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작】
[봄날, 사랑 / 남호진]
첨벙첨벙,
여울을 건너오는 물의 종아리,
세찬 저 물의 종아리들, 종아리들
속의, 또 끓어오르는 물,
그 위로,
곡선 위로,
넘출거리는 어깨들의, 부드러운
그 어깨 위로,
눈꺼풀을 쓸어내리는,
오, 눈부신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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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1. 오랫동안 인연과 인연의 그늘에 볼모잡힌 죄로, 지도에도 없는 사람의 유형지를 떠돌아다녔다. 사람의 시간을 아파하는 내가 그럼에도 사람의 ‘봄날’을 그러모아 다시 또 당신에게 간다. 안의 당신이 밖의 당신보다 오늘은 더 그립다.
2. 사랑하는 가족들, 보고싶은 친구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아득함에도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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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월남국수 먹는 저녁 /권태은]
바람이 쌀쌀하게 불어
뜨거운 국물이 먹고 싶은 날
불러낼 이 아무도 없어
더욱 스산하면
혼자서 국수를 먹으러 간다
꽃샘추위로 핼쑥해진 이국의 하늘엔
크루아상 같은 구름들이 걸려 있고
골목 끝 허름한 식당엔
나처럼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
제 나라의 말들을 실어 나르며
국수를 판다
그들도 떠나올 줄 알았을까
언젠가 옛집에서
누군가 불러주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 빠진 그릇에 가득
따스한 국물을 담아준다
정든 것들 멀리 떠나와
세상의 다른 곳에 살림을 차리고
갈비뼈 아래 묻어둔 그리움
더욱 사무칠 때
내 서러움 곁에 앉히고
이국의 채소 가득한
저녁을 먹는다
떠나오던 날 내 눈물처럼
국물이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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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상 소감]
내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 일을 웬일인지 계속하고 있다.
삶의 다양한 순간 속에서 가슴안에 고이는 것들을 애초의 느낌대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일이 늘 어렵다. 때로는 양수처럼 터져 나오는 감정의 분출이 있는데 그것들은 여름날 저녁의 반딧불이 처럼 아주 잠시 빛나다가 사라지곤 해서 어쩔 수 없이 삶의 덧없음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그 속에서 시의 토대가 될 단상들을 건지곤 하니 모든 것이 아주 사라지는 것은 또한 아닐 것이다. 여기저기 널려있던 글조각들을 꺼내어 여러번 고치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다가 겨우 마감일에야 원고를 보낼 수 있었는데 뜻밖에 좋은 소식을 듣게 되어 참 많이 기쁘고 행복하다.
여전히 미완성인 글을 좋게 보아주신 심사위원께 깊은 감사드리며 지면을 마련해주신 한국일보에게 특히 감사드린다.
미국에 와 어느덧 팔 년을 살았다. 생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일로 가득하지만 비 개인 산뜻한 여름날 오후엔 삶은 잠시 아사치마처럼 부드럽고 가벼워진다. 이곳에서 만나는 자연, 그리고 내가 누렸던 크고 작은 인연들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하고 싶다.
【가작】
[겨울나무의 노래 /신현숙]
겨울 숲에서
찬바람에 흔들리며 옷을 벗는 나무를 본다
가을 울음소리가
땅바닥에 끌리는게 싫어 참는 고독한 자유여
빛살이 소리없이 울고 있을때
꽃샘추위를 견뎌내는 비옥한 땅심의 화살표
겹겹이 그어지는 나이테는
땅속 뿌리까지 맑아지기 위한 감동의 현 으로
겨울은 솟는 젖줄 생명력을 품는다
불씨를 가슴에 안은
나무는
기쁘게 수분을 정리하고
싱싱했던 여름에의 그리움일랑 접는다
새 생명, 내일의 초록 숲을 위하여
겨울의 끝자락에 세우려고
한정없이 낮아지는 시간속으로 들어간다
숲속 길
수북이 쌓인 눈위에 선명한 차 바뀌자국
그윽한 햇살의 숨결이
겨울나무의
깊이 들이쉬는 숨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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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상 소감]
뜨겁게 그려보는 아름다운 시작. 마음속 한켠에 항상 있었던 갈망을 필사, 수첩에 메모, 신문에서 스크랩하며 기다렸던 긴 시간들이 미주 한국일보사에서 보내온 e-mail을 받은 오늘로서 어느 것 하나 쉽게 내어주지 않는 산에서 귀한 약초를 캐고자하는 첫발을 내어딛는 날이 되었습니다.
입상소식을 들었을 때 나에게도 이런 기쁜 날이 있구나 가슴 뭉클하던 감동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해줍니다. 더듬더듬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는 시상을 떠올리고자 헤매던 때의 무력함은 봄비가, 여름비로, 또 가을, 겨울비로… 어느 날, 차가운 빗물은 적셔지는 땅심에 비옥함을 쌓아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나를 잃어버린 시간의 흔적에서 나를 찾아낸 젖줄이었습니다.
