젭 부시는 부시 집안 자식 중 가장 똑똑한 인물로 꼽힌다. 그러나 요즘 하는 짓을 보면 이는 더 이상 사실이 아닌 것 같다. 그는 캠페인 초기부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그 때 알았다면 2003년 이라크를 쳐들어갔겠느냐”는 질문에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보였다. 형 부시가 저지른 최대 실책의 하나로 꼽히고 있는 이라크 침공에 대한 질문은 당연히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문제였다. 대답 또한 분명했다. 제 정신이 있다면 “아니요”가 정답이다. 그런 질문에 대해 우물쭈물 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출마 준비가 안 돼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젭은 지난 주 다시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했다. 불법체류자가 미국에서 아이를 낳아 그 아이를 근거로 시민권을 따는 소위 ‘앵커 베이비’(anchor baby)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 단어 사용을 놓고 라티노들이 반발하자 그는 “이는 사실 아시안들에 더 많이 해당하는 문제”라며 화살을 피하려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시안 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2008년과 2012년 대선에서 아시안들은 62%와 73% 비율로 민주당을 지지했다. 같은 해 라티노는 67%와 71%가 민주당에 표를 줬다. 2012년 선거에서는 아시안의 민주당 지지 비율이 라티노를 능가한 셈이다. 젭 부시는 아예 아시안 표는 포기하기로 작심한 것일까.
부시의 이번 발언은 트럼프 돌풍에 밀려 영 지지율이 뜨지 않자 초조한 나머지 벌어진 자충수로 보인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 트럼프는 23~25%의 지지율로 공화당 대선 후보 중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젭은 그 1/3에도 못 미치는 7% 선이다. 트럼프는 힐러리와의 본선 경쟁에서도 44% 대 40%으로 바짝 뒤를 쫓고 있다.
물론 지금의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돌출 발언으로 당내 보수파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기는 하지만 정책이란 게 모두 현실성이 없고 발언 자체가 너무 격에 떨어져 유권자들이 막상 표를 찍어주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그럼에도 그가 현재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일부 공화당 유권자들의 수준이 얼마나 한심한가를 보여준다.
트럼프 돌풍으로 벌어지고 있는 공화당의 난맥상을 바라보며 즐거워야 할 민주당이지만 속은 별로 편하지 않다. 민주당 후보 지명이 확실시 됐던 힐러리가 자꾸 자기 발을 도끼로 찍으며 지지도를 깎아 먹고 있기 때문이다. 힐러리는 국무장관 재직 시절 개인 이메일과 서버를 사용한 것과 관련 “강제 제출 명령(subpoena)을 받은 적이 없다” “자발적으로 서버를 제출했다” “이메일에는 국가 기밀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거기다 “서버의 이메일 삭제를 지시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천 같은 것으로 닦았다는 말인가요”라며 농담 같지 않은 농담으로 넘어가려 하는가 하면 이메일 스캔들을 우파의 음모로 몰고 가려 하기도 했다. 지금 백악관 주인이 부시라면 몰라도 오바마고 이메일 서버를 조사하고 있는 법무장관은 흑인 여성 로레타 린치다. 이들이 우파의 일부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이들 발언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후에도 힐러리는 깨끗한 사과 대신 변호사적 궤변으로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 해 더 큰 분노를 사고 있다. 이와 함께 원래부터 “정직하고 믿을 수 있다”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던 힐러리에 대한 신뢰는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이라크 전의 영웅 데이빗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은 불륜녀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국가 기밀을 누설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유죄를 시인했는데 힐러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조지 W 부시는 다른 것은 몰라도 라티노 표 없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았다. 지금 공화당 후보들은 어떻게 하면 이민자 표를 깎아먹을까 골몰하고 있는 것 같다. 반면 조금만 정직했더라면 당내 지명은 물론 백악관 입성이 손아귀에 들어왔던 힐러리는 타고난 거짓말 습관으로 제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다. 이번 미 대선은 못난이들의 “누가 더 못 났나” 경쟁으로 추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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