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이오가 가면 미국이 간다.(As Ohio goes, so goes the nation.)”- 대선 무렵이면 한두 번쯤 나오는 미 정계의 속설이다. 공화당 후보가 오하이오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민주당도 1900년 이후엔 존 F. 케네디 한 명 뿐이었다. 인종별·계층별 인구분포가 가장 중립적인 경합주 오하이오는 대선의 풍향계로 꼽혀 본선 후보에겐 1순위 공략지역이기도 하다.
2016년 대선의 첫 투표는 6개월 가까이 남았지만 오하이오는 이미 2016년이다. 지난주 첫 공화후보 토론회가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렸고 내년 여름 공화당 대선후보를 지명하는 전당대회도 같은 곳에서 개최된다. 그리고, 오하이오의 현직 주지사 존 케이식이 공화당 경선 후보로 출마했다.
17명 주자들이 북적대는 공화필드엔 현직 주지사만도 4명이나 되지만 출신 주에서 60%의 높은 지지율을 누리고 있는 주지사는 케이식 밖에 없다. 2010년 민주당 현직 주지사를 꺾고 당선된 후 지난해 재선에선 전체 88개 카운티 중 86개에서 승리하며 64% 득표로 압승을 거두었다.
63세의 중도보수 케이식은 7월21일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하며 16번째 주자로 막차를 탔다. 그런데, 그가 출마연설을 마칠 무렵,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선 도널드 트럼프가 린지 그레이엄의 전화번호를 공개하고 있었다. 무명후보나 다름없는 그에겐 절박했던 뉴스의 조명은 그렇게 트럼프 돌풍에 날아가고 말았다.
가뜩이나 늦게 출발해 바닥권에 머물다 도태될 것으로 어둡게 전망되었던 그에게 도약의 기회가 왔다. 자신의 홈그라운드에서 열리는 첫 후보 토론회였다. 10명으로 제한한 컷탈락 위기에 마음 졸이며 10위로 턱걸이 참석한 토론에서 그는 홈런을 날렸다. 토론 중엔 그의 주민들이 가장 뜨거운 환호로 응원을 보냈고 토론 후엔 미디어와 공화당 전략가들이 “대통령답게 보였다”며 예상외 선전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존 케이식, 젭 부시의 천둥을 훔치다”라는 기사에서 타임지는 “토론의 최대 승자 중 한명은 오하이오 주지사다…경제성장 메시지를 증명하는 업적과 풍부한 행정경험으로 자신의 ‘온정적 보수주의’ 브랜드를 설득력있게 홍보했고 소탈한 어법으로 상대를 무장해제 시켰다…활기가 넘쳤고 낙관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좌충우돌 트럼프 쇼의 와중에서 실수를 꺼려 소극적이었던 부시나, 맞붙으려다 본전도 못 건진 랜드 폴과 달리 케이식은 의연하게 트럼프를 다루었다. 분노한 민심을 대변한 트럼프의 역할은 인정했으나 그의 해결책엔 동의하지 않았고 선거기부를 과시하는 돈 자랑을 “나한테도 기부할래?”라는 조크로 틀어막으면서 트럼프를 때리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성숙한 태도를 보였다.
자녀가 동성애자라면…이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대답했다. 자신은 동성결혼 반대자이지만 게이친구의 결혼식엔 기꺼이 참석한다면서 “나와 생각이 다르다 해서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우리가 깊은 신앙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라고 답해 이날의 가장 뜨거운 환호를 이끌어 냈다.
공화당의 ‘공적1호’로 간주되는 오바마케어를 받아들여 메디케이드를 확대 실시한 자신의 정책은 주민을 위해 연방자금을 끌어올 기회를 선택한 결정이었다고 당당히 옹호했다. “그 돈이면 수감 중인 1만명 정신질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 난 그들에게 사람다운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다” 우레 같은 박수가 뒤따랐다.
그의 인기 이유는 오하이오의 경제성장이다. 주정부 재정은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고 중간가계소득이 상승했으며 수십만개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실업률도 대폭 하락했다.
이같은 경제성장의 실과를 “음지에 사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온정적 보수주의’ 통치철학을 강조하며 그는 전국무대에 자신을 소개하는 발언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오하이오 주민들은 다시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는 17명 중 가장 탄탄한 이력서를 갖춘 후보 중 하나다. 체코계 이민가정 우체부의 아들로 근로계층 출신인 그는 9선 연방하원의원을 역임하며 예산위와 군사위에서 국내외 정세를 익혔고 특히 클린턴 대통령 시절엔 하원 예산위원장으로 균형예산 실현에 앞장섰으며 TV뉴스해설가, 투자금융가, 베스트셀러 작가로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도 쌓았다.
그러나 그의 대선 앞날은 장밋빛이 아니다. 선거 자금을 비롯해 넘어야할 장벽이 만만치 않다. 실용주의 중도보수의 같은 성향인 부시의 지지층을 잠식해야 하는데 모금 실적이 1억달러 넘는 부시에 비해 10%도 채 안 된다. 게다가 곧잘 폭발하는 불같은 ‘한 성질’도 캠페인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케이식의 희망은 첫 프라이머리인 뉴햄프셔 경선이다. 보수지역 아이오와는 아예 포기하고 올인 중인 뉴햄프셔에서 다행히 이번 토론이후 지지도가 수직상승을 보였다. 바닥의 한자리 수에서 12%로 치솟으며 트럼프와 부시에 이어 3위에 뛰어올랐다.
어제 월스트릿저널은 거품을 걷어낸 공화필드에서 당선가능성이 있는 5명의 후보로 부시와 케이식, 스콧 워커와 마르코 루비오, 테드 크루즈를 꼽으면서 예상했다. “민주당 시각에서 보면 두 최대 경합주 출신의 중도보수 공화당 대선후보, 부시-케이식 혹은 케이식-루비오 티켓은 상당히 겁날 것이다”
케이식의 본선경쟁력은 이렇게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전에 경선에서 고사(枯死)할 위험이 다분하다. 첫 시험대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다. 여기서 그가 빛을 못 보면 공화당은 오하이오에서 승리할 수 있는 다른 후보를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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