내 꽃밭은 엉성하지만 순간에서 영원을 보고싶은 길을 걷는 것에 망설이지 않을 것입니다.
부족한 제 글에 더 정진하라고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들, 한국일보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가끔씩 같이 공부했던 문우들, 선생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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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가을엔 가을도 떠난다 / 김주평]
세상에 찾아온 모든 것
어느 하나 홀로되지 않는 것 없으니
나무도 혼자가 된다
무심히 불어온 한 줄기 바람에
마지막 잎새를 떨구어 버리고
홀로된 나무
그 나무가 운다
떠나지 못해 나무는 서러워 운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것
어느 하나 잠들지 않는 것 없으니
풀잎도 잠이든다
소리없이 찾아온 찬서리에
한가닥 푸름마저 잃어버리고
몸을 눞힌 풀잎
그 풀잎이 잠이든다
떠나지 못해 풀잎은 잠들어 꿈을 꾼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어느 하나 떠나지 않는 것 없으니
떠나온 그곳으로 모두가 돌아간다.
땅에서 온 것은 땅으로
바다에서 온 것은 바다로
하늘에서 온 것은 하늘로
제각기 자신이 온 곳을 향해 길을 떠난다
떠나지 못해 울던 나무도
떠나지 못해 잠들던 풀잎도
기어이 자신의 짐을 챙겨 떠나버린다
우리의 인생도 떠나고
가을마저 떠나버린
붉은 노을 내려앉은
세월의 벌판에 눈이 내린다
흰눈이 쌓이고 어둠이 깊어가면
남아있던 존재의 작은 흔적마저
어느새 사라져버린다
가을엔 가을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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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상 소감]
해가 바뀌고 계절은 다시 돌아왔지만 그 가을에 떠난 그것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돌아오기는커녕 아마도 자신이 이곳에 존재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떠난 것들은 돌아오지 말아야 합니다. 남아있는 것들은 떠난 것들에 대한 기억과 그것이 남기고 간 조각들로 퍼즐놀이 하듯 세상의 모습을 맞추어 가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떠난 것들이 남겨놓은 기억과 조각들로 퍼즐을 맞추어가며 숨겨진 세상의 모습을 조금씩 들어내기 작업을 하는 퍼즐놀이의 장인입니다.
나 또한 적지 않은 세월을 사는 동안 내게 찾아왔던 그것들이 나를 떠나면서 남기고 간 기억과 그 부스러기들을 모아 언제부터인가 퍼즐놀이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맞추어진 퍼즐의 작은 부분을 처음 세상에 내어 놓았는데 뜻밖에 누군가가 그 모습을 알아봐 주셨습니다.
그분들께 정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퍼즐을 맞추어 나가 조금 더 만들어진 세상의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어른이 된 후 수십년동안 받아본 상이라고는 와이프가 대충 차려준 밥상이 전부였는데 한국일보에서 마련한 신춘문예라는 커다란 밥상위에 내 숟가락이 놓여있다는 것은 나에게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영광을 그간 대충 차린 밥상이라도 쉼 없이 내어준 와이프, 그리고 그 밥상을 항상 함께 한 나의 딸, 슬기와 나누고 싶습니다.
나에게 세상이라는 퍼즐판을 내어주신 하나님께 진정 감사드립니다.
【장려상】
[젖음에 대하여 3-너에게/박애린]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창밖에 뭐라도 내리는 날에는 떠나지 않는 생각
함박눈에 허리를 굽히는 굴뚝 연기나
빗방울을 털어내는 새의 날개는 언제나
마른 시간 쪽으로 방향을 잡아내는데
무슨 말을 하든 변하지 않을 내일도
잃어버린 말들은 찌푸린 미간 속에 잠겨
나는 커피 한 모금으로 쓰린 속을 적시며
애수에 젖고 상념에 젖고 그리움에도 젖는 습관에 젖어갈 텐데
삐걱대는 탁자 발밑에 슬쩍 고여두거나
자꾸만 말려 올라가는 종이 위에 꾹 눌러놓을
그렇게 바삭하게 마른 말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땅으로 내리는 건 무엇이든 젖은 것들뿐
나는 너에게 말 한마디 보내고 싶어 새벽 눈을 뜨고
축축한 창 너머를 자꾸만 흘깃거리는데
네가 보일 것도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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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상소감]
“장마질 때 널 낳아서 그런갑다.” 툭하면 울어대던 어린 저를 두고 어머니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입니다. 그렇게 가슴에 흐르는 강 하나 두고 살았습니다. 슬프고 행복한 눈물들은 모두 강으로 모여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아 젖을 주고 밥을 지어 먹였습니다. 이제 그 강물이 시를 노래합니다. 붉고 푸른 고통과 환희의 물결들이 어우러져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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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회 문예공모전 시 부문 심사평】
한혜영 <시인>
해마다 두드러지게 보였던 ‘어머니’나 ‘고향’에 대한 시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만큼 소재가 다양해진 셈이지만, 시의 품격을 갖춘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예선을 통과한 작품으로는 남호진 님의 ‘봄날, 사랑’, 권태은 님의 ‘월남국수를 먹는 저녁’, 신현숙 님의 ‘겨울나무의 노래’, 박애린 님의 ‘젖음에 대하여’, 김주평 님의 ‘가을엔 가을도 떠난다’ 등이었다.
