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의 여름이 ‘기후변화’ 순례여행을 끝내면서 순조롭게 마무리 되고 있다. 에어포스 원을 타고 서부의 사막에서 멕시코만을 거쳐 북극해까지 1만4,000마일을 날아다닌 열흘 동안 그가 전념한 것은 자신의 주요 유산(legacy)으로 택한 마지막 과제 기후변화 대응책이다.
8월24일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청정에너지 서밋 회의에선 태양열 에너지산업 지원을 강조하며 에너지 효율성 증진을 위한 플랜을 밝혔고, 27일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난 발생 10주년을 기해 들른 뉴올리언스에선 단순한 복구가 아닌 이상적 도시로 만드는 재건을 강조하면서 지구온난화로 인한 잦은 태풍과 해수면 상승에 직면할 해안도시의 철저한 대비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번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31일부터 알래스카에서의 마지막 사흘이었다. 대선 경합주도 아니고 인구 74만명도 채 안 되는 한적한 주에 현직 대통령이 사흘씩이나 머무는 일은 이례적이지만 알래스카가 바로 기후변화의 생생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다른 지역보다 온난화가 2배나 빨리 진행 중인 알래스카는 “지금, 바로 눈앞에서” 사라지는 빙하와 녹아내리는 동토, 침수위기에 직면한 마을 등 기후변화의 두려운 결과를 목격할 수 있는 곳이다.
북극 외교장관회의 스피치에서부터 주 정치인 및 주민과의 대화, 빙하 하이킹, 보트 투어, 극한체험 생존훈련, 북극권의 어촌 방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정을 바쁘게 소화한 오바마에겐 사흘도 부족해 보였다. 또 워싱턴의 양극화와 온갖 국제위기에 짓눌리며 사무실을 벗어나지 못했던 ‘도시남자’ 대통령은 양복과 타이 대신 선글래스와 하이킹부츠의 한결 가벼워진 차림으로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일과 재미를 동시에 만끽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해 “기후변화에 더 공격적으로, 더 신속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모든 국가가 가뭄과 홍수, 해수면 상승, 살 곳 잃은 난민의 증가, 이에 따른 갈등의 심화 등 정말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기후변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지도자는 나라를 이끌 자격이 없다”고 비판한 오바마의 스피치는 직설적이고 강력했다. 위기에 처한 북극의 아름다운 풍광도 이 같은 메시지 전달에 극적인 배경을 제공하는 최상의 스테이지였다. 그러나 기후변화와의 전쟁 전망은 여전히 밝아 보이지 않는다.
기온상승을 섭씨 2도 이하로 제한하기위해 각국의 온실개스 배출을 감축하자는 국제 기후회의는 지난 10여년 계속 열렸지만 구속력 있는 협약 체결을 위한 합의엔 번번이 실패해 왔다. 오는 12월 파리에서 다시 유엔 기후회의가 열린다. 온실개스 배출 1,2위 국가인 중국과 미국이 앞장 서 탄소규제를 강화하지 않으면 이번에도 새로운 기후협약 체결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동안의 기후변화 전쟁에서 잃어버린 미국의 리더십을 되찾기 위한 노력은 오바마 집권이후 꾸준히 계속되어 왔다. 자동차 연비기준 강화로 탄소 배출을 줄이게 했고 유사한 기준을 항공기에도 적용하려고 추진하는 등 한 걸음씩 내딛어오다가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오바마의 투쟁은 한달전 8월초 ‘청정전력계획(Clean Power Plan)’을 발표하면서 전면전으로 접어들었다. 온난화의 주범인 석탄발전소의 온실개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32% 감축시키는 조처로 미 사상 가장 강력한 기후변화 대책이다.
대통령에게 전권이 있는 행정명령이며 2007년 보수적 연방대법원이 “온실개스는 공해”라고 판결한 사안이지만 즉각 거센 반발과 뜨거운 논쟁이 들끓었다. 관련업계와 공화당이 “경제성장 발목 잡는 무리한 환경정책”이라며 공격을 가했고 석탄의존도 높은 20여개 주가 법정투쟁을 다짐했다.
기적적으로 이 플랜이 법적·정치적 도전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주요사항 대부분은 오바마 이임 후에 시행될 것이다. 차기 대통령이 어떻게 처리할 지도 불확실하다. 또 오바마의 노력에 힘입어 설사 2015년 파리 회의에서 새로운 기후협약이 체결된다 해도 공화당 의회가 이를 비준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그렇다고 이 같은 정치적 현실이 기후변화 대처의 필요성을 무효화시키지는 않는다. 문제는 시간이다. 국내와 국제사회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뒤얽히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보다 결정적 증거가 필요하다고 논쟁을 벌이는 동안 다시 몇 년이, 몇 십 년이 지나갈 것이다.
이번 기후변화 순례여행을 떠나기 전 특별제작한 동영상을 통해 오바마는 이렇게 말했다 :
“알래스카는 금세기 우리가 직면한 최대 도전의 하나인 기후변화 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위험을 알리는 우리의 자명종이다. 그 자명종이 지금 울리고 있다. 내가 대통령인 이상 미국은 이 위험에 너무 늦지 않게 대처하도록 세계를 이끌어 갈 것이다”
다행히 여론은 오바마의 우려를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여름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72%는 “지구온난화의 증거가 확실하다”고 답했으며 3분의 2가 석탄발전소의 탄소규제 강화 명령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관심은 여전히 낮다. 기후변화를 우려한다는 응답이 3명중 1명에 불과하다.
“기후변화에선 ‘너무 늦었다’는 말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경고를 실감하는 날이 오지 않도록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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