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더스의 여름’이 미 전국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북동부 뉴햄프셔에서 서부의 오리건과 LA에 이르기 까지 그의 유세 집회는 곳곳마다 구름처럼 몰려든 청중으로 넘쳐나고 있다. 대관식을 기다리던 힐러리 진영이 긴장하고, 2016년 대선판의 톱스타 도널드 트럼프가 질투를 감추지 않을 정도다. 열흘 전 주말 연인원 10만을 동원했던 그의 캠페인은 지난 주말 2016년 양당의 대선 주자들이 총출동한 아이오와에서도 최대 인파를 끌어 모았고 이어서 이번 주 초 시카고와 리노에서도 엄청난 관중의 뜨거운 환호를 이끌어 냈다.
불과 석달전 전국무대에선 무명이나 다름없던 언더독으로 민주당 경선에 출마하며 언론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던 버니 샌더스의 놀라운 ‘마법’에 대해 갖가지 시각들이 제시되고 있다 :
“부유층의 기부를 받는 만큼 표밭의 민심을 얻는 데는 실패하면서 스캔들에 휘말린 힐러리 클린턴 취약점의 산물”이라는 민주당 내 자체분석에도 일리가 있고 “빌 클린턴 시절부터 시작된 중도노선에 반발해온 리버럴의 영혼을 사로잡은 웅변”이라는 진보진영의 기대, “좌파 민주당의 진짜 모습”이라는 보수의 경고, “기존정치에 실망하고 지배계층에 분노한 표밭의 반란”이라는 학자들의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구름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가 꿈꾸는 세상이었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와는 차이가 있다. ‘트럼프 돌풍’이 표밭의 불만을 막말로 폭발시켜 대리만족을 안겨주고 있다면 ‘샌더스 현상’은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유권자들의 기대를 대변하고 있다. 헝클어진 백발의 그가 쉬고 갈라진 음성으로 외치는 ‘정치혁명’의 필요성이 사람들의 가슴에 가 닿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캠페인은 억만장자 계층에 명확한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당신들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우리는 한편에서 미국의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당신들에게 막대한 절세혜택을 주지 않을 것이다. 미국엔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빈곤의 어려움이 너무 많은데 당신들이 수십억 달러 이득을 조세도피 천국 케이먼군도에 숨길 수 있도록 우리는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새로 창출되는 소득의 99%를 상위 1%가 차지하는 오늘의 경제를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가?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가? 경제적 불평등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지난 40여년 한결같이 말과 행동으로 추진해온 그의 정치적 사명이며 신념인 메시지는 한마디로 정리된다 : 불평등이 사라지는 세상이다. 보통사람 모두가 꿈꾸는 세상이다.
“상위권 혜택을 위해 조작된 현 경제시스템을 바로 잡아 중산층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세금이다. 이젠 탐욕스런 월스트릿 사람들에게 ‘당신들도 정당한 세금을 내야한다’고 통보해야 할 때다…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이 나라는 소수의 억만장자가 아닌 모든 사람의 것이다”
“버니! 버니! 버니!”를 연호하며 열광하는 청중들에게 그 같은 세상은 그저 오지 않는다고 그는 강조했다. “우리가 절실하게 원하는 미국의 변화는 대통령 선출 이상의 큰 과제다. 전국에서 풀뿌리 정치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물론, 어느 대통령도 여러분이 꿈꾸는 변화를 실현시키지 못할 것이다”
오바마케어에서 한 발 더 나가 전국민 국가의료보험을 주창하고 대형은행을 해체하는 금융규제 강화를 촉구하며 큰 정부를 당당하게 옹호하는 ‘사회주의자’를 자처하지만 샌더스의 모든 정책이 과격한 것은 아니다. 샌더스의 가장 큰 호소력은 중산층 활성화에 대한 열정이다. 미성년자녀의 대학교육 부양에 힘겨워하고, 성년자녀의 경제적 고군분투를 지켜보느라 불안한 중산층에게 샌더스의 불평등 이슈는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하다.
사실 ‘중산층’은 양당후보 모두의 공통이슈다. 너도나도 중산층을 위한 투사를 자처한다. 그런데 왜 샌더스인가? “그는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LA집회의 한 청중은 말했다. 대부분의 후보들처럼 대통령이 되기 위해 불평등 해소를 외치는 게 아니라 평등한 사회의 실현을 위해 대통령이 되기 원하는 후보라는 뜻이다.
그가 역설하는 정경유착의 돈선거와 그들이 조작해낸 경제체제, 그로 인한 소득 불평등의 현상에 공감하며 기립박수를 보내는 청중들 모두가 그의 ‘사회주의적’ 해결책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다. 4선 시장, 8선 연방하원의원, 2선 상원의원을 역임한 이 73세의 정치가는 수 없이 치른 선거에서 단 한 번도 네거티브 캠페인을 벌인 적이 없다.
“난 억만장자 계층의 어젠다를 믿지 않는다. 그들의 돈을 원치 않는다”라는 샌더스의 다짐이 진심인 것을 사람들은 믿는다. 상당수 후보들이 억만장자 큰손들의 돈을 받는 것과 달리 그의 캠페인은 풀뿌리운동을 통한 소액기부자들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7월 중순까지 1인당 평균 31달러를 보낸 소액기부자가 35만명에 이른다.
샌더스 돌풍은 유세장의 열기와 함께 숫자로도 가시화되었다. 뉴햄프셔 한 여론조사에선 44% 대 37%로 힐러리를 눌렀고 아이오와 주 총무처 비공식조사에서도 49% 대 45%로 힐러리를 리드했다. “스마트하고 박식하고 전투적인” 샌더스에겐 가을의 민주당 후보토론회도 자신의 진솔한 열정을 전국에 소개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버니 샌더스 대통령’은 여전히 가능성 제로의 가설일 뿐이다. 미 선거에서 ‘사회주의자’라는 타이틀은 생존 가능한 입장이 아니다. 그래도 샌더스를 향한 보통사람들의 뜨거운 지지는 한 동안 식지 않을 것이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는 그의 진지한 노력에서 희망을 얻기는 힘들겠지만 위안은 충분히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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