 번 재탕된 “In God We Trust” 이슈를 놓고 또 티격태격하는 미국인들의 진보-보수 대립은 상대방을 ‘좌빨 종북’과 ‘꼴통 보수’로 몰아세우며 피나게 치고받는 한국의 진보-보수 대결과 판이하다. 하지만 공천 받으려고 줄서기에 혈안인 한국 정치인들과 표를 위해 ‘하나님 순찰차’에 잽싸게 무임승차하는 미국 정치인들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