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인 메리 토드 링컨(Mary Todd Lincoln)
<조태환>
링컨의 부인 메리 토드 링컨(Mary Todd Lincoln)은 켄터키 주의 렉싱턴에서 부유한 명문 은행가의 7남매 중 넷 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여섯 살 때 어머니가 사망하였고, 여덟 살 때 아버지는 재혼하였는데 계모가 아홉 명을 또 낳아서 형제자매가 모두 열여섯 명이나 되었다. 당시에 받을 수 있는 좋은 교육을 다 받아서 그녀는 불어가 유창하였고 문학을 공부한데다가 댄싱, 연극, 음악 등 다양한 취미도 있었다. 그녀는 말하자면 전형적인 남부귀족 숙녀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계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연유 때문이었던지 그녀는 전 주지사의 아들과 결혼해서 일리노이 주의 스프링필드에서 살고 있던 언니네 집으로 21세 때에 옮겨가 살고 있었다. 당시 링컨은 고향인 켄터키를 떠나 변호사가 되어 스프링필드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살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다 Whig당원이었다.
같은 도시에 스티브 더글라스(Steve Douglas)라는 변호사이며 민주당원이었던 사람이 메리를 따라다녔었다고 한다. 이 더글라스는 후일 쟁쟁한 연방 상원의원이 되었는데 당시 주하원에서 선출하던 연방상원 의원선거에서 링컨에게 승리하였으나 얼마 후 민주당후보로 나선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화당 후보 링컨에게 패배한 인물이다. 링컨과는 일찍이 여러 가지로 악연이 있던 사람이다.
링컨은 첫 번 약혼했던 여성과 파혼하였으며 두 번째 연애하던 여자와도 헤어졌다가 메리를 만나 약혼을 했다가 헤어졌었는데 그 후 다시 만나 결혼하였다. 메리는 스물세 살이었고 링컨은 서른두 살의 노총각이었다.
메리는 젊어서부터 편두통(migraine headache)이 있었고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메리는 백악관 시절 마차사고가 나서 다친 적이 있었다. 우울증도 있어서 정서적으로 다소 불안정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메리는 부잣집 딸답게 낭비벽도 있어서 링컨과 가끔 불화도 있었던 듯하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백악관에 이사 오자 메리는 대통령의 권위와 위신을 위해 필요하다며 백악관 내.외부를 수리하고 china set를 새로 구입하였는데 이 지출은 백악관 예산을 훨씬 초과한 것이었다.
링컨은 “남북전쟁을 치루고 있는 나라에서 무슨 정신 빠진 사치이냐” 라고 화를 내었다고 하는데 국회는 백악관의 초과지출을 허가해 주었다고 한다. 당시의 워싱턴 정가가 동남부출신 정치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때인지라 남부출신인 새 대통령부부는 마음을 터놓고 어울리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메리는 남북전쟁 중 링컨과 미합중국 정책을 지지하여 꽃을 들고 군병원들을 찾아가 전상군인들을 위문하고 그들의 부모들에게 위문편지도 보내곤 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이복 남동생 한명은 남군의 군의관으로 종군하고 여러 명의 이복 남동생들이 남군으로 전사한데서 오는 개인적인 갈등도 있었을 것이다.
메리의 가정에 가장 충격적인 어려움을 주었던 것은 네 아들 중 세 명이 일찍이 사망한 일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아들은 네 살 때 폐병으로 죽었다. 셋째 아들은 링컨일가가 백악관에 옮겨 온 후 호열자로 죽었다. 셋째 아들이 병사한 후 메리는 정서적으로 이상한 증세를 보였던듯하다. 자폐증세가 나타나고 사람들을 기피하였다고 한다. 백악관 안에서 감정이 폭발하는 일들도 있었다고 한다.
역사가들 중에는 메리가 정신분열증(bi‐polar)이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백악관 시절 메리의 modiste(여성의 모자나 의상을 제조해주는 사람)이었던 (침모였다는 얘기도 있음) Elizabeth Keckley라는 여성이 메리와 친분이 두터워져서 대화도 많이 했던듯하고 백악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잘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흑인노예로 태어나 30년간 노예생활을 했었으나 마침내 자기 자신과 아들의 ‘자유인권’을 돈을 내고 사서 워싱턴의 사업가로 진출했던 사람이다. 그녀가 링컨이 암살된 지 3년 후인 1868년에 ‘Behind the Scenes in the Lincoln White House: Memoirs of an African‐American Seamstress’ 책을 출판했는데 그 책에 백악관의 막후 사생활이 많이 쓰여 있었다.
