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캠페인은 벌써 1년 가까이 뉴스의 조명을 받아왔지만 그래도 전통적으로 미국 대선시즌의 개막을 알리는 것은 노동절 연휴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 - 그래서 무언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시점, 특히 금년 민주당과 민주당의 ‘대세 후보’ 힐러리 클린턴에겐 그런 출발선이 되어줄 가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양당 경선의 첫 투표일까지는 5개월도 채 안 남았으나 결과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지난 석 달 동안 판도가 너무 달라졌다. 뉴스 비수기인 여름 미디어에 흥행대박을 터뜨려준 주인공은 공화 필드를 압도한 도널드 트럼프였지만 민주당의 여름도 계속 소용돌이에 휘말려왔다. 대관식을 기다리던 ‘필연적’ 선두주자가 갑작스런 포위공격에 추락위기로 내몰린 것이다.
예상 못한 방향으로 치닫는 판세에 양당 지도부가 모두 당황하고 있긴 하지만 고민의 본질은 서로 다르다. 공화당은 시들했던 표밭에서 뜨거운 열기를 끌어내는 선두주자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난감하고, 민주당은 플랜 B가 없는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유일한’ 후보가 표밭에서 버림받을까 안절부절 걱정한다.
민주당의 고민은 2주 전 민주당전국위원회의 하계회의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제기된 몇 가지 질문에서 민주당 대선 판세가 읽혀진다 :힐러리는 재도약할 수 있을까? 국무장관 시절 공무에 개인 이메일을 사용하고 개인 이메일 사용 논란에 미숙한 대처로 신뢰성 위기에 봉착한 후보가 표밭의 열정을 끌어낼 수 있을까? 민주당에겐 힐러리를 “좋아하는 것”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인가?바이든은 출마할 것인가? 너무 늦었나?
돌풍을 일으킨 버니 샌더스의 최종승리는 거의 불가능한 현실에서 그가 경선에서 탈락할 경우 그에게 열광해온 리버럴 표밭은 힐러리에게 지지를 약속할 수 있을까?공화당이 내던진 이민표밭을 확실하게 자산화 할 수 있는 장기 전략을 민주당은 갖고 있는가?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질수록 압박을 받는 것은 힐러리 진영이다. ‘불만의 여름’을 끝내고 가을의 대반전을 이룰 새로운 작전이 시급하다. 경선 뿐 아니라 본선에서도 강력한 후보라고 지지자들, 기부가들, 당 지도부를 안심시킬 수 있는 획기적 전략이어야 한다.
‘달라진 힐러리’ 작전이 가동되긴 했다. 이메일 논란에 대해 처음으로 “미안하다. 실수였다. 내 책임이다”라고 솔직하게 사과했고(비록 하루 전 다른 인터뷰에선 사과 필요 없다고 뻗대긴 했지만), 언론기피증에서 벗어나 TV인터뷰를 부쩍 늘렸으며 유권자들에게 ‘유머와 진심’으로 다가가는 감성 캠페인을 이어가고 있다. 사과 직후 반대자들의 야유와 지지자들의 안도가 동시에 나왔으니 효과는 아직 좀 더 지켜보아야 할 듯 싶다.
이제 그만 이메일 논란의 페이지를 덮고 중산층 살리기·소득불평등 해소·반값 등록금 등 민생공약으로 선거를 프레임하려는 힐러리의 가을전략은 두 차례 시험대에 서게 된다. 10월13일의 민주당 대선후보 첫 토론회와 10월22일 연방하원의 청문회다. 토론의 달인으로 꼽히는 샌더스와 바이든(출마를 결정한다면)이 펄펄 나를 토론회, 적대적 공화 의원들이 칼을 가는 청문회, 둘 다 캠페인 참모들이 준비하고 연출한대로 움직일 무대가 아니어서 순발력 약한 힐러리에겐 쉽지 않은 테스트다.
무적의 절대지위에선 밀려났지만 힐러리의 입지는 여전히 탄탄하다. 아직은 부동의 선두주자다. 이메일 논란으로 침몰하지만 않는다면 무난히 승리하여 민주당 후보로 지명될 것이다.
2008년의 패자 힐러리가 승자 오바마에게서 확실하게 배운 게 있다면 대선은 인기경연에 앞서 숫자의 게임이라는 사실이다. 힐러리 진영은 벌써 내년 전당대회를 겨냥한 대의원 확보에 착수, 현재 지지약속을 받은 수퍼 대의원의 숫자가 400명을 넘어섰다. 지명에 필요한 전체 대의원 숫자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정치적 방화벽 쌓기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샌더스에 밀리는 것은 백인 지역 뉴햄프셔와 아이오와까지다. 흑인과 이민 등 비백인 유권자들이 좌우하는 지역으로 나가면 힐러리 지지가 압도적이다. 마이너리티 민주당 유권자의 60% 이상이 힐러리 표밭이다. 현재 전국 여론조사의 힐러리 평균 지지도는 48%로 샌더스보다 25포인트 앞서 있다. 민주당 표밭에서의 호감도는 71%로 절대적이다.
그러나 전체표밭의 호감도는 45%로 하락했다. 본선경쟁력이 흔들리고 있음을 뜻할 수 있다. 절대 표를 주지 않을 공화당 유권자는 제쳐놓는다 해도 문제는 이메일 논란에 대해 공화당에 가까운 무소속 유권자들의 시각이다. 그래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공화당 못지않게, 대안 없이 힐러리만 바라보고 가야할 민주당의 발걸음도 전혀 가볍지 못하다.
정치예측 베팅사이트인 프리딕트와이즈닷컴의 현재 지표는 민주당에 청신호를 보내고 있다. 힐러리의 경선승리 가능성 70%에 더해 민주당의 2016년 대선승리 가능성이 57%로 공화당의 43%보다 높다. 공화당 지도부를 더 서늘케 하는 것은 CNN 정치예측마켓의 숫자다. 9일 오후 현재 트럼프의 공화후보 가능성이 20%로 젭 부시의 18%보다 한발 앞서고 있다.
아직은 모든 숫자가 민주당과 힐러리의 가을에 응원을 보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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