당선작부터 논의를 했는데 남호진 님의 ‘봄날, 사랑’이 결정되었다. 대상을 바라보는 깊은 시선과 감각, 리듬감 등이 장점이었다. ‘첫눈’도 주목을 받았으나 그보다는 경쾌하게 읽히는 ‘봄날, 사랑’이 좋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가작으로는 권태은 님의 ‘월남국수를 먹는 저녁’과 신현숙 님의 ‘겨울나무의 노래’를 선정했다. ‘월남국수를 먹는 저녁’은 평정심을 잘 유지하고 있다. 쓸쓸한 노래임에도 감정 관리를 매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나무의 노래’는 겨울과 꽃샘추위를 견디는 나무를 인생에 비유한 것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고독한 자유여’와 같은, 낡은 표현이 거슬린다. 차라리 없애는 편이 나을 뻔했다.
장려상으로는 박애린 님의 ‘젖음에 대하여 3-너에게’와 김주평 님의 ‘가을엔 가을도 떠난다’에게 돌아갔다.
박애린 님의 경우 또 다른 작품인 ‘혓바늘’을 눈여겨보았으나 사유가 얕아보였고, 그보다는 안정적으로 시를 운영한 ‘젖음에 대하여 3-너에게’를 선택했다. 아직은 사물을 보는 시선이 좁지만 앞으로 기대가 된다. 김주평의 ‘가을엔 가을도 떠난다’는 인생을 자연에 비유한 솜씨가 좋고 나름대로 깊이가 있다. 하지만 연마다 반복되는 2행이 다소 걸린다. 왜 그랬는지는 짐작이 가지만, 되도록 짧은 언어로 운영해야 하는 시의 특성상 고민할 부분이다.
이것으로 수상자 전원에게 축하를 보내며, 이밖에 예선을 통과했으나 당선권에 들지 못한 김진규 님과 제레미 한 님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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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
올해, 응모작 편수는 비록 전년보다 적었지만 작품의 질에 있어서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어차피 여러 편 가운데 한편을 골라야 하므로 발군의 작품이 눈에 띄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심사를 하는 사람의 보람이 있다.
올해는 바로 그런 작품이 있어서 다행이다. 요즘 한국의 시단은 커다란 오류에 빠져 있다. 까닭 없이 시가 길어지고 어렵기만 해 진다는 것. 그것은 결코 자랑이 아니다. 누가 그런 시를 읽는다 하겠는가. 독자 없는 시가 어찌 존재 가치가 있다 하겠는가.
그것은 진정성이 부족해서 그렇다. 내용은 빈약한데 포장만 그럴 듯하게 하려고 하니 그렇다. 이에 비하여 미국 시단은 아직은 건강하다. 긴급성이 있고 박진감도 있다. 하므로 응분의 감동이 거기에는 있게 마련이다.
당선작으로 뽑은「봄날, 사랑」(남호진)은 매우 탁월하고 특별한 작품이며 앞날의 가능성이 충분한 작품이다. 함께 응모한 「첫눈」도 좋다. 무엇보다도 이 분의 작품에는 자기다운 시선과 어법이 있다.
길지 않은 형식 안에 할 말을 충분히 담아내는 능력이 있다. 적어도 이분은 사물 너머의 본질을 보아낼 줄 알고, 인간의 복잡 미묘한 감정과 생각을 언어로 바꿀 줄 안다. 시에서 이보다 더 좋은 능력은 없다.
가작 「월남국수를 먹는 저녁」(권태은)은 현장감 있는 소재와 자분자분 이어가는 시적 행간이 매우 고운 작품이다. 시적 긴장을 더하면 더욱 감동적인 시를 써낼 가능성을 지녔다.
가작 「겨울나무의 노래」(신현숙)는 인생과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으며 함께 응모한「시간의 흔적」도 좋았다.
장려상 「젖음에 대하여1―분갈이」(박애린)는 아담하면서도 마음의 깊이가 읽어지는 생활시이다. 어법도 충분히 활달하다.
장려상 「가을엔 가을도 떠난다」(김주평)는 인생에 자연에 대한 명료한 감상을 담아내고 있어 설득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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