메리의 사생활과 일화 등에 대한 것도 공개 되었는데 Keckley는 그때까지 미국에서 그런 공개 관례가 없었던 탓에 사방에서 메리의 신임과 신뢰를 배신한 처사라고 비난을 받았으나 역사가들은 메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써 그 책을 쓰고 있다고 한다. 넷째 아들도 링컨암살 후에 열여덟 살에 폐병과 심장병으로 사망해서 큰아들 로버트(Robert)만이 노년이 될 때까지 활동하였다.
로버트는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법과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전쟁 중 징집이 되었어야할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이미 두 아들을 비명에 잃은 메리의 완강한 개입으로 군대에 가지 않고 있었는데 링컨이 “만일 로버트가 군대에 가서는 안 될 정도로 어머니에게 귀한 자식이라면 지금 군대에 나가있는 젊은이들도 그들의 어머니에게는 똑같이 귀한 아들들이다” 라고 화를 낸 후 북군총사령관 그랜트(Grant)장군에게 편지를 보내어 “로버트를 당장 입대시키라”고 지시해서 로버트는 대위로 임관되어 그랜트 장군의 부관으로 일하였고, 얼마 후 남북전쟁이 북군의 승리로 끝나자 남군사령관 Robert E. Lee장군이 서명한 항복조인식에도 참석하였다 한다.
로버트가 전쟁말기에 군대에 갔었고 그나마 전투에 참전할 가능성이 없는 총사령관의 부관으로 일했다는 이유로 다소 잡음이 있었다고 한다. 영국의 왕자들이 반드시 전투에 참여하는 전통이 있는 것처럼 미국의 대통령 아들들도 징병기피로 문제되었던 사람들은 별로 없었던 듯하다.
당시에는 대통령 미망인에게 연금이 없었다고 한다. 메리는 하원의원들에게 전사군인 미망인들이 연금을 받는 것처럼 자기도 전쟁미망인이므로 연금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였었다고 한다. 다소의 논쟁 끝에 미국 국회는 링컨이 암살된 후 5년째부터 메리에게 연금 3,000달러를 지급하도록 의결하였는데 2015년 돈으로 치면 5만6,000달러가 된다.
메리는 로버트와 막내아들을 데리고 시카고로 옮겨갔는데 막내가 곧 18세에 폐병과 심장병으로 또 사망했다. 큰아들 로버트는 University of Chicago의 법과대학에 나가면서 메리와 따로 살기 시작하였다.
메리는 유럽을 포함해서 여러 곳을 혼자서 여행하면서 돌아 다녔다고 한다. 한번은 플로리다에서 갑자기 시카고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로버트를 찾아와 “네가 생명이 위급하다는 영감이 들어서 왔다”고 얘기하며 기차를 타고 오는 중에 “어느 사람이 나를 독살하려고 했으며 방랑하는 유대인이 내 지갑을 훔쳐갔다가 도로 내주었다”고 말하였다. 젊은 나이 때부터 착실한 장로교인이었던 메리는 가끔 “영감을 얻는다” 라고 믿는 Spiritualist이기는 하였지만 이때는 정신장애가 심해졌던 것 같다. 도난을 염려해서 정부채권 5만6,000달러짜리를 속치마에 넣고 바늘로 꿰매고 다니는 등 이상증세가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다소의 재산과 연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빈궁해질까봐 걱정하였다고 한다. 메리는 남편이 사망한 후 검은 옷만 입고 다녔으면서도 새 옷을 사들이곤 하였다. 로버트는 메리가 집에서 불이 난 것으로 착각하고 유리창을 부수고 뛰어 나오는 등 증세가 심각해진 것으로 판단하고 정신병 의사의 진단을 거쳐 메리를 정신요양원에 입원시켰다. 요양원에 있는 동안 메리는 약재사에게 약을 요구하였는데 메리가 자살을 시도할 것임을 알아차린 약제사는 다른 가짜 약을 주었다고 한다.
메리는 요양소를 빠져나와 평소부터 잘 아는 유명한 부부변호사를 찾아가 로버트가 자신을 정신이상자로 몰아서 재산관리권을 빼앗고 정신병자 요양소에 강제입원을 기도하고 있어 구출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이 변호사들은 만일에 메리를 풀어주지 않으면 모든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로버트를 설득시켰다. 로버트와의 관계는 메리가 사망하기 전까지 좋아지지 않았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메리는 백내장이 악화되어 점차 실명이 되어가면서 자주 넘어졌고 마지막에는 언니네 집에서 얕은 발판사다리에 올라갔다가 넘어져서 척추를 상하였고 회복하지 못해서 63세를 일기로 한 많은 일생을 끝내고 스프링필드의 남편 묘소 옆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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