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의사가 한 여대생의 정신과 진료를 의뢰해왔다. 환자는 왼쪽 손목과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처음 몇 번은 상처가 깊지 않아 간단히 치료한 뒤 귀가시켰으나 비슷한 상태로 자주 응급실을 방문하자 혹시 자살기도가 아닌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랬습니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이렇게 긁게 되거든요. 조절이 안되요.”
“혹시 자살을 ….” “아니죠, 그건 절대 아녜요.”
엄하지만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시안 여성이었다. 고등학교까지 줄곧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여 친구들도 많았다. 술, 마약, 남자친구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일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비밀이 있었다. 9학년때부터 면도날이나 페이퍼 클립의 뾰족한 끝으로 손과 팔에 피가 날 정도로 상처를 입히는 습관이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다. 특히 스트레스가 심한 날은 욕실에 들어가 팔이나 손목에 상처를 내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행히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들이 눈치 채기 전에 이상한 버릇을 그만 두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와서 술, 마약, 섹스가 넘쳐나는 대학생활에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다시 몸에 상처 내는 행위를 끄집어낸 것이었다.
두가지 정신과적, 사회적 문제행동이 지난 10년 동안 크게 늘어났다. 청소년들의 자해행위와 성인들의 인터넷 도박 행위다. 위의 케이스는 청소년 자해행위이다.
사춘기는 급격한 신체적 변화, 그에 따르지 못하는 정서적 발달,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소속감,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충동감이 나타나는 시기다. 밤하늘의 별만 봐도 눈물이 글썽거리는 낭만의 시기이기도 하다.
자해행위는 이런 사춘기에 제일 많고, 나이 들며 점점 줄어든다. 남들이 하니까 한번 해보고 싶은 호기심과 청소년기 스트레스로 인해 주로 시작하기 때문에 문제 학생, 모범생, 부잣집 자식, 가난한 집 자식 할 것 없이 모든 계층에서 생긴다. 여자애들이 더 많지만 상당수의 남자애들도 자해행위를 보인다. 누구한테 주목받고 싶거나 자살 하려고 하는 경우는 아주 적다. 스트레스로 생기는 정서적 아픔을 신체적 고통으로 대치하면 얼마동안은 마음이 평온해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몇 번 해보고 그만 둔다. 상처를 내보니 너무 아프고, 피를 보니 무서워서다. 그러나 가정환경과 학교생활에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10대들은 계속한다. 특히 정서적 불안정과 대인관계에 장애를 보이는 경계성 인격성향을 가진 청소년은 분노를 이기지 못해 충동적으로 몸에 상처를 낸다. 성적 학대를 받은 청소년도 자신을 벌주기 위해 자해행위를 한다.
신체적 아픔과 정서적 기쁨을 주도하는 뇌 신경회로들은 거의 중첩되어 있다. 그래서 가벼운 아픔을 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자해행위는 대부분 비밀리에 행해지므로 정확한 발생빈도는 모르지만 일년에 미 청소년 100명 중 8명 정도로 발표되고 있다.
소셜네트웍, TV 등 미디어 영향 때문인지 청소년 자해행위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놀라운 일은 자해가 문제행동이 아니라 일종의 유행으로 여기는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해를 계속하면 자신의 의지를 조절할 수 없는 무력감이 커져 자신감, 자존감이 떨어지고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 뇌의 신경회로에도 내성이 생겨 더 심한 상처를 내야 마음이 편안해지므로 응급치료를 요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치료는 주로 인지행동치료의 하나인 변증법적 행동치료가 우선이다. 간단히 말하면, 있는 그대로의 고통, 갈등, 스트레스 등을 받아들이는 자기수용능력과 잘못된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정 중에 일어나는 모순을 정-반-합의 변증론적 이론을 통해 환자와 치유자가 서로 노력하여 해결점을 찾고, 실제 행동에 옮기는 치료방법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환자에게 스트레스 극복 기술을 가르쳐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타인과의 인간관계를 향상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그 외에 개인상담, 지지그룹 참가 그리고 아주 심한 케이스에는 항 우울제와 Naltrexon 같은 항 기쁨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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