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대선판의 반(反)이민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불법체류자 사면 반대’에서 ‘자진추방’ 촉구로 치달아온 이민논쟁은 대선 때마다 공화당 경선에서 뜨겁게 펼쳐졌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는 “합법이민 환영”을 전제로 삼아왔다. 더 이상은 아니다. 서류미비자 1,100만명을 모조리 추방하고 영주권 발행 감축 등 합법이민도 제한하며 이른바 ‘앵커 베이비’를 양산하는 자동 시민권제도마저 폐지하자는 극단적 주장이 2016년 공화당 경선의 넘버원 토픽으로 떠올랐다.
결국엔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한 후 공화당의 상처로 남을 이번 ‘이민전쟁’은 도널드 트럼프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공화당에서 가장 앞장 서 이민방향을 주도하는 보이스가 불행하게도 트럼프다. 멕시칸 이민을 범죄자 집단으로 시사하는 막말 유세로 선두주자에 오른 후보답게 그가 지난주 발표한 이민정책은 이민사회 뿐 아니라 공화당 지도부마저 아연케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에선 남녀노소 서류미비자 전원을 검거해 미국에서 쫓아낸 후 ‘좋은 사람들’만 일부 골라 되돌아 올 수 있도록 할 것이며, 헌법을 바꿔 미국에서 태어난 서류미비 이민자의 자녀에게도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주는 제도를 폐지할 것이고, 미국과 멕시코 국경 2,000마일 전체에 장벽을 쌓고 그 경비를 멕시코 정부에 내도록 강요할 것이며…“이민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인종차별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너무 비인도적이고 너무 잔인한 정책”이라고 진보언론 뉴욕타임스가 비판했고 “공화당을 추방 정당으로 만들고 있다”며 보수언론 월스트릿저널이 개탄했다.
비도덕적일 뿐 아니라 비현실적이다. 가가호호 수색해 1,100만명을 집에서 끌어내 강제추방 시키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설사 시도한다 해도 최소한 20년의 세월과 5,000억달러의 예산이 필요한 엄청난 과제가 될 것이다. 자동 시민권을 폐지시키기 위한 헌법개정? 그건 “멕시코 정부에 장벽설치 비용을 내라는 억지보다 더 실현하기 힘들 것”이라고 한 진보 해설가는 단언한다.
원색적인 독설과 몰지각한 허세를 캠페인의 자산으로 활용해온 트럼프는 그렇다 치자. 이민사회를 슬프게 하는 것은 여지없이 드러난 공화당의 반 이민 민낯이다. 지난 한 주만에 24%에서 32%로 뛰어 오른 트럼프의 공화표밭 지지율만이 아니다. 더 기막힌 것은 그 지지율 상승세에 편승하려는 공화후보들의 줄서기다.
전·현직 주지사와 연방 상원의원들이 대거 포진해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하다는 2016년 공화대선 후보군 중 절반이 넘는 9명이 트럼프의 반 이민 전선에 가담을 공언했다. 논리적 비판을 가해 ‘대선 논쟁’다운 최소한의 품위를 지켜야할 후보들이 외국인 혐오증 노출을 개의치 않는 표밭의 극우 시류에 다투어 편승하고 있는 것이다.
‘이민의 남편’ 젭 부시와 ‘이민의 아들’ 마르코 루비오의 반대도 트럼프의 기세에 눌려 말랑하기 그지없다. 특히 소극적 대응으로 주춤거리다 엉뚱하게 발목을 잡힌 부시의 처신은 보기에도 민망하다. 지난주 한 인터뷰에서 자동시민권 폐지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힌 부시는 (보수표밭을 의식해서였는지) 이 제도를 악용해 임신한 여성들이 미국에 와 아기를 낳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 같은 ‘앵커 베이비’를 방지할 법집행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었다.
미국에서 출생한 아이를 닻(anchor)으로 삼아 미국에 정착하는 이민에 대한 경멸을 담은 ‘앵커 베이비’라는 용어를 ‘친이민의 기수’인 부시가 사용하자 히스패닉계가 즉각 반발했고 아차, 수습에 나선 부시가 진화는커녕 서툴게 대응하면서 오히려 ‘앵커 베이비 딜레마’를 빚어낸 것이다. 자신이 말한 ‘앵커 베이비’는 아시아인들이 주로 악용하는 원정출산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명, 히스패닉계는 달래지도 못한 채 아시안아메리칸 커뮤니티의 거센 공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그저 단순한 실수로 인정하고 넘어갔으면 될 일을 어설픈 변명으로 사태를 악화시키는 부시의 습관성 상황대처 실수는 지난 5월 이라크전쟁 관련 답변 해프닝에서 거론되었던 대선후보 자질에 대한 의구심을 다시 증폭시키고 있다. ‘이민’은 그에겐 가장 자신 있어야 할 최강의 이슈다. 주류에선 ‘짝퉁 공화당’으로 몰리는 트럼프를 압도할만한, ‘이민의 나라’ 대선전의 선두권 주자다운 답변이 나왔어야 했다.
트럼프의 이민정책에선 서류미비자 전원 추방도, 자동 시민권 폐지도,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벌이고 있는 이민전쟁의 후유증은 확실하게 그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공화당 지도부가 두려워 해온 대선 악몽의 현실화다.
2012년 대선에서 미트 롬니가 버락 오바마에게 참패당한 후 공화당전국위원회는 전문가들에게 패인분석을 의뢰했다. 분석보고서가 지적한 주요 패인은 이민표밭이었다. 히스패닉 유권자의 70%, 아시안 유권자의 73%가 오바마에게 표를 던졌다. 그러나 차기대선 승리의 비결로 친이민 정책을 제시한 보고서의 권유는 소귀에 경 읽기로 그친 듯하다. “2012년에 자진추방을 내세워 패했던 우리가 2016년엔 자동 시민권 폐지와 강제 전원추방을 외치고 있다”는 한 공화전략가의 지적이 지금의 공화당이 가는 길을 말해주고 있다.
이민표밭이 외면하면 대선승리가 불가능한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그리고 이민자들에게 ‘이민’은 이념적 선택의 이슈가 아니다. 나와 내가족의 생존 자체가 걸린 문제라는 것을 얼마나 더 강조해야 하는 것일까. 그 절대전제를 공화당도 인정하는 날이 오기는 할까 - 지금으로선 확신이 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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