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어떻게 올 것인가. 꽤나 해묵은 질문 같다. 제시되는 답도 그렇다. 산뜻한, 고무적인 이야기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혼돈과 심연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마지못해, 그것도 쉰 목소리로 들려주는 것처럼 들린다.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평화적인 민주통일이다. 소프트랜딩 방식의 통일이다. 북한이 중국식 경제개혁에 나서면서 결국 핵을 포기한다. 동시에 한국에 대해 점진적으로 개방정책을 취하면서 남과 북은 한걸음씩 통일을 향해 나아간다. 그러나 현실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외교관 출신의 한 전문가의 침울한 진단이다.
개혁은 꿈도 꾸지 않는다. 그러면서 계속 도발만 일삼는다. “통치행위를 아마도 온라인 전쟁 게임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김정은에 대해 내려지는 평가다.
시장개혁은 의식의 밑바닥에 잠재돼있는 인민의 분노만 촉발시킬 뿐이다.
그러니 오직 탄압만이 체제유지의 방안이다. 그 체제는 현실감각이 결여된 소년독재자가 이끄는, ‘플랜 B’가 없는 체제다.
때문에 내려지는 결론은 하드랜딩에 따른 통일 밖에 결국 없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하드랜딩, 그러니까 북한체제 붕괴에 따른 통일에는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북한 붕괴 후 옵션의 하나는 중국이 전격적으로 개입, 북한전역을 통제하고 나선 경우다. 북한은 중국에 예속된다.
그 사태를 한국과 미국은 결코 방치할 수 없다. 결국 북한붕괴는 지정학적 대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거다.
옵션 투는 한국이 북한 땅에 진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중국은 이를 미국이 직접 북한통제에 나선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그 사태 역시 중국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다. 제2의 6.25 가능성이 큰 것이다.
제 3의 옵션은 북한 내 무장집단끼리 내전에 돌입하는 경우다. 그동안 단지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은 사태 정도로만 치부돼 왔다. 그러나 장성택에서 현영철에 이르기까지 잇단 북한 내 고위 간부 처형과 관련해 구체성이 상당히 높은 시나리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왜 군(軍)과 당(黨)과 정(政)의 70여명 고위간부들이 잇달아 처형됐나. “평양 내부에는 파당이 형성됐고 그 파당간의 심각한 권력투쟁 결과가 잇단 고위간부 처형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디플로매트지의 분석이다.
워싱턴포스트지도 비슷한 지적을 하고 있다. 북한의 엘리트들은 엄청난 물질적 혜택을 대가로 수령에 충성을 해왔다. 이 같은 초특급 대우를 받아온 엘리트들은 모두 합쳐 최소 200에서 최대 5000명을 넘지 않았다.
그 숫자가 크게 늘었다. 엘리트로 통칭되는 사람 수는 100만에 가깝고20~30만의 선택된 사람들은 뉴욕의 부유층 못지않은 삶을 살고 있다. 이에 기존의 선택된 사람들이 반발, 더 많은 특혜를 요구하고 있으나 피폐한 북한의 경제가 그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있다.
게다가 해외정책, 다시 말해 대 중국정책과 선군(先軍)정책 노선을 둘러싸고 엘리트계층 내에서 이견이 노정, 파당을 형성하게 됐다. 그 뿌리는 2010년 말 김정은 후계 옹립 때로 거슬러 올라가고 장성택 처형으로 이른바 종파주의는 결국 표면으로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이런 정황에서 김정일 암살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게 현 상황이다.
따라서 체제붕괴는 무력집단 간의 내전이라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경제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파산상태를 맞고 있는 체제가 김정은 체제다. 그 북한의 붕괴는 어떤 형태로든지 동북아 안정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암울한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진 것은 다름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에 대해 부쩍말이 많아졌다. 그리고 청와대와 외교,통일부의 시선은 온통 중국과 통일외교에 쏠려있다는 말이 들려와서다. 9.3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참가, 시진핑과 회담을 하고 돌아온 후 특히 그렇다는 이야기다.
핵문제든 인권문제 등 그 가장 빠른 방법은 평화통일이라고 대통령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내년에라도’라는 표현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어세가 보통 강한 것이 아니다. 상당히 자신에 차 있다.
그런 점에서 평화통일과 관련해 시진핑으로부터 뭔가 언질을 받아낸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고무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어떻게(How)에 대한 언급이 없다. 말만 무성할 뿐 비전도 전략제시도 없다. ‘통일은 대박’이란 논조와 비슷하다. 그저 희망성의 원론만 제시하고 있고 각론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어딘가가 공허하게도 들린다.
통일은 어디서 시작되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다. 그 신념을 바탕으로 한 굳건한 안보의식이다. 중국과의 전략적 논의도 논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미동맹 